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마무리하며

나의 인생이야기 (3)

by Demoo

집을 나온 뒤로 나는 아버지 친구네서 살았다. 그 집 아이와도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라 솔직히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남의 집 살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 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집 방 하나를 빌려 어머니와 둘이 생활했다. 차라리 혼자 살면 오히려 편했을 것 같은데, 어머니의 존재가 그때는 너무 불편했다. 그 좁은 방에서 나를 종일 기다리는 어머니가 늘 신경 쓰였다. 친구네 집에 부담가지 않으면서, 또 너무 편하게 있어 눈치는 보이지 않게 어머니는 그 집 살림을 도왔다. 그 모든 게 나는 불편했다.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어느 날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소리를 지르셨다.


"차라리 니 엄마 죽을까! 너 엄마 없이 이 집에서 밥이나 얻어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가난이 가슴 아픈 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나도 아버지도 누나도 이미 정신적인 한계에 이르렀고,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기 직전의 그런 날들이었다.



일 년 뒤 아버지께서 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으셨고, 우리 가족은 거기로 이사를 갔다. 일 년이라는 기간은 인생에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에게는 학창 시절의 1/3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그러니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남의 집 살이를 한 셈이다. 친구네 사는 동안도, 그리고 원룸에 사는 동안에도 삼촌은 우리 가족들을 괴롭혔다. 특히 누나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누나 학교 교수님에게도 찾아갔고, 당장 학교를 그만두라는 협박 문자도 수없이 보냈다. 어느 밤에 누나는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고, 아버지는 누나에게 "아빠가 미안해"라고 하며 우셨다. 어머니도 옆에서 흐느끼고 있었고, 나는 누워서 잠든 척을 했다. 원룸 살이의 가장 힘든 점은 서로의 아픈 모습을 피할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날 밤은... 참 길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2시까지 더 공부를 하다 잤다. 그날도 야자를 끝내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들어 계셨다. 공부를 하다가 코를 풀고 쓰레기통에 휴지를 버리는데, 내 것이 아닌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인지 꺼내어보니 어머니의 유서였다. 마음고생 때문이었을까. 당시 어머니는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큰 병을 얻으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전혀 티를 내지 않으셨다. 삼촌과 할머니, 고모들의 폭언 욕설로 어머니가 2번 정도 쓰러지셨던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몸이 힘들어지신 건 전혀 몰랐다. 그날 나는 사람이 소리 없이 오열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참을 울다가, 아무렇지 않게 공부를 하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무도 죽지 않을 것처럼. 나는 조용히 잠이 들었고, 다시 학교에 갔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어느덧 힘들었던 나의 학창 시절도 끝나가고 있었다. 2004년 11월의 어느 추웠던 날 수능을 쳤고, 나는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학교에 합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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