유난히 비가 내렸던 날

나의 인생 이야기 (1)

by Demoo

그날은 비가 유난히도 많이 내렸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공원 벤치에, 오랜 친구와 앉아 있었다. 친구는 말이 없었고, 나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저 내리는 빗물에 한없이 눈물을 씻어냈다. 17살 소년의 기억. 그날의 곱절이 더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떨림이 기억난다. 비를 많이 맞아서인지, 아니면 많이 울어서인지. 나는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대차게 내리는 빗 속에 몸을 떠는 것만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작고, 연약했다.



나의 아버지는 군에 있을 때 그의 아버지를 사고로 잃었다. 그에게는 과부가 된 어머니와 5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생들 중 한 명은 걷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 그들을 부양하는 것은 스무 살 아버지의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그 일을 잘 해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하던 과수원을 정리하고, 도시로 와서 작은 가게를 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여관일을 했고, 돈도 꽤나 벌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세 명의 고모들의 팔짱을 끼고 식장에 들어갔고, 두 명의 동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며, 막내 삼촌은 호주로 3년간 어학연수도 보냈다. 물론 장애가 있는 셋째 고모도 부양했다. 병원비와 약값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만하면 아버지는 그럭저럭 잘 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형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998년 IMF가 터지며 한국의 많은 가정들이 무너졌고,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여관을 임대하여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전 재산이었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재판은 길었고, 변호사는 돈을 갖고 도망쳤다. 결국 아버지는 변호사도 없이 소송을 해야 했다. 소송은 이겼지만, 당시 채무자가 모든 재산을 이미 빼돌린 뒤였기에 결국 평생 모은 돈을 잃어야 했다. 여담이지만 그즈음에 채무자의 아이가 갑자기 병을 얻어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재판정에서 채무자의 아내는 어머니의 머리를 뜯어 잡고 “나는 기도해서 니 자식들은 잘됐는데, 네 년이 저주해서 우리 애가 이렇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평생 누구에게도 모진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참 모질게 대했다. 그리고 그녀를 가장 모질게 대했던 것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형제들이었다. 가세가 서서히 기울면서 그들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해서 모두 날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무너져 있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막내 삼촌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3수를 해서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호주로 3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3수 기간에도 대학생 때도 어학연수 때도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졸업 후에는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하고 집에서 주식만 하며 대박을 노렸다. 그는 아버지의 형제들 중에 가장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세상 모든 것을 원망했다. 정말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매일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거실에서 큰 소리로 아버지와 어머니 욕을 했다. 내가 듣는 자리에서 '괜히 양아치 새끼한테 돈 줘서 모든 재산을 잃었다'라거나 '이런 시골에서 1, 2등 한다고 니들이 대학 근처나 갈 거 같냐.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다녀라'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자신의 누나를 의자로 때리곤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나는 작은 방에서 그저 말없이 티브이를 보며 지냈다. 밖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우리는 조용히 티브이만 봤다. 약속이나 한 듯이. 티브이 속 연예인들은 화려했고 행복했다.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피우는 중에도 티브이를 보면 종종 웃음이나기도 했다.

하루는 그렇게 방에 있는데, 밖에서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진 게 아니고 정확히 무언가를 바닥에 내다 꽂는 소리였다. 그것은 다음 날까지 학교에 제출해야 했던 누나의 과제였다. 아무 이유 없이 삼촌이 부숴버린 것이었다. 정성껏 만든 과제가 바닥에 박살이 난 채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누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삼촌이 아닌 누나에게 화를 냈다.

“울지 말고 그냥 빨리 다시 만들어!”

누나는 울면서 조각을 쓸어 담았다. 사실 그날 누구보다 많이 운 사람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삼촌에게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했다. 어머니는 전형적이고 희생적인 맏며느리였다. 그저 꾸역꾸역 삼키며, 이따금 긴 한숨을 내쉬고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짐작은 가지만, 어린 누나가 너무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리고 작고 연약했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나와 나의 어린 시절은 그랬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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