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캔이면 좀 어때.
우리 집 부엌 선반에는 참치캔이 쌓여 있다. 여기저기서 참치캔 선물상자를 많이 받았다. 라면이 집에 없었던 적은 있어도, 참치캔이 없어본 적은 없다. 왜냐, 찾는 사람이 없다. 참치캔 통조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그렇고, 남편도 말로만 먹겠다고 하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만다. 가끔씩 참치김치찌개를 끓일 때나 찾는다. 누군가 소비해 주길 바라고 있는 것 같은 참치캔들이 마치 오매불망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지만 도통 손이 가질 않는다.
참치캔을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어렸을 적 참치캔을 즐겨 먹었던 옛 추억이 떠올라서 그랬을까, 남편이 참치계란밥이라는 신메뉴를 개발해 냈다. 주말 아침, 먹일게 마땅치 않을 때 계란을 팬에 올려놓고 스크램블 한 후 밥 위에 올려 메밀국수용 간장을 한 숟갈 넣어 주는 게 남편의 대표 요리다. 그 계란밥에 참치를 추가해 비비는 것이다.
참치계란밥?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별로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 느낌상 참치와 계란의 조합은 고기와 상추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었다. 음과 양의 만남처럼, 하나가 묵직하면 다른 하나는 산뜻해야 제맛인데 그 둘을 섞은 맛을 상상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아이들은 참치계란밥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맛있어했다. 민감한 성향의 아이들이라 새로운 음식은 섣불리 시도하지 않고 먹던 것만 먹는 보수적인 그들이. 엄마가 시간과 공을 들여 끓여낸 꽃게된장국은 국물만 슬쩍슬쩍 먹다가 말더니, 10분이면 조리해 낼 수 있는 초간단 음식에 손을 들어줬다. 역시 쏟아부은 에너지와 잘 먹는 음식의 상관관계는 부재하는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식사 준비 전 아이들에게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지 사전 정보를 입수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읊으며 먹을 생각이 있는지 물어본다. 우리 아이들은 한식파에 소박하며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다. 지속적으로 반응이 좋은 음식들은 계란프라이, 백김치, 콩나물이나 시금치를 이용한 요리, 두부조림, 기름장에 찍은 돼지 목살구이, 가락국수 등이다. 당장 생각나는 이 메뉴들만 돌려가며 식사를 준비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좁은 틈을 비집고 참치계란밥이 입성했다.
야구 경기에서 빌려온 성과노력대비표(pay-off / effort Matrix)라는 용어가 있다고 한다. 노력과 성과를 비교하여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참치계란밥은 낮은 노력으로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음식계의 '만루홈런'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이들에게 아침밥 메뉴를 선택하게 했다. 그들의 입에서 '참치계란밥'이 튀어나왔다. 아주 조금만 노력하면 완성할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잘 먹을 것을 예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날은 내가 먼저 참치계란밥을 권했고, 역시나 흔쾌히 수긍했다. 그리고 엄마이자 식사 제공자로서 매일 아침은 참치계란밥으로 시작해도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침 메뉴가 한 가지로 정해지는 것은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수많은 끼니를 제공해야 하는 양육자로서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하는가. 끼니 챙기는 엄마, 아빠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름에 절여진 캔 가공식품을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주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아닌지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약간의 죄책감 비슷한 것은 있긴 하지만 나에게는 그 죄책감을 만회할 수많은 저녁 끼니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새삼 나를 포함하여 눈이 오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햇살이 쨍쨍한 날이나 유난히 아침을 차려주기 귀찮은 날이나 변함없이 소중한 자식들에게 소중한 아침식사를 차려주는 엄마, 아빠들이 무척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박수갈채를 받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