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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체성 Jan 25. 2021

따뜻한 공기

말랑말랑해진 모든 것.


날이 제법 따뜻해졌다. 벌써부터 봄내음이 난다. 그제는 날이 너무 좋아서 외투를 손에 들고 지하철  정거장을 걸었다. 노래는 추억의 버스커버스커.


집에 햇살이 반나절 이상 들어오면 좋겠건만, 태양이 빛을 내어주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다. 예전 작은 자취방에서는 아침부터 해가 너무 많이 들어 난리였는데, 지금 집은 너무 어둡다. 창에 붙은 필름 탓도 있고, 집 방향 탓도 있고. 먼 훗날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해가 과하게 들어오는 집으로 가야지.


그래서 이렇게 날이 좋아졌는지 몰랐다. 일주일에 4일은 집에 박혀있는 생활을 하면서 밤낮은 또 뒤바뀌었고, 집은 어두웠고, 나는 작은 스탠드의 노란 조명에 의지해 살았으니까. 간만에 운동 가는 날, 패딩을 입고 나왔다가 따뜻한 공기에 너무 놀랐던 거지. 그래서 간만에. 진짜 오랜만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다. 처음 오는 카페인데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바 자리가 있고 라떼도 가 무척이나 맛있어서 기분이 좋다. 햇살만 들면 완벽할 것 같다.


날이 따수우니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영하에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멜랑꼴리해지고, 어제는 또 '원스'를 봤단 말이지.

 

한창 블로그 정리를 하고 있어 외장하드와 옛날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다. 사진과 영상 속 내 모습이 낯설다. 잘 나다니고, 잘 웃고, 용기가 넘쳤던 나. 스톡홀름 어느 다리에서 활짝 웃는 사진, 몽골 초원을 달리는 고물차에서 찍은 한탄 영상, 그 당시 거금을 주고 샀던 젠틀몬스터 안경을 끼고 코펜하겐 행 기차 베드에서 누워 찍은 셀카를 에어드롭으로 옮겼다. 그리고 정말 간만에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여행에 대한 욕구가 급격히 없어졌는데 말이야. 여행이 미친 듯이 즐겁고 행복한 건 아니지만, 리프레시가 되는 건 분명하다. 그 속에서 얻은 기운으로 또 살아가는 게 내 삶이었던 것 같다.


날이 풀리니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많고, 나는 벌써 20대의 끝자락을 걷고 있다. 29이란 나이가 벌써부터 아쉬울 따름.


29살 봄엔 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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