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만에 다시 풀어본 수능 문제
'광풍'이 내 마음속에도 휘몰아친 건 불과 지난주 토요일 부터이다. 서울 고터에서 몇 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근무를 마치고 조금 늦게 나타난 친구가 자리에 앉더니 대뜸 의대증원 얘기를 꺼낸다. 요즘 만인의 이슈인 이야기인지라 흘려듣고 있었다. 그런데 말끝에 귀 얇은 나를 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A : "00아, 기사 보면서 너 생각났어. 너 한번 도전해보는거 어때? 지금이 기회야."
B : "그래,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 00 이었지."
정말 우습게도 나는 그 말을 가슴속에 새겨버렸다. 다른 먹잇감을 찾는 요리조리 찾고 있는 하이에나가 덥석 다른 먹잇감을 찾은 것처럼.
현재의 직업에 만족을 하고 있지 못하는 나였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의 권위와 위신은 땅에 떨어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긍지와 사명감으로 먹고 사는 교사생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학교에서 뭘 하려는 마음보다 하루하루 사건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교사생활에서 더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심란한 와중에 내 친구의 말은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처럼 다가왔다. 그 동앗줄을 타고 올라가기에 무척이나 버겁고 힘든 것임을 앎에도.
작년에도 '뒤늦게나마 약대에 다시 도전해보면 어떨까?' 라고 남편에게 말하긴 했었다. 물론 그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못 들은 걸로 할게.' 라며 귀를 닫아버렸다. 한창 머리가 말랑말랑한 아이들과 겨뤄서 승산이 있을 것인가, 애 둘을 돌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 것인가, 약대에 운 좋게 합격한다 할지라도 6년동안 학업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 그리고 6년 동안 내가 즐길 수 있는 시간과 벌 것이라고 예측되는 돈에 대한 기회비용을 생각해보니 현실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어 접어버렸던 도전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금 친구 말에 마음이 동하여 다시금 그 도전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단 작년, 재작년도 수능 기출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도전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의 문해력과 집중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20여년 만에 다시 수능문제를 풀어보는 어색한 자세와 상반되게 익숙한 느낌이 찾아왔다. 세월이 지났어도 지문과 문제를 접할 때의 느낌은 잊고 있었던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정겹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느낌일 뿐. 성인이 되어서도 책을 간간히 읽어오긴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처럼 한 문장 한 문장 정독하고 분석할리 만무했다. 디지털 기기를 어린아이들보다 더 가까이 하는 어른 중 한명이었기에 진득하게 앉아 활자를 찬찬히 읽어내고 관련한 문제를 푸는 작업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문을 최대한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봤다. 왠걸, 생각보다 정답이 잘 보였다. 학창시절 이 보기도 답인것만 같고, 저 보기도 답인 것만 같아 정답을 고르는데 심혈을 기울였었는데, 이 시점에서 보는 문제들은 5개의 보기 중 정답 하나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물론 공부를 손에서 놓은지 한참 되었고 문제를 빨리 푸는 훈련이 안되었기에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내 학창시절 '외국어 영역'이었던 영어영역은 확실히 어려워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정답이 쉽게 보였던 라떼와 달리 확실한 정답을 찾기 힘들었다. 작년도 문제를 풀고 높은 난이도에 깜짝 놀란 후 기출 문제 해설 강의까지 들었다. 요즘의 영어 영역 푸는 트렌드는 확실한 정답을 먼저 찾는게 아니라 오답인 보기들을 지워나가며 가장 오답에서 거리가 먼 답을 찾는 것이라는 팁을 얻은 후 다음날 다시 재작년 수능을 풀어봤다. 2개를 틀렸다. 실제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것도 아닌데 섣불리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내 독해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군.'
내친김에 EBS 인강을 찾아봤다. 수강료를 내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관두면 그만이기에. 생명과학과 지구과학 강의를 교양삼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아이쇼핑을 하고 시시콜콜한 영상들로 시간을 때우던 내가 공부를 하다니. 신선하고 재밌고 낯설지만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수험생처럼 노트 필기도 하고 암기도 해가며 들었다. 물론 30분 후면 머릿속이 백짓장이 되었지만.
이 호기로움이 무색하게 남편, 엄마, 친구는 현실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과의 대화 끝에 38살 아줌마가 약대 도전을 하기엔 무수히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고집만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당장 올해 수능에 도전한다 해도 애들을 방학때 집에 두고 나 홀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같이 데려갈 자신도 없었다. 현실 가능성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서 애엄마의 수험생 생활은 3일만에 끝이 났다. 그 짧은 와중에 얻은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나는 앉아서 공부를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성향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약대 진학은 다시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 스마트폰을 보며 편하게 시간을 때우고 난 후의 허무함보다 책 보고, 글 쓰고,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할 때 찾아오는 뿌듯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커리어를 생각하기 보다는 복직 후 나의 생산적인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요소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EBS강의는 정말 웰메이드이다. 굳이 사설 인강을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해가 쏙쏙 되게 강사들이 강의를 잘 한다. 특히 설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서를 해가며 시각적으로 각인시켜주니 혼자 보면 어려웠을 표나 문장이나 그림도 이해하기 쉬웠다. 수요자가 잘 알아듣게 설명해주는 강사들의 강의를 들으며 수학문제를 어려워 하는 우리 둥이들에게 화만 냈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4×6 + 4 = 4 × □ 에서 □에 뭐를 써야할 지 막막해 하는 아이에게 EBS 강사라면 어떻게 설명했을까? 가정해보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았다.
" 4×6은 4를 6번 더한 거지? (직접 써서 보여준다.) 4 + 4 + 4 + 4 + 4 + 4 이렇게 쓸 수 있어. 그런데 더하기를 여섯 번이나 쓰면 팔도 아프고, 식도 길어지잖아? 그래서 간단하게 곱하기를 생각해 낸거야. + 의 모양을 살짝 돌려서 × 라고 쓰고, 뒤에 6이라고 써주면 4 × 6 이 되는거야. 여기에 4를 한번 더 더해주면 4를 몇 번 더한거지? ( 아이가 일곱 번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에 뭐를 써야 할까? "
아이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해하면서 7이라고 답을 썼다. 윽박지르는 것보다 입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하지만 소리지르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이렇게 설명해주려고 한다.
의대증원이 정말 이슈이긴 한 것 같다. 불혹을 바라보는 애 둘 엄마도 혹하게 만드는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