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것, 그리고 교사라는 것

교사의 아들로 산다는 것

by 아이두

1. 아들 둘이 맞고 왔다. 산 넘어 산이라고 같은 아이한테 맞았다.

2. 아들이 울상을 해서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친한 엄마에게 카톡으로 우리 애가 맞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3. 아들에게 물어보니 그제야 "살살 맞았어. 그런데 걔 혼내지 마."라는 답이 돌아온다.


패티 세장의 햄버거를 먹으면 이런 기분일까, 이 상황들이 소화가 안된다. 자꾸 말을 걸어오는 아들에게 짜증만 난다. 지금 하던 거 다 때려치우고 멍하게 있고 싶다. 소화제를 찾듯 누군가로부터 뾰족한 해결책을 얻어내고 싶다.



전치 몇 주도 아니고, 하다 못해 멍도 들지 않았지만 엄마 마음에는 얼룩 한 점이 남았다. 아이는 다 그러면서 자란다는, 주변아이들한테 언제나 그러는 말썽꾸러기에게 당한 것뿐이라는 위로로 그 얼룩을 열심히 지워보려 하지만 문지르고 씻어 보아도 흔적이 남아 있다. 어렵사리 지워질수도 있겠지만,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집에서는 내면의 깊숙한 모습까지 다 드러내지만 밖에서는 다른 아이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좋게 말해 차분한 거지 엄마인 나로서는 답답할 때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담임선생님은 "강준이가 말썽꾸러기에게 제대로 맞으면 나가 떨어져요, 강준이가 순해빠져 가지고"라고 하신다.

“아니, 순한 게 죄인가요?”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네"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또 풍선에서 공기 빠지듯 힘이 빠진다.

지금도 아이는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비슷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오늘 맞은 일은 까맣게 잊고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를 보며 나만 생각이 많은 걸까 자문해본다. 아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같은 교실에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우리 애가 만만한가? 같이 때리며 응수해 주라고 할까? 우리 애는 왜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을까? 엄마인 내가 가만히 보고 두어도 되는 문제인가? 다음번에 또 맞으면 어찌해야 하나? 퍼뜩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난제를 만나면 굴로 들어가 회피하려는 병이 도진다. 아, 안방 암막 커튼 쳐놓고 이불 덮고 그냥 자고 싶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교실에서 장난으로든, 싸움으로든 때리고 맞는 광경을 수없이 본다. 그땐 정말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재판장이 재판의 결론을 내리듯 넌 이것을 잘못했지? 상대방은 이러했고? 둘이 사과하고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지도해 왔다. 그들의 감정을 같이 느끼기 보다는 단지 처리해야 하는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자식이 학교에 간 후에는 교실 일이 남일 같지 않다고 말한 선배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한편으로는 그 많은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 선생님의 버거움을 알기에, 진상학부모와 특정 아이가 반 전체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안다. 때문에 우리 아이가 그 특정 아이가 되지 않게 키우려 애쓰고 나는 그 진상학부모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교사의 아들들인 우리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무언의 압박을 받을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자연스럽게 보는 나의 기질도 유전이 되었겠지만.


내일 그 말썽꾸러기의 학부모를 만나기로 했다. 가슴 한편이 붕 떠있고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부디 그 아이가 좋게 변하는 기회가 되길,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한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다. 내일까지 브런치를 읽으며 마음수련과 함께 내일 할 말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