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부터 서울의 신논현역 근처 한국무용 학원 ‘골든 캣츠’에서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 몸이 늙어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늙기 전에 몸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 그러면서도 내 정신 또는 영혼을 위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헌법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신적으로 나를 피폐하게 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골든 캣츠의 한국무용 수강생 모집 안내를 봤다. 문자로 남성도 수강할 수 있는지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일단 와서 수업에 참여하고 결정하라는 답도 왔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처음 한국무용을 선택하여 시작할 때부터 내게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헌법을 공부하는 방법론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 얘기는 차차 하려 한다.
먼저 나이 듦 또는 늙음의 인식 문제다. 나이는 먹지만 그것이 내 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몰랐다. 물론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이 희게 세고 피부에 점들이 생겼지만, 그건 그냥 외관적인 변화였다. 그런데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와 다른 현상이 덧붙여지고 있었다. 노안은 비교적 일찍 시작했다. 눈이 침침하고 초점이 흐려지는데, 피곤해서 생긴 일시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야 이게 노안이구나 하고 알았다. 다초점 렌즈도 맞추고 독서용과 컴퓨터 작업용 돋보기도 각각 마련했다. 그래도 늙는다는 인식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내 몸에 멍이 드는 일이 꽤 빈번하게 일어났다. 어디에 부딪히거나 해서 생긴 멍이다. ‘왜 그렇지?’ 하고 생각하니, 예전의 몸놀림과 달라져 생기는 일이었다. 그만큼 몸 움직임의 감각이 둔해진 탓도 있고,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예전 속도로 몸을 움직여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 사람이 갑자기 늙는 게 아니고 이렇게 서서히 늙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평소의 습관을 서서히 고쳐 나가는 일이 필요했다. 조부님과 어머니도 연세가 드신 뒤에 낙상을 한 게 떠올랐다. 나이 들어 낙상이 위험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습관이 금세 바뀌지 않으니 미리 몸 움직이는 습성을 바꾸려고 연습해야 한다. 버스를 타려고 뛰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의 원칙이다.
다른 한편 몸을 잘 움직이지 않았기에 몸을 움직이는 뭔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한국무용이었다. 남미의 정열적인 춤을 배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 몸과 마음에 나도 모르게 녹아 있을 한국무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늘 글로 세상을 이해하고 글로 세상에 대해 말했던 내게, 몸으로 듣고 몸으로 말하는 예술 공부는 나의 부족한 헌법 공부를 보완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나의 나이 듦 또는 늙음에 대한 나의 인지가 쉽지 않은데, 식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인지는 더 쉽지 않은 듯하다. 나 역시 부모님이나 선배들의 나이 듦에 대해, 그 변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늙음에 대한 입증은 어렵다. 입증은 자신의 법적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어떤 증거 따위를 내세워 증명하는 일이다.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으려면 빌려준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자신이 일하고 싶었음에도 사용자가 일할 기회를 배제함으로써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증언이 증거로서 구실을 하기도 한다.
늙음의 증거는 외모의 변화로만 입증하기 어렵다. 단지 외모만 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증언은 자백이기도 하고 고백이기도 한데, 이전과 다른 모습이기에 엄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녀가 장성한 후 가족 모임에서 음주는 담소를 나누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 마음에 술자리가 일찍 파하는 걸 불평했다. 요즘은 내가 먼저 술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일쑤다. 배우자와 자녀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술자리 후 ‘고스톱’을 치자는 요청도 잦다. 노후에 가족끼리 놀기 위해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스톱이나 포커 또는 보드게임 등을 가르치고 놀았다. 자녀들이 성년이 된 후에도 함께 여행하고 여러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 이어졌다. 변화 또는 한계에 이르게 하는 원인은 나다. 나의 늙음이다. 졸리고 힘들고 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함께 하기 어렵다. 늙어서 그렇다고 말해 보지만, 마치 투정 부리는 듯한 느낌이다. 나 스스로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쉽지 않다. 얘기로 이해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현재는 그 변화의 과도기이다.
해결책 중 하나는 내가 페이스를 조절하는 일이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모두 조절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욕심만큼 섭취하는 일은 이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른 하나는 더 솔직하게 내 상태를 설명하는 일이다. 처음에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진지하게 얘기하면 식구니까 인정해 줄 것이다. 나이 듦 또는 늙음의 입증은 내가 먼저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먼저 그것에 따라 변화하며 그것을 늦추려고 노력하려 한다. 나의 나이 듦 또는 늙음은 법의 영역에서와 같이 충분히 증명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로 연결된 만큼 입증 없이 증명하여 인정하는 관계로 전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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