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만두와는 차원이 달라
틈이 날 때마다 만두를 쪄 달라는 아이들에게 냉동실에서 꺼낸 차갑고 딱딱한 만두를 꺼냈다. 만두를 만들기란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일 일테니까. 그런데 요즘 도전의식이 만렙인지라 밖에서 해장국으로 사 먹는 감자탕을 집에서 끓여 냈다. 그것도 고춧가루와 묵은 김치를 넣지 않고 된장만으로 고기 잡내 없이 시어머니께 자신있게 대접했다. 내일은 그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절친 부부를 초대해 요리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대패삼겹살이 내 눈에 아른거렸던 킴스클럽에 들렀다. 내일 먹을 대패 삼겹살을 한참 보는 데 잡채용 고기가 빛깔도 좋고 윤기도 좌르르르 한 것이 아닌가,
저 잡채용 고기로 만두를 만들면 어떨까? 불현듯 섬광처럼 생각이 스쳤고 그 즉시 초록창에 만두 만들기를 검색했다. 요즘은 단 5초 만의 검색만 해도 손맛 나는 요리를 재현해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적어도 내 입맛에는 딱이다. 모 인플루언서 님의 레시피를 재현했다. 아직까지는 블로그가 요리계에선 왕좌를 차지하고 있으니 브런치에 이 글을 올려도 이해하여 주시길.
초록창 인플루언서들의 요리를 따라하면 실패확률이 0에 가깝다. 어쩜 그리 비율과 배합을 잘 하시는지, 양념도 별 게 아니다. 간장, 맛술, 액젓, 소금, 설탕,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다진 파만 있으면 거진 만사형통이다. 오늘도 인플루언서의 경험과 감을 믿으며 그가 나열한 밑재료들을 하나 하나 집어 들었다. 오늘의 고비인 만두피. 과연 이것을 마트에서 팔 것인가. 만두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알 리 없다. 어묵코너, 햄코너, 면코너, 왠지 이 언저리에 있을 듯 한데. 찾았다! 냉장칸 맨 위에서 만두피를 발견했다. 와, 만두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있긴 하구나,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만두피까지 집어 든다. 최종 재료는 파, 부추, 다진 돼지고기, 삶은 당면, 숙주, 두부.
파와 부추의 알싸함이 느끼할 수도 있는 돼지고기의 맛을 잡아줄 것이며 삶은 당면과 숙주는 씹는 맛과 감칠 맛을 더해줄 것이다. 두부는 부드럽게 뒷마무리를 해 주겠지. 아이들이 영어학원에 간 틈을 타 스토리텔 '강원국의 글쓰기'를 틀어 놓고 쉐프로 빙의한다. 일단 모든 재료를 꺼내 놓은 후 초보 요리사 답게 저울로 무게를 재어 가며 파와 부추를 썬다.
사각사각, 아직 파릇파릇하고 숨이 죽지 않은 파와 부추를 썰 때면 요즘은 잠적하신 혜민스님이 떠오른다. 혜민스님이 노란 파프리카를 썰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셨는가, 나는 푸른 파와 부추가 썰리는 촉감을 느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하고 싶다.
돼지고기는 덩어리가 크므로 믹서기로 갈아서 질 좋은 다짐육으로 변신시켜 파와 부추가 담긴 볼에 담는다. 데친 숙주와 삶은 당면도 잘게 썰어 소쿠리에 모두 투하한다. 두부는 면보로 짠 후 물기를 없애 섞는다. 어머님이 독도가서 사다 주신 홍게간장은 어느 요리에 넣어도 감칠맛을 살려준다. 위에 언급한 양념재료들을 모두 섞은 후 쌓인 스트레스를 풀듯 마구 치댄다.
숨겨진 다이아몬드를 찾듯이 마트에서 발굴한 만두피를 옆에 두고 사진도 한 컷 찍고, 만두속이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혼자 생각하며 찰나의 티타임도 갖는다.
만두피 옆에 있는 만두속이 왜이리 예뻐보일까,
마냥 어려워 보이기만 했던 만두 속을 내가 완성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같이 만두를 빚는 광경을 연출해 사진까지 찍으면 오늘의 브런치 글감과 요리가 모두 완성인가, 혼자 만의 상상에 흐뭇해진다.
띵동 - 아뿔사 아이들은 친구를 데리고 왔다. 처음보는 낯선 얼굴이 인사를 하며 신발을 벗고 들어온다. 같이 낄낄대며 촉촉한 만두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촤르르한 만두속을 한 숟갈 담아 꼭꼭 여미자는 나의 바람은 처참히 깨졌다. 그래 너희들이 무슨 만두를 빚냐, 열심히 놀기만 잘 해주어라. 만두 빚기는 내 차지다.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을 묻혀가며 오므려야 한 다는 것을 모르고 힘으로만 꾹꾹 누르는데 잘 될 리가 없지. 틈으로 만두속 아가들이 슬금슬금 얼굴을 내민다. 10퍼센트의 당황과 90퍼센트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꿋꿋하게 만들어 나간다. 주어진 미션이 두가지이다. 첫째, 만두가 맛있을 것. 둘째, 치과 진료 시간 전까지 애들 먹이기를 완료할 것. 15분의 찌는 시간을 기다린 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에게 만두를 머리 대로 나누어 4개씩 내 놓았다. 배고픔과 평타는 친 만두의 맛에 힘입어 접시까지 핥아 먹을 기세였다.
"더 없어요?" 요리를 하는 사람이 듣기 최고 좋고 뿌듯한 말, 식탐이 없는 아이들에게 오늘 그 말을 들으니 지구상 최고의 쉐프가 된 느낌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다가와서 사진을 가리키며 "엄마, 이 만두 진짜 맛있었어." 라고 되새긴다. 레시피를 알려준 인플루언서 님에게 감사를, 딱딱한 냉동 만두 대신 처음이라 엉성하지만 신선한 맛을 구현하려고 애쓴 나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