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심한 4월 말이었다. 1차 지필고사 기간이었다. 학생들이 하교하여 텅 빈 학교 운동장에는 멀리 고비사막에서 유배 온 바람만이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나는 서술형 채점을 하며 가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연초록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나는 다시 한번 상대를 호출하였다.
“이신영 선생님이시죠?”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렇습니다.”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이 민성배의 아내라고 밝히고 잠깐 시간을 내어 만나자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가슴이 덜컹거림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와 민성배의 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도덕적으로 무엇을 크게 잘못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당해지자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쇼팽의 녹턴이다. 임용 공부를 할 때 자주 다니던 노량진의 카페에서 자주 듣던 곡이다.
“지금 이 곡이 무슨 곡이죠?”
“쇼팽의 녹턴이에요. 흔히 야상곡이라고 하는.”
카페의 여주인이 알려주었다. 이혼하기를 잘했다고, 지금 생활이 너무 좋다는 40대 초반의 여인이었다.
“학생도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하지 마. 혼자 재미있게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그때는 진짜 그럴 생각이었다.
“어서 오세요.”
하이톤의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녹턴의 피아노 선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카페 안은 사람이 드문드문 박혀 있어 민성배의 아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홀로 앉아 있는 여인은 그녀밖에 없었다.
민성배의 아내를 만나려고 카페로 오는 도중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혼란스럽기만 했다. 당당해지자고 누차 다짐했지만, 가슴은 방망이로 치는 듯 두근거렸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어요. 조금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 당당함에 내가 질릴 지경이었어요. 돌이켜보니 나 역시 결혼생활이 환상적으로 달콤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와는 아는 선배의 소개로 만났는데 나이도 늦고 해서 쫓기듯 결혼한 것 같아요.”
가벼운 인사에 이어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잠시 뜸을 들이던 민성배의 아내는 조금의 분노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고 했어요. 그러나 이유는 알아야 하잖아요. 왜 이혼을 하자고 하는지. 그래서 물었죠. 이유가 뭐냐고.”
나는 순간 긴장을 했다. 민성배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대요.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잃어버렸던 사랑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당신 이야기를 했어요. 예전에 사랑했는데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고.”
‘이런 젠장’
나는 속으로 터지는 욕지기를 겨우 참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한 가정을 파괴하는 악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이? 예전에 사랑하다가 의도치 않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못다 한 사랑을 불태운다?
무슨 삼류 로맨스 소설만도 못한 그의 소설에 일일이 반박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당당한 그의 태도에 정나미가 떨어졌어요.”
“죄송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나는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왔다. 눈물이 나왔다. 민성배에 대한 분노보다는 나에 대한 수치심이 앞섰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 하고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노을마저 사라진 거리에 먼지 냄새를 품은 바람이 어둠과 함께 몰려왔다.
민성배는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만나자고 수차 연락이 왔다. 나는 만날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진짜 그와는 얼굴도 마주치기가 싫었다. 민성배는 급기야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카페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이혼을 했다고 했다. 그런 말을 왜 나에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자신과 결혼을 하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경멸의 눈빛이었을까, 분노의 눈빛이었을까?
나의 태도와는 아랑곳없이 그의 요구는 끈질기었고, 그러는 만큼 민성배에 대한 나의 마음은 더욱 두껍게 성벽을 치듯 굳게 닫혀만 갔다.
그에게 굳이 밝히고 싶지도 않았지만 나는 당신을 남자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나에게 남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 선생이야, 예전에 부탁했던 선생?”
민성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날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전화하지 마세요.”
그의 등을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나의 말이 화살이 되어 그의 심장에 꽂히길 바랐다.
민성배는 나와 권정수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나 보다. 며칠 후에 민성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죽고 싶고, 그리고 죽이고 싶다. 눈앞에 보이면 죽일 것 같아 문자 한다. 나의 부끄러움을 풀 곳이 너밖에 없어 못난 걸 알면서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민성배와는 끝났다. 권정수와의 지루한 관계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권정수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그만 만나자는 나의 말에 권정수는 민성배 때문이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그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장님, 귀머거리도 아닌데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 정도는 나도 들을 줄 알라.”
나는 다 세상 사람들 소문이며 오해라고 말했다.
“상관없어. 이제 다 의미 없어.”
그는 일어나며 이제 연락 안 할게, 하며 내 곁을 떠났다.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유의 몸, 이제 자유다.
권정수와 헤어진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그의 소식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술집에서 사소한 시비가 붙어 교육청에서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징계가 문제가 아니었다. 징계처분을 받은 교사는 다음 해에 강제 전출을 가야 한다. 전출 학교는 교육청에서 임의로 정한다. 삶의 본거지와는 되도록 먼 곳으로.
나 때문인가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견디기로 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간사하여 권정수의 사건은 며칠이 지나자 뇌리에서 점점 흐릿하게 지워져 갔다.
*
“이선생, 기사 봤어?”
출근하자마자 교무부장이 부산스럽게 나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무슨 기사요?”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교무부장이 신문을 건넸다.
‘교사, 장학사 폭행’
신문 한구석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남양주=연합뉴스) 박민동 기자 = 현직 교사가 장학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양주경찰서는 24일 A고 교사 권 모 씨를 폭행 혐의로 입건하고 조사하고 있다. 권 씨는 전날 오후 11시 3분께 남양주 별내면의 한 주택에서 장학사 민모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 씨는 최근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징계가 장학사 민 씨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민 씨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씨는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해 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권 씨를 폭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그날 하루 종일 교무실은 어수선했다. 말들은 마른풀에 불이 붙은 듯 퍼져나갔다. 말은 말을 더하여 여러 사람의 입을 옮겨 다녔다.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이쪽저쪽 헤픈 웃음을 흘러 사내들을 파멸시키는 악녀로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직접 말은 안 해도 나는 그들이 나를 보는 눈빛에서 그들의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잘못한 게 없다고 자부한 나이기에 견뎌야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교육청 감사실에 불려 가 참고인 조사까지 받을 때는 수치심에 몇 번이나 감사실을 뛰쳐나와 화장실에서 눈이 퉁퉁 불도록 울었다. 주변 동료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시선도 두려워졌다. 학생들 앞에 설 수가 없었다. 맞서기에는 내가 너무 약했다. 선택은 도피였다. 나는 휴직을 했다. 혼자 있어도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교단이 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겨울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북에서 몰려오는 바람 소리를 세며 저녁노을을 기다렸다. 노을이 방안을 물들이면 아, 이제 또 밤이 오겠구나, 하고 며칠째 개지도 않은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불속은 따뜻했다. 하지만 북풍은 어느새 늑골 사이에 스며들어 가슴을 웅웅 울리고 있었다. 눈을 감아 보지만 바람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시커먼 천장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내가 보였다. 모진 돌팔매에 상처투성이의 알몸이 떨고 있었다. 불면의 겨울이었다.
문을 나서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요사이 조금 풀리듯 했던 날씨가 다시 매섭게 바뀌었다.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위리안치의 유배를 끝내고 학교로 나가야 했다.
교무실로 들어서니 당직 근무를 하고 있던 손정희 선생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맞았다.
“어쩐 일이에요, 이 선생님?”
“복직 신청하려고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띠고 대답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손 선생이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따뜻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타인의 온기였다. 나는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감추고 행정실로 내려가 복직 신청을 마쳤다.
옷깃을 세우고 송우리 길을 걸었다. 3년 전 이맘때가 생각났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던 길에 권정수는 나와 보조를 맞추었다.
“양주 B여고에서 근무하셨어요?”
“네.”
이미 밝혀 알고 있던 이야기를 권정수는 되물었다.
“B여고는 어때요?”
“좋았어요. 선생님도 좋고, 아이들도 좋고.”
“나는 xx고등학교에서 개고생만 하다 온 것 같아요.”
권정수의 말은 그냥 나에게 말을 붙이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내내 권정수는 내가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xx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눈발은 제법 큰 알갱이가 되어 의정부교도소 담벼락을 내리치고 있었다. 찻길에서 정문까지의 길이 사뭇 길게 느껴졌다. 교도소에 들어섰다. 면회 신청을 하고 잠시 기다리자 수형자 번호가 안내판에 뜨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5호실로 안내되었다.
권정수가 나타났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이, 두 눈을 마주치기가 어색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왔어.”
침묵을 깨고 권정수가 말했다.
“그냥 왔어.”
“.....”
“미안해”
말하는 나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뭐가”
“아니, 그냥.”
“그러지 마. 네가 뭘 미안해해, 내가 미안하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너를 힘들게 해서 진짜 미안해.”
“나를 때리지, 왜 그를 때렸어.”
참으려던 울음이 기어이 새어 나왔다.
“몰라, 아무나 때리고 싶었나 봐. 징계에 그가 개입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그냥 화가 났어.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망가지는 나를 견딜 수 없었던 거였어.”
대화는 거기서 잠시 끊겼다. 권정수의 눈에도 물기가 고였다. 권정수가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말했다.
“어떻게 지내?”
“그냥 있어.”
“힘들겠다.”
“그렇지 뭐. 어떻게 견딜까 늘 생각 중이야.”
교도소를 나섰다. 세상은 이제 온통 눈밭이다. 큰길로 나서자 눈앞에 신숙주 묘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눈을 덮고 있는 무덤은 신숙주와 그의 아내의 쌍분묘였다. 중앙에 묘비가 있고 각 봉분 앞에 여러 석상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나는 묘 앞에서 신숙주는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해 보았다. 신숙주는 분명히 우리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 오직 쉽게 상하는 숙주나물의 이미지로 신숙주를 기억할 뿐이었다.
신숙주는 세종의 유언을 저버린 배신자, 동료들을 배신한 변절자로 지목되어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에게 이런 비난을 이겨낼 힘이 있었고, 자신의 행위에 신념이 있었기에 맞설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비난을 견딜 신념과 용기가 있는가?
무덤 위로 눈은 쌓여 가고 나는 그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