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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책드림 Aug 13. 2020

엄마! 멈춰 주세요.

비야 비야 제발 멈춰라.

계속되는 장맛비에 문을 열어 놓지 못한 우리 집 초록이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잎들이 쭈글거리나 꽃들이 툭툭 떨어지기도 하고 다육이들은 물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문을 닫고 생활하다 보니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물 주기를 줄이거나 단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해가 쨍하고 뜰 거야. 조금만 참아 주겠니?" 하며 혼잣말을 건네고 있는지가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태풍까지 온다는 뉴스를 접하고 한숨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금방 지나가겠거니 하고 애써 외면하며 밤잠을 청했더랬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리 없는 아우성이 여기저기 한가득이다.    




비들 비들 시들어가는 아이부터 녹아내리는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옮길 수 있는 작은 아이들부터 화장실로 데려다 샤워를 시켜주었다.


계속된 비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실내에서 뿌리가 녹아내려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먼저 물부터 먹고 봐야지. 잔뜩 물을 머금은 아이들은 이내 싱그럽게 빛이 난다. 참 반가운 얼굴이다. 얼마나 물 고픔을 참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짠하고 속절없는 하늘에 대고 혀를 끌끌 차 보도기 한다.



언젠가부터 식물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자식을 대할 때와 비슷해져 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식물에게 자꾸만 감정이입이 되고 혼잣말의 상대가 되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 부모들은 자식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항상 앞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것을 먼저 채워주려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나도 그래서일까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먼저 제시해서 화를 부른 적도 더러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만 해도 엄마가 입혀주는 대로 옷도 입고 다니라는 학원도 군말 없이 잘 도 다녔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아이들은 나의 손을 덜 타기 시작했다. 참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허전함에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먼저 제시했고 아들은 "엄마!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제는 제가 필요한 것만 해주세요."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한테 이야기를 한다. "그래. 알겠다." 참 쿨하게 대답은 했지만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쯤이었을까 헛헛한 마음을 아무 말 없이 받아 줄 상대를 찾았던 때가. 새로운 싹이 나고 연약해 보이는 꽃과 잎들이 어쩌면 나에게는 처음 만나는 신생아의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꼭 보살펴 주어야만 하는 아가였고 그 아가도 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우리는 금방 사랑에 빠져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식물들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애틋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내 등 뒤로 아들은 "엄마, 식물이 우리보다 좋아요?"라고 투덜거리듯 이야기를 했다. 딸도 맞장구를 친다. "엄마는 요즘 식물에 빠져도 너무 빠졌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니! 너희보다 소중한 것은 없지."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 통쾌했다. 지나친 관심을 갖는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지네들이 쓰는 줄임말도 모른다고 은근 무시한 얼굴이 스쳤다. 그날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한 것 같아서 좋았다. "왜, 너희들보다 꽃과 식물에게 관심을 주니 질투 나니?"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아이고 꼬셔라."   

 


나도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고 여자였나 보다. 그래도 그 자식 사랑이 어디 가겠나. 무심한 척하면서 아들과 딸 주변을 서성이는 것은 변함없는 일상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막 덤비는 사랑은 안 한다. 아들 말대로 필요할 때만 손을 잡아 주려고 다짐하고 다짐을 해 본다.  


                



내가 키우는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서 멀쩡한 아이를 몇 번씩 분갈이해 주고 아직도 수분이 남아 있는데도 가득 물을 주어 허망하게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보면 꼭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 비가 이제는 멈추어야 하는데 말이다. 속절없는 비가 되었든 자식에게 무조건 퍼부어대는 사랑이었든 간에 반드시 멈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인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를 더듬어 본다. "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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