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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Nov 06. 2023

문어발식 확장사업

그 끝은 어디인가

"용기를 내셔야 할 때예요."


 선생님의 말씀에 자문자답 해본다. 나는 진정 용기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용기는 흘러넘친다.  


  일 벌이기에 둘째가라면 아쉬운 나다. 무엇이든 시작해 보는데 주저함이 없고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중무장했다. 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사업을 하듯, 여기저기 다리를 걸쳐 놓는다. 문제는 내가 대기업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이것저것 깔짝거리고 건드리기만 하니 한 가지 일이라도 깊이나 진전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나의 이런 전력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가 가라고 하지도 않은 대학원에 호기롭게 입학하여논문도 작성하지 못하고 간신히 졸업시험으로 수료에 그쳤다. 직장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계획서를 야심 차게 작성하고 6개월이 지나 보고서는 제출을 못해 보고서 미 제출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전문성을 향상하고자 자율적 연수에 참가하나 마무리는 막상 몇 년 전 과제로 갈음하여 제출하고 만다. 아, 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리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주셨습니까. 그러나 끈기는 주지 아니하셨습니까.


 이런 내가 휴직을 했으니, 물 만난 고기다. 브런치, 유튜브, 춤, 골프, 뜨개질, 독서. 요즘 벌린 일이 무려 여섯 가지다. 일의 성패는 신께 맡겼다.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취미가 가장 많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더 멋있게 포장해 주는 지인들은 "멋있게 산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라 말해준다. 


 명목상 육아휴직이나 실제로는 자기 계발휴직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시간단위로 쪼개어 하나, 둘 계획된 과업을 신이 주신 사명처럼 차례대로 완수한다. 다시 아이들 하교 길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 그렇게 뿌듯하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감격스러움과 가슴 벅참을 느낀다. 여섯 개의 취미를 해내는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섯 취미 각 나름의 매력이 있어 그 어느 하나 포기를 못하겠다. 빵집에서 어떤 빵을 고를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어떤 맛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듯 오늘은 어떤 취미를 해야 하나 고민한다. 나에게 주어진 2년의휴직 기간을 촘촘하게 수놓기 위한 나의 여정이다. 원체 한 개에 집중을 못하는 나의 주의력 결핍 탓도 있는듯하다. 상담 선생님이 그러시길 "강박사고가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힘들 수 있어요.", 끄덕끄덕하며 취미부자의 삶을 만끽한다.  



 

 허나 공자님이 과유 불급이라 하셨던가, 브런치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프로젝트 동기들의 새 글들을 보며 나의 브런치가 활성화되기는 할까 의구심이 든다. 늘지 않는 유튜브 조회수를 보며 또 새로운 콘텐츠를 파야하는 것인지, 말 잘할 수 있도록 화술학원을 등록해야 하는 건지 고민한다. 공이 맞지 않는 날엔 '골프는 당신 적성이 아닌가 봐'라는 남편의 말대로 진작에 끊어 버렸어야 하는 것인지 갈등한다. 뜨개질 진도가 나보다 더 많이 나간 옆자리 지인을 보며 조바심이 난다. 채무자가 빚 갚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책을 반납일까지 읽으려고 노력하나 이런 문자를 받는 날이 부지기수이다.

 '회원님의 빌려가신 도서가 연체되었습니다.'   

  

 걱정도, 고생도 사서 한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여섯 개 구멍 팔 시간과 돈으로 디즈니 플러스 좀 보고 인터넷쇼핑몰 구경하다 맘에 드는 옷 하나씩 간간히 사면되는데, 뭐 하고 있는 건지. 애들 없을 때 에너지 비축해 놨다가 공부나 열심히 봐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내속에서 이 욕심과 야망과 자아실현욕구는 끓어오르니, 새삼 나를 가만히 놔두는 남편과 애들한테 고마울 지경이다.

 

 행복한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여섯 가지 뜬 구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하고 있는 것에 몰두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그럴듯하게 하고 있는 듯한 나의 느낌에 취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고작 취미생활 가지고 이렇게까지 진지한 나를 누가 보면 웃을 수도 있겠다.

 

 이제 선택과 집중으로 가지치기를 해 낼 결단이 필요하다. 즉흥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나 자신을 더 선명하게 해 줄, 나의 애정하는 취미이자 자기 계발이며 저기 저 먼 곳에서 빛나는 야망을 실현시켜 줄 무기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이것만은 확신이 든다.

 

  글을 쓰고, 고치고, 최적의 단어와 문장을 고심하는 과정에서 대장장이가 철을 날카롭게 다듬듯 나의 생각이 예리해진다. 안개가 걷히듯 불명확한 나의 욕구가 명확해진다. 결국 내면의 불안이 잦아들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럴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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