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그까이꺼 한번 편해보자.
남편이 1박 2일로 놀러를 간단다. 이제는 애들이 다 컸다고 생각이 드는지 이제는 심리적 타격이 예전만 못하다. '갔다 와' 쿨하게 말하고 나도 언제 놀러 갈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와중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수화기 버튼이 시동생을 누르고 있었다. 바른 인성과 적절한 센스의 소유자, 그래서 내가 더 편하게 연락하는지도 모른다. 시동생이 내 동생이었다면 더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 마침 시동생의 남편도 시골에 간 주말이라고 남편에게 들은 후였다.
"네 언니"
"이서방 시골 갔죠?"
"네"
"내일 오빠 없긴 한데, 우리 집 놀러 올래요?"
"아, 놀러 가도 돼요?"
"네, 놀러 와요. 내가 감자탕 해줄게요."
"우와, 감자탕이요? 알았어요 언니 내일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몇 초 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와는 지금은 '어사'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애들 낳은 지 5주 만에 시댁에 내려가 일 년 동안 어머니와 애를 같이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대담한 여자, 바로 나다. 시작은 담대했으나 끝은 울음바다였다. 할 말은 하는 어머니의 직설적인 스타일에 적응할 수 없었던 나는 매일같이 남편을 들볶았고, 어머니는 꽁한 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셨겠지. 한 달 반 만에 백기를 들고 친정으로 돌아가던 날, 어머니는 나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펑펑 우셨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울지 말라고 나도 덩달아 울었다.
혼자 애들 케어가 가능할 만한 시점에 주말부부였던 남편을 따라 타지로 와 애들을 키웠다. 복직을 앞둔 시점에서 애들 등하원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타지에서 시댁 도움 받게 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던 남편은 어머니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먼 곳에 있었던 친정 아빠가 오셔서 아이들의 등하원을 도와주시게 되었다. 그때부터 남편과 시댁에 대한 서운함이 쌓였고 매일같이 친정과 시댁을 비교했다. 그런 감정들은 자연스레 행동으로 나타났고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주말에 시댁을 가는 날이면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아직까지 일하시고 있는 친정 부모님이 생각났고 끈끈한 가족애가 보이는 시댁식구들이 부러웠다. 상대적으로 개인주의 문화가 있는 친정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시댁을 챙기는 행동을 할 때면 괜스레 얄미웠다.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수천 번, 수만 번이다. 요즘 이슈 되는 MBTI 중 극 T인 남편은 이성의 논리로 중무장하여 나의 감정은 알아주지 않은 채 열심히 방어하고 화려한 언변으로 나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재작년 ~ 작년이 갈등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시댁 가족 여행을 가서 우리 부부는 싸웠고 시댁식구들과 거의 몇 마디 하지 않았으며 오는 길에도 고성을 지르며 서로를 헐뜯었다. 시댁 모임이 있기 전날이면 잔뜩 예민해진 내가 시발점이 되고 절대 그 예민함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남편이 촉매제가 되어 자주 언성을 높였다. 시댁 카톡방은 폭파되었고 이젠 원가족끼리만의 채팅방이 있다. 대가족의 대소사를 알리기 위한 시숙들과 함께 있는 톡방에서도 며느리는 나왔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며느리에게 아무 말씀을 안 하신다.
남편을 따라 타지에 내려오고나서부터는 자연스레 가까워진 시댁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I' 성향인지라 자주 만나는 것이 익숙지 않았고 편치 않았다. 원래 남들 의식도 많이 하는 성격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은 생각도 하기에 모임 후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요즘은 조금씩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시동생이 남편 흉을 자기한테 보란다. 시댁과 가까워져 보기로, 편하게 남편 욕까진 못하겠지만 남편 흉 정도는 볼 수 있는 그런 사이로, 혼잣말처럼 반말 섞인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쉽게 모여서 저녁 한 끼 먹을 수 있는 느낌으로다가 말이다. 만남이 모여서 편함을 만들고, 편함이 모여서 관계를 만든다.
어차피 효자인 남편을 만났고,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 만큼 센 성향이 아니니 내가 맞추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은가.
시엄마에게 감자탕 드시러 내일 오시라고 전화를 하고 끊은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한테도 감자탕 끓여주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시엄마한테 끓여 주고 다음에 엄마한테도 끓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