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by 한량돈오

1945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습니다. 2025년 12월 2일 제22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이 발의되었습니다(민형배의원․김준형의원․윤종오의원 등 31인). 부칙을 제외하면 본문은 열 글자입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 이 열 글자짜리 법안을 통과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야당에서는 2025년 12월 10일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토론회도 열었네요.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근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적대적인 북한으로부터 국가안보’인데요.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겨냥한 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을 겨냥한 법입니다. 문제는 어떤 행위를 문제 삼느냐죠.


국가보안법 조문에 대한 몇 가지 논점만 소개하려 합니다.


북한 관련하여 핵심적인 국가보안법 조항은 제3조 반국가단체의 구성 등, 제4조 목적 수행입니다. 반국가단체는 주로 북한을 의미하죠. 한국의 형법은 1953년에 처음 제정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일본의 구 형법을 의용(依用)하였습니다. 의용은 ‘다른 나라의 법령을 그대로 적용함 또는 그런 적용’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법률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일을 말합니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란죄라는 죄에 대해서 여러 가지 형태가 그전 일본 내란죄와는 좀 형태를 달리했고 또 공안에 관한 장이 설치가 되어서 거기에도 여러 가지 함축성 있는 조문을 설치하게 되어서,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국가보안법 조문을 가지고 대조해서 검토해 볼 때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범죄사실을 혹 형에 가서 다소의 경중의 차이가 있을는지도 모르나 이 형법전을 가지고 …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은가 하는 그 정도까지는 생각했습니다. (『형사법제정자료집』, 172-3쪽)


그가 국가보안법 없이 형법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것은 일본 형법이 내란과 그 예비․음모만을 처벌함에 대하여 우리 형법은 그 선전․선동까지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공안에 관한 장’ 중 첫 조문인 ‘범죄단체의 조직’(형법 제114조)입니다. 이것은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조직 또는 가입을 그 목적한 죄로 처벌’하므로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할 내란(형법 제87조) 목적의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하는 일은 내란죄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형법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내란 등의 선전․선동을 처벌’하고 ‘폭력주의적 파괴 활동을 행하거나 그 명백한 우려가 있는 단체를 해산’하는 파괴활동방지법이 있습니다. 즉 우리 형법은 일본과 비교할 때 ‘형법 더하기 파괴활동방지법’인 셈이죠. 일본에서는 이러한 파괴활동방지법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헌법 수호 관련해서 칼 프리드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Carl J. Friedrich, 최대권 옮김, 입헌적 국가이성: 안보와 헌법의 수호, 동성사, 1987).


내부적인 입헌적 국가이성에는 대략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입법에 따라 입헌 질서를 저해하거나 파괴하고 별개의 비입헌적인 질서를 수립하려는 활동에 종사하는 정당이나 단체를 불법화하는 방식이다. 그 예를 미국과 스위스에서 찾을 수 있는데, 미국의 입법부는 사법 심사권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①).


두 번째는 정부 전복을 꾀하는 집단이나 단체를 불법화하는 방식이지만, 다만 집행부의 요청에 따라 사법적 결정으로 불법화한다. 사법적 결정은 해당 단체를 불법화할 수 있으며, 또는 그 단체의 구성원으로부터 헌법에 명시된 일정한 기본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 독일연방공화국이 채택하였다(②).


세 번째는 행정명령이나 입법으로 사적 기관과 공적 기관의 일정한 지위로부터 위험인물이라 생각되는 자(presumed subversives)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그 예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지만, 미국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정적 조치는 국참사원 같은 행정법원이나 대통령충성심사위원회(③) 같은 행정위원회에 의하여 이뤄진다.


네 번째는 집단이나 단체 자체를 불법화하기보다는 정부 전복을 꾀하는 혹은 전체주의의 집단이나 단체의 특징적인 실행을 제거하는 상세한 입법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그 예를 1936년의 영국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도 발견된다.


나는 영국의 접근방식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헌법 질서 그 자체를 침해하며, 다른 시민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고, 법질서 전체의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어느 집단이나 정당의,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개인의, 특정한 행위를 제거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경 가장 이성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절차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력은 법과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을 해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은 사실 ‘입헌적 국가이성’을 ‘형법’ 속으로 흡수하여 버린다(⑤).


1950년의 국내 안전법(Internal Security Act)(④)과 같은 입법은 기존 헌법에 비추어 위법이라기보다는 입헌주의의 정신에 반하며 입헌주의의 안전과 생존 자체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부에는 마치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처럼 지속적이고 불변인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반드시 존재하여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자 확신, 자기의 믿음, 자기의 신념에 대한 권리다. 왜냐하면 이곳에 인간존엄성의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장 내적인 자아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 어떠한 한계 혹은 어떠한 비결보다도 헌법 질서의 안전 및 생존에 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입헌적 국가이성의 핵심이다. 이것이 왜 입헌주의 국가를 설립하여 유지하는지의 이유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① 미국에서 공산당을 해산하는 법이었는데요. 강제할 수단은 없었고, 나중에 연방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명무실해집니다. 범죄행위 자체를 겨냥하지 않고 단체 결성 자체를 규율하는 것이어서 근대 형법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② 나치스 정당의 발호를 막으려고 채택한 위헌 정당 강제해산 제도입니다. 1960년 헌법개정을 통해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③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찰리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스위스로 추방당했습니다.


④ 미국의 국가보안법 중 하나입니다. 나중에 연방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명무실해집니다.


⑤ 형법으로 흡수한다는 말은 국가보안법 규정을 형법으로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명백한 위험을 당장 불러올 때 처벌한다는 말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사상 통제법이라고 비판하는 까닭은 어떤 위험한 행동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어떤 말을 가지고 또는 단체를 결성했다고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에서는 그 말이 다른 사람들의 위험한 행동을 불러일으켜야 비로소 범죄가 됩니다. 그게 입헌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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