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층 전시인 ‘전지적 백남준 시점’ 전시를 소개하려 합니다. 전시 제목은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서 따온 것 같죠? 지난 4월 10일부터 시작해서 내년 2월 22일까지니까 미술관에 들러 관람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하는 시간을 다루는 전시인데요. 전시의 중심은 백남준의 인터뷰 영상입니다. 백남준은 친절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비디오아트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비디오를 그림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하고, 묵묵히 전자기술을 시연하기도 했죠. 몇 개의 작품을 골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영상 작품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듯 말하는 게 신기합니다. 제가 영상을 만드는 이유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작업이라는 취지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런 맥락입니다. 굿이 여러 종류인데,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굿이 있잖아요. 영상은 어쩌면 그 한이 없도록 미리 스스로 풀어내는 면이 있는 듯합니다. 영상에서 모든 걸 다 풀지는 못하지만, 영상 없던 시대의 사람들과는 다르니까요. 어떠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너무 많은 걸 쏟아내지 않나 하는 걱정이 있기는 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접근하기 어렵거나 소셜 미디어가 가진 허상 탓에 생기는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요.
첫 번째 작품은 지난 12월 4일 미술관에 들렀을 때 촬영한 <비디오 샹들리에 No.1>입니다. ‘샹들리에’(chandelier)라는 말은 촛대를 상징하는 라틴어 ‘칸델라브룸’(candelabrum)에서 유래합니다. 샹들리에는 보통 빛을 내는 초를 여러 개 세우고 주변으로 크리스털 같은 반짝이는 장식을 달아서 아름답게 빛을 퍼뜨립니다. 백남준도 흑백텔레비전을 촛불 삼아 빛의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전선과 전구로 장식해서 샹들리에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미디어 기술이 우리의 시공간을 아름답게 빛내는 시대상을 형상화한 것이죠. 백남준은 당시 최신 기술인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상을 만들었고요. 혁신적인 휴대용 무선 텔레비전을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과거의 도구인 촛불부터 무선 기기에 이르는 현대 문명까지 아우르는 이 작품은 시간을 넘나드는 백남준의 기술적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작품은 <TV 정원>으로 백남준아트센터의 상설 전시 작품입니다. 텔레비전이 가득한 정원이 보이시나요? 〈TV 정원〉은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정원 사이로 TV 모니터가 설치된 작품입니다. 화면에 나오는 것은 〈글로벌 그루브〉라는 비디오 작품입니다. 다양한 문화의 음악과 춤이 흥겹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봄은 옅은 초록으로 시작하여 꽃이 피는 5월을 지나 여름이 되면 푸른빛이 되며, 가을은 노란빛에서 붉은빛으로 물듭니다. 텔레비전도 색도를 지닌 전파의 주기에 따라 파랑-노랑-주황-진홍색으로 바뀝니다. 이를 두고 백남준은 “자연의 모습처럼 매우 빠른 시간의 연속이 TV에 컬러를 만들어낸다”라고 표현하며 텔레비전이 전자적 색을 만드는 기술임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입니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에서 전자 신호 자체를 보여줄 뿐 아니라 추상적인 시간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달은 모양은 흑백텔레비전에 전자석-요크를 끼워 넣어 일시적으로 전자빔의 흐름을 방해하여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TV가 없던 시대 달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는 의미입니다. 달을 보면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 있으신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달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내용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달 모양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저 일종의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간 동안 아무 이야기도 일어나지 않아서 형식과 관계만이 남아서, 우리는 추상적인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백남준이 왜 12개의 달의 이미지를 한 번에 보여주는지도 이해하게 됩니다. 백남준은 인간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경험 즉 열두 개의 달을 동시에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이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 열두 개의 달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곳은 우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들어가려는 추상적인 시간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죠.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데 그것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마법이 아닐까요?
백남준 작가 작품은 즉자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이면에 깊은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눈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지만, 작품에 담긴 의미를 찾다 보면 많은 걸 보고 듣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 있으면서 백남준 작가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도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