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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원 Apr 07. 2022

커피의 미학

내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

한국에 '술을 배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커피도 배운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난 베이징에 살면서 처음 커피를 배운 셈이다. 인턴 시절에는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생활비에 월세 내기도 빠듯했기에, 별다방 커피는 물론 값이 비교적 저렴한 커피도 내 돈 주고 사마실 생각 조차 못했다. 나에겐 커피란 그저 '누군가 밥 먹고 후식으로 한턱 쏘는 것'에 불과했다. 경제사정을 제쳐 두고라도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내 입맛도 한몫 거들었다. 맛은 씁쓸하기만 하고 마시고 나면 배도 불편한 커피를 왜 비싼 돈 주고, 그것도 매일같이 마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커피를 좋아하게 된 시기는 인턴을 마치고 정식직원이 되어 한참 일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사실 익숙해졌다는 표현보다 낯선 외국에서의 낯선 직장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막 입사했을 땐 한창 일 배우느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누구나 그렇듯 늘 마음이 조급하고 긴장의 연속인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연스럽게 외로움의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 매일 아침 잔뜩 긴장된 마음으로 출근하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지내다가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생활이 한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혼자라서 외롭다 느낄 여유조차 사치스러운, 오히려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일과 생활이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혼자라는 느낌이 헛헛함으로, 다시 고독감과 외로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가 외로움으로부터 도피했던 곳이 바로 커피였다. 씁쓸한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는 아니지만 진한 원두 향이 가득한 그 달달한 액체가 코끝부터 감싸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느덧 감미로운 행복감이 온몸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마시기도 전에 눈과 코가 즐겁고 몸이 들뜬다. 뜨거울까봐 조심스레 입술을 갖다 대면 커피 향은 더욱 진한 아찔함으로 입안을 천천히 적신다. 달콤함과 씁쓸함의 환상적인 조합은, 방금 커피를 마셨는데도 또다시 커피와의 조우를 기다리게 만들 만큼 강대하고 집요하다.


난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특히 더 좋아한다. 주말에 혼자 시간을 보나야 할 때, 월요일 아침 뭔가 힘 빠지고 지루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생기를 불어넣을 그 무엇이 절실할 때, 점심시간에 동료들 사이를 빠져나와 혼자의 외로움을 그대로 느껴보고자 할 때, 항상 그렇듯 카페를 찾았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마음에 드는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아 있노라면 외롭고 지루했던 마음이 어느덧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바뀐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혼자라는 느낌이 마냥 부정적이거나 힘든 것만은 아니며 내 자신과 좀 더 친숙해지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결혼을 하고 솔로의 생활에서 철저하게(?) 벗어난 지금, 예전과는 달리 커피를 혼자보다 함께 마실 기회가 더 많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마셨던 커피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행복의 시간을 나누기 위한 존재가 되었다. 혼자이든 함께이든 커피가 내게 주는 특별한 행복은 언제나 한결같다. 이제는 달달한 맛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노의 시원씁쓸한 맛도, 집에서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의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맛도 좋아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즐기는 커피는 서로 간의 거리를 한층 더 가깝게 만든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홀로 즐기는 커피 또한 그 무엇에 비할 바 없이 맛있다. 외로움으로 배우게 된 커피가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향긋한 씁쓸함으로 내 곁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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