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꾸미기의 발단은 크리스마스트리였다. 아이들이 트리를 꾸미고 싶다길래 주문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배송되어 온 트리는 눈송이를 표현한답시고 뿌려진 하얀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길래 가차 없이 반품 신청을 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조금 더 비싼 트리를 주문했고, 최근 유행이지만 역시 비싼 지네전구도 같이 합배송을 시켰다. 아이들과 솔잎 가지를 벌리고, 벌린 솔잎에 빨간 색을 바탕으로 한 여러 장식들을 달고, 화룡점정으로 지네전구를 나무에 둘둘 둘렀다. 전구알은 보이지 않고 빛만 내뿜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는 특히 밤에 보면 우주의 별이 반짝이는 듯했다. 사진을 수십 장 찍고 온라인 여기저기에 게시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따끈한 신상 트리를 놓기에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가구 로망을 품고 있었던 때 과감하게 구입한 무겁고 큰 거실장이 떡하니 버티고 트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구입했던 장식장을 과감하게 처분하기로 결심했다. 처분방법은 친정으로 발송. 거실장 처분하겠다고 엄마에게 귀띔을 했더니 당신 집에서 제대로 활용하시고 싶으셨나 보다. 용달로 거실장과 작별을 고하고, 거실은 트리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트리만 놓으니 허전한 것이다. 거실장이 차지하는 자리가 크긴 컸나 보다.
화장실 옆 애물단지처럼 놓여있는 조그마한 탁자가 생각났다. 그 탁자를 트리 옆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곧바로 옮겼다. 나의 행동에 깐깐한 남편이 느낌 있다고 심사평을 해준다. 탄력이 붙은 나는 부엌 장식장으로 향했다. 역시 애물단지처럼 장식장 안에 갇혀있는 향초들을 구출하여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생각이 갑자기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예쁜 거실 한편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탁자 덮개도 있으면 하고, 티브이 위 벽도 가랜드로 장식했으면 싶다. 빨간 트리 장식과 어울리는 식탁보를 주문하고, 크리스마스 문구 가랜드와 루돌프 가랜드도 바로 주문! 언제부터 집 장식에 관심 있었나 싶다. 예쁜 걸 보니 다른 예쁜 것도 생각나고, 집구석이 볼만 해지니, 어울리게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샘솟는다.
드디어 내 생애 처음 사진을 찍어도 예쁘장하게 나올 만큼 집 한편을 꾸몄다. 올해 휴직 중이어서 집에 있을 시간이 많은데, 집 한편을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 모든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환상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내가 이토록 근사한 공간에서 아늑하게 머물 수 있다는 소소한 행복이 느껴진다. 결혼 후 계속 전셋집을 살아서 집을 꾸며도 이사 가면 끝이니 소용없을 거라 생각했고 어차피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없어 내 취향대로 꾸미지 못할 테니 아예 집 꾸미기를 단념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사람들이 왜 집을 꾸미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끝내자니 뭔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트리 장식에 많은 예산을 투자해서 더 이상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벽장 안에 묵혀 두었던 가림막이 떠올랐다. 마침 겨울용 톡톡한 벨벳 재질이어서 이것을 활용하면 딱일 것 같았다. 이 가림막의 행방은 부엌 장식장으로 향했다.
원래 이 집에 들어올 때 훤히 보이는 유리창으로 부엌 장식장이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 가정은 장식할 만한 물건들이 많지가 않아서 장식장이 아니라 거의 창고 대용으로 쓰던 공간이었다. 가림막이 가려놓은 장식장 두 칸에는 사용하지 않는, 그렇다고 버리기에도 아까운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이 가득 숨겨져 있다. 그 대신 가운데 칸에는 장식장에 있을 만한 온갖 물건들을 모아 놓았다. 고모가 결혼할 때 주신 수제 도기 찻잔 세트, 엄마가 유럽 여행 다녀오면서 선물 주신 클림트 명화 컵받침, 사촌동생이 미국에서 사다준 찻잔 세트, 결혼할 때 와인잔, 유리컵들, 모두 사연이 있는 근사한 작고 귀여운 것들이 소중하게 모셔져 있다. 장식장 한 칸 차이이지만 옆 칸과는 미적인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물건들이다.
다시 트리 얘기로 잠시 돌아가자면, 원래 트리 철제 다리가 앙상하게 드러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요즘에는 이 다리를 가려주는 가림막도 팔던데, 아까 말했던 대로 더 이상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차가워 보이는 다리를 가려줄 방법이 없을까?
나의 취미 뜨개질이 여기서 유용하게 쓰였다. 동영상 검색과 뜨개질 고수인 친한 언니의 조언을 빌려 다리 가리기 작업에 착수했다. 토요일 밤 10시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 6시 30분까지 꼬박 밤을 새워 코바늘 뜨기를 끝냈다. 눈은 따갑고 가렵고 손은 후들거리고 허리는 뻐근했지만 바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내가 지어준 트리 옷이 예쁘고 자랑스럽고 뿌듯해서.
뜨개질 고수 언니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더니 한단만 더 덧붙이면 더 풍성하게 보일 것 같다고 하더라. 내가 일곱 시간 연속으로 자리를 뜨지 않고 완성한 작품이라고 하니 아서라 됐다. 하며 말린다.
하지만 나의 집안 꾸미기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집안 꾸미기 편은 다음 주 금요일 발행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