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폭주

by 마정열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준비 기간을 포함하여 시험 기간에는 동하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좌우하는 내신 점수는 그녀에 대한 관심마저 유보할 정도로 동하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항상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 대한 자책으로 동하는 기말고사 준비에 몰두하였다.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갔다.

매일 반복이었다. 내일이면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다. 공부한 것만큼 잘 치렀다고 자부한 기말고사였다. 동하는 겨울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공원은 휑하였다. 몇 사람이 모여 있는 어둠 속의 실루엣이 눈에 어른거렸다. 동하는 그들의 뒤로 길을 잡았다. 어두운 공원에 모여 있는 무리는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김장로, 그 나쁜 새끼. 지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 지랄이야!”

동하가 그들을 피해 뒷길로 걸어가고 있을 때 흐릿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권두섭의 목소리였다. 동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있는 벤치 뒤의 관목숲 아래로 몸을 숨기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목소리는 술에 잠겨 있었다.

“자기가 뭔데 교회를 나가라 말라하는 거야. 씨팔, 누가 교회를 무너뜨린다고 그 지랄이야.”

“불칼? 웃기고 있네. 지가 하나님이야 뭐야. 불칼의 심판이 내려?”

“우리가 뭐 그리 큰 잘못을 했지? 우리가 이단이야? 성경 공부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수집한 게 그리 큰 잘못인가?”

그들은 두서없이 한두 마디씩 던지고 있었다. 동하는 그 목소리 중에서 권두섭의 목소리만 인식할 수 있었고, 나머지 목소리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풀 사이로 바라본 그들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중에서 동하가 아는 사람은 권두섭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누군지 모르겠다. 분명 분식점에서 만난 사람도 있을 텐데 그의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들의 안면이 드러날 정도의 빛은 공원에 없었다.

“병신처럼 우리만 이렇게 당해야 되냐? 씨발 억울해서... 우리도 김장로 그 새끼 딸 조져 버릴까?”

순간 그들의 말이 일시에 중단되었다. 동하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 동하의 귀를 후비고 들어왔다.

잠시의 침묵을 끊고 바람 소리에 실려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래 니미, 그 새끼도 한 번 당해 봐야 돼.”

“불칼? 우리가 있는 곳은 지옥이고, 너희가 있는 곳은 천국이냐? 너희가 있는 곳이 지옥임을 깨닫게 해 주마.”

몇 잔의 술이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군중심리에 부추김을 받은 격앙된 감정으로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김장로의 말대로 사탄의 무리였다.

그들은 우르르 일어섰다. 동하도 본능적으로 그들의 뒤를 밟았다. 시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뛰는 가슴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동하에게 그들을 막을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 자신의 탓만 같아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공원 입구에서 두 패로 나누어졌다. 동하는 어느 쪽을 따라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권두섭이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동하는 권두섭이 속하지 않은 패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참 하더니 겨울 밤거리의 불빛을 헤치고 어느 학원 앞에 멈추었다. 마침 학원은 강의가 끝났는지 학생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학원 건너편에서 먹이를 찾는 매의 눈초리로 학원에서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시하였다. 동하는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채 학원에서 나오는 학생들과 그녀를 가로채려는 그들을 번갈아 지켜보았다.

학원의 출입문을 밀치고 나오는 그녀가 보였다. 자줏빛 외투에 입은 그녀는 학원 입구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렸다. 그들은 부산스럽게 말을 주고받으며 건널목을 건너려 했다.

동하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쿵쾅댔다. 그러나 그들이 건널목을 건너기 전에 그녀는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탔다. 순간 동하는 밤늦은 시간에 딸의 마중을 나온 그녀의 부모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자동차 불빛 홍수 속으로 사라지는 승용차를 망연히 바라보던 그들은 어둠 속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었다.

동하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발을 옮겼다. 그날 밤 동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토막토막 끊어져 이어지지 않는 꿈의 내용 속에서도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만은 아침까지 또렷이 기억이 났다.

다음날 동하는 시험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시험을 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시험이 끝났다. 기형이 동하에게 다가왔다.

“시험 잘 봤냐? 나는 망친 거 같다. 우리 영화나 보러 가자.”

“어, 미안. 나 오늘 일이 좀 있어.”

동하는 기형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학교를 빠져나가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근무시간이 되지 않았는지 편의점에 권두섭이 보이지 않았다. 동하는 권두섭의 자취방으로 올라갔다. 자취방에도 불은 꺼져 있었다. 지하의 자취방은 어두워 권두섭은 방에 있을 때면 항상 불을 켜고 있었다.

동하는 다시 편의점으로 갔다. 그리고 편의점 건너편에 있는 이층의 만화 가게로 올라갔다. 만화 가게의 창가 자리에서는 편의점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동하는 그 자리에 앉아 줄곧 편의점 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권두섭이 편의점에 나타났다. 권두섭은 9시까지 근무를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동하도 만화 가게에서 나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자신의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동하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권두섭의 자취방을 지켜보았다.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냉랭한 밤공기 속에서 하늘의 별은 더욱 맑게 빛나고 있었다. 동하는 높은 별 하나하나를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별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주기를 바랐다. “너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동하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나’하고 생각해 보았다. 동하는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일, 그 방법은 그들의 행위를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집을 알지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녀에게, 그녀의 부모에게 그녀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알린들 그녀가, 그녀의 부모가 나의 말을 믿을 것인가. 아마 나를 미친놈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에 알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유성이 하나 떨어졌다. 그녀는 결코 떨어져서는 안 되는 별이었다.

동하는 권두섭의 자취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보고 집으로 갔다. 그날 이후, 동하는 권두섭의 편의점 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그의 자취방 근처로 나가 그의 행적을 주시하였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동하는 공원에서의 그들의 말과 그 이후의 행동이 술에 취해 벌인 충동적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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