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야자를 마치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고모들이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계속 공부를 했다. 그래.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수치스러울 만큼 반가웠다. 나는 어른들을 믿고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였다. 어릴 적에 고모들이 놀러 오면 친척 동생들과 놀곤 했고, 나는 그게 좋았다. 그날도 그저, 그런 방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방문을 열고 큰 고모가 소리를 질렀다.
“야 OOO! 너 공부하지 말고 나가서 너네 엄마란 년 잡아와!”
그녀는 나를 노려보더니 다시 말했다.
“너 이리 나와봐”
그리고 고모들은 나를 둘러싸고 앉았다. 마흔이 넘은 어른들이 18살 조카에게 30분가량 너희 엄마가 얼마나 개 같은 년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엄마? 어릴 때부터 밥해먹이고 키운 10살 넘는 시동생한테 이 년 저 년 소리 듣는 우리 엄마? 피 같은 자기 새끼들이 두드려 맞아도 무어라 한 마디도 못한 우리 엄마? 장애 있는 시누이 20년 가까이 똥기저귀 갈고도 자기 독살하려 한다고 욕먹은 우리 엄마? 나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누나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다. 표면적인 갈등의 원인은 누나가 키우던 고양이를 할머니가 내쫓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할머니는 누나가 대학에 다니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늘 계집애 대학 보낼 돈 있으면, 차라리 막내 삼촌을 주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누나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이미 그럴 돈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그런 사정에 매일 같이 난동을 피우는 삼촌까지. 낡은 24평 빌라 안에 어머니, 누나, 할머니, 장애인 고모, 백수 삼촌, 고등학생인 나까지 살고 있었으니 이미 폭발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쌓이고 쌓였던 감정이 그날 폭발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나를 고모라는 사람들은 겁박한 것이다. 한참을 어머니 욕을 듣고 있던 나는 제발 그만 좀 하라면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런 내 뒤에 큰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완전 그 애미에 그 자식이네.”
그날 이후로 나는 오랜 시간을 떠돌아야 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내 집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 그날의 꿈을 꾼다.
이렇게 오래 아플 줄 알았다면, 그들도 조금은 망설였을까.
아니 아직도 아프다는 걸 말한다면, 노년이 된 그들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까.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상처가 아무는지 알았다면, 그때의 나는 조금은 기다리기 쉬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