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섭의 행동을 감시하던 나흘째 되던 날, 동하는 이제 잠복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봇대 뒤 어둠에서 나왔다. 그때 마침 대문이 열리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바쁜 걸음으로 나서는 권두섭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렸다. 동하는 그의 외출이 그녀와 관계된 일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집에서 이십여 분을 걸어 산자락의 건축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 건축 현장은 공사가 중단된 곳이었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주민들 사이에 말이 많았던 그 건물은 공사가 중도에 중단되어 흉물처럼 전락한 모습이었다. 우중충한 콘크리트 외벽에 철근 구조물은 잔뜩 녹슬어 있었고, 건물 주위에는 외부인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철사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권두섭은 철조망의 한쪽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불빛 한 점 없는 건물 안을 조심스럽게 걸어 3층으로 올라갔다. 동하도 그의 뒤를 숨죽이며 좇아 3층으로 올라가 건축자재 뒤에 몸을 숨겼다.
플래시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거렸다. 그들은 모두 네 명이었고, 그들의 다리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흔들리는 플래시 불빛 따라 언뜻언뜻 보였다.
“아, 씨발! 이년 꼬셔 내려고 얼마나 쇼를 했는지 아냐?”
누군가가 호기 어린 목소리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이년 친구를 내가 알잖아. 걔 꼬셔서 이년하고 약속해 놓고 중간에 내가 인터셉트했잖아. 내가 영화를 찍었다.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 이 계획 실행하려고 친구한테 차도 빌렸다.”
이 일이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치러야 하는 대업이던가? 동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김에 튀어나온 말을 그토록 지키려는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가?
광기.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는데 이 이상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수고했다. 빨리 해치우자.”
“평소에 이년을...”
다시 불빛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냐, 이건 아냐. 여기서 그만두자.”
그때 누군가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난 니들이 이렇게까지 할지 몰랐어. 이건 아니잖아.”
“뭐야 이 새끼는? 이년한테 내 얼굴까지 다 알려졌는데 지금 그만두면 나는 뭐가 돼.”
“그래, 같이 가야지. 이제 와서 빼면 안 되지.”
“우리가 당했다고 이러면 안 되잖아.”
그의 목소리는 이제 울음 섞인 애원조로 변하였다.
“왜 우리만 당해야 되는데? 약한 자는 항상 당해야만 되는 거야?”
“이건 복수도 뭐도 아니야. 당사자도 아니잖아.”
“당사자가 아니니까 더 아프겠지. 김장로, 그 나쁜 새끼... 얼마나 아픈지 자신도 똑똑히 알아야 돼.”
그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다.
“이 짓 하려고 우리가 모여 공부한 건 아니잖아.”
“공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겠지.”
누군가의 냉소에 가득 찬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동하에게 들렸다.
저들은 진정한 예수의 탐구자가 아니었다. 욕망의 화신들일뿐이다. 인간적 예수의 행적을 추적한다는 것이 예수를 따르거나 거기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자위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동하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자신을 주체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나는 그만두겠어.”
플래시 불빛 속에서 한 사내가 돌아서는 것이 보였다.
“저 새끼 잡아!”
갑자기 발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플래시 불빛이 요동을 쳤다.
동하는 건축자재의 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한 사람을 벽으로 몰아붙여놓고 집단 린치를 가하였다.
“저 새끼 묶어. 입에 테이프 붙이고.”
“더러운 새끼, 지 혼자 살려고 지랄이야.”
누군가가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말을 내질렀다.
“이젠 어쩔 수 없어. 우린 불칼을 넘어선 거야.”
권두섭의 목소리였다.
폭풍우가 몰아치듯 소란스러웠던 현장이 이내 조용해졌다. 괴괴한 침묵이 흘렀다. 플래시 불빛이 하나둘 꺼졌다. 주위는 절대 암흑 그 자체였다.
청테이프로 봉해진 입에서 삐져나오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짐승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의 공간을 가득 메웠다.
동하는 귀를 틀어막았다. 제정신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하에게는 뛰어나가 그들과 대항할 힘이 없었다. 동하는 사랑을 지킬 용기가 없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렇게 눈앞에서 깨어지는데 가슴만 부어 잡고 괴로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나 역시 이상적 존재 하나를 만들어 가슴에 품고 그것을 즐기는 욕망덩어리에 불과했다. 지금 이 공간은 나의 허위의식을 확인하는 자리이고, 나의 존재가 산산이 깨어지는 곳이다.
악몽의 시간은 끝날 줄을 몰랐다. 숨이 막혀 죽일 지경이었다.
다시 플래시 불빛이 하나둘씩 흔들거리며 건물 벽면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플래시 불빛이 몇 번 번쩍이며 터졌다.
“저놈 사진도 찍어 두자.”
다시 카메라의 불빛이 번쩍거렸다.
“너 어디서 입 벌리고 다니지 마라. 삐딱하면 니 사진 인터넷에 뜬다. 그리고 너도 말조심해. 니가 저년 덮치고 있는 사진 다 찍어 놨어. 너 역시 우리랑 같은 배 탄 거다.”
잠시 부산한 움직임이 보였다. 그들은 결박해 놓았던 여자와 남자를 풀어 주고 이내 자리를 벗어났다.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은 움직임이 없었다. 한참 후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
“......”
여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보였다. 여자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고, 곧이어 남자도 건물 밖으로 나갔다.
동하는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울음을 삼키고 어둠 속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과 무력감으로 한참을 울었다.
소리 죽여 우는 울음은 텅 빈 어둠의 공간을 가르고 겨울의 하늘로 사라졌다. 자신의 울음을 들어줄 그 어떤 존재도 없다고 동하는 느꼈다.
동하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건물을 나왔다. 비탈길에 다리가 몇 번을 꺾였다. 별빛은 어둠을 뚫고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십자가가 검은 하늘을 등지고 빛나고 있었다.
동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교회 안은 어두웠다. 예배당 안의 아무 자리에나 주저앉았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동하는 두 손을 맞잡았다. 이마를 손 위에 기대었다.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하나님, 보셨어요?”
흐느끼는 소리가 예배당 안을 조용히 흘러 다녔다.
“왜 지켜만 보고 계셨나요? 세상의 불의에 눈 감으신 하나님, 당신이 창조한 세상이 재미있으신가요?”
울음은 점점 파장을 넓혀 갔다.
당신이 창조했으면 책임을 져야지요. 왜 책임도 못 질 일을 벌였나요? 한때는 복수의 하나님 아니었나요? 당신을 어기는 존재들에게 철저한 응징을 가하던 하나님이 언제부터 자비의 화신이 되었나요?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 뜻대로 좋아졌나요? 만족하세요?
동하의 울음은 무관심한 하나님에 대한 울분이었다. 그 울음은 점차 사랑을 파괴한 자에 대한 분노로 변해갔다.
하나님, 당신이 못 하겠다면 내가 하지요. 내가요.
용서할 수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 불칼을 넘었다고 했으니 불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동하는 교회를 나와 인근 편의점에서 라이터를 샀다. 바람 부는 겨울의 거리를 걸어 권두섭의 자취방으로 갔다. 그들 일행 중에서 동하가 알고 있는 사람은 권두섭밖에 없었다.
권두섭의 자취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동하는 집의 뒤쪽으로 돌아가 자취방의 창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곳은 산 아래 길이어서 평소에도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동하는 가로등도 없는 길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자취방의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불이 꺼졌다. 하지만 동하는 성급하게 서둘지 않았다. 그가 완전히 잠이 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찬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이었다. 동하는 하늘을 보며 복수를 다짐했다.
동하는 자취방 창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준비한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방 안으로 던졌다. 신문지 불빛에 권두섭의 잠든 얼굴이 언뜻 보였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동하는 저런 얼굴로 신의 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는 유황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심판이고, 하나님의 심판이다.
불붙은 신문지는 동하의 손을 떠나 권두섭의 방 안에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순간 동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의 복수를 대행하는 정의로운 사도였을까, 자신이 취하지 못하는 것을 가져간 존재에 대한 질투의 화신이었을까, 아니면 악마의 영이 육신을 차지하였던 것일까.
불은 잠자리 옆에 함부로 던져둔 옷가지로 옮겨 붙었다. 그것을 보고서야 동하는 또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동하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도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떨어져 바라본 권두섭의 창문은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동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달렸다. 그날 밤, 동하는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달았다.
동하는 소방차의 환청을 들으며 두려움 속에서 밤을 새웠다.
권두섭은 죽었다. 신문에 그는 질식하여 죽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전열 기구의 가열로 불이 났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그는 질식사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하는 그가 불에 타 죽은 것이라 믿었다. 불칼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 철저히 믿었다. 그것이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살인의 죄책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는 유일한 믿음이었다.
주일날, 동하는 그녀를 만나면 내가 복수했으니 슬퍼 말라고 말하려고 했다. 아니 말은 못 해도 그런 눈빛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김장로도 교회에 없었다.
기형도 그녀의 소식을 몰랐다. 그녀는 겨울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가을꽃처럼 사라졌다.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회는 조용했다. 아무도 권두섭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김장로의 사라짐도, 그녀의 사라짐도 교인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다.
교회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교회를 채우고 있었지만, 예배 시간에 그녀의 흰 목덜미를 발견할 수 없는 교회는 동하에게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었다.
사라진 가을꽃을 추억하며 동하는 교회와 이별을 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