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관계가 지루하다고 느낀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그와 만난 것은 삼 년 전이다. 그와 나는 같은 해, 같은 학교로 부임했다. 경기도 북부, 포천. 그리고 송우리. 소나무가 무성한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의정부에 인접해 있는 곳이라 대단지 아파트가 있고, 여러 상업 시설이 잘 발달한, 포천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이다. 거기에 소재한 고등학교는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첫눈에 산뜻한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개학 준비로 한창 바쁜 2월 말, 교직원 업무분장 시간에 그와 처음 만났다. 그와 나는 교무부로 편성되었다. 그날 점심은 부서별로 하였다. 우리 교무부는 학교 앞 돈가스집으로 모두 자리를 옮겼다. 식사가 나오기 전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권정수라고 합니다. 전에 양주 xx고등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한적한 홀 안에 가벼운 파문을 일으키는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과목은 역사입니다. 집은 노원인데 자취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직 싱글입니다. 포천에서 근무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벙글거리며 자신의 소개를 이어나갔다. 선생들은 가벼운 박수로 환대했다. 나는 그가 너무 많은 정보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신영이에요. 영어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벼운 박수 소리가 났다. 나는 선생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권정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환하게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식사가 나왔다. 기름에 튀겨진, 튀김옷을 두른 돼지고기 위에 진한 갈색의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나이프로 한 조각을 썰어 입에 물었을 때 교무부장이 입안 가득 음식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이선생도 양주에서 근무했다고 하지 않았어?”
“네.”
짧게 대답했다.
“그래요? 어디서 근무했어요?”
교무부장 옆에 앉아 있던 권정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B여고에 있었어요.”
“그렇구나. 어쨌든 반갑습니다.”
“네.”
나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다시 나이프로 고기 썰기에 몰두했다. 권정수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교사 사 년 차였다. 집은 강릉이다. 대학을 춘천에서 다니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부모와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대학 사 년 동안 한두 번의 연애는 있었다.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 사람은 없다. 헤어진 후에 잠시 가슴이 아팠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졸업 후 기간제 교사를 3년, 아니 2년 하고 1개월을 했다. 기간제 마지막 해는 병가로 쉰 선생님의 자리를 1개월 동안 잠시 메꾼 것이다.
졸업하는 해, 임용시험에 떨어진 나는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임용시험공부를 병행했고, 다음 해에도 임용시험에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기간제 교사를 해야 했다. 그해 연애를 했다. 같은 학교 국어 선생이었다. 그 전해부터 좋은 관계는 유지했으나 같이 2학년 담임을 맡고, 수학여행을 인솔하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우리는 친해졌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 선생은 다른 학교 선생과 사귀었고, 서로 결혼 이야기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선생이 알려주었다. 그 선생은 말을 하면서도 줄곧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바람까지 몹시 부는 가을날이었다. 더 상처받지 말고, 나 자신을 지키고자 그와 아무 말 없이 헤어지자고 마음을 먹고 그와는 만남을 삼가던 나를 그날, 그는 교문 앞에서부터 나를 뒤쫓아 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진 치고 있는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한참을 걷었다.
“왜 쫓아오는 건데.”
나는 뒤돌아서 한마디 내뱉었다. 내가 듣기에도 비수와 같은 톤이었다.
“할 이야기가 있어.”
그가 말했다.
“나는 없어.”
나는 뒤돌아서서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말하려고 했어.”
그가 뒤쫓아 오면서 말했다.
“됐어, 그만해. 정말 거지 같아. 내가 미안했어, 오해해서.”
나는 돌아서서 그를 향해 날카롭게 내지르고 그에게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기간제 신분이 서러웠다. 그가 나와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가기를 꺼리는 이유가 그것인 것 같았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울었다. 세찬 바람이 거리의 낙엽을 몰고 어두워가는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그해가 지나고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춘천을 떠났다. 터를 잡은 곳이 노량진 고시촌이었다. 그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 기간제라는 어설픈 신분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중간에 한 달, 친구의 부탁으로 철원에서 기간제 교사 노릇을 하기는 했으나 1년 동안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임용 공부를 했다. 교사 임용시험 공고를 보고 나는 망설임도 없이 강원도가 아닌 경기도로 원서를 접수했다. 뭐가 그렇게 강원도가 싫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했다.
임용시험에 합격한 날, 잠시 눈물이 비치기는 했으나 이내 호기롭게 손등으로 눈가를 쓱 문지르고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살자고,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포천은 그리 생소한 곳은 아니었다. 전에 근무하던 B여고도 양주와 포천의 경계 부근에 있어 학교 동료들과 함께 포천에 곧잘 놀러 가곤 했고, 지금 살고 있는 의정부와도 가까워 자주 들리던 곳이었다.
권정수의 집은 포천이다. 그는 포천을 낙후되고 별 볼 일 없는 도시라고 말했다.
포천에서 태어났고, 포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늘 탈출을 꿈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이유로 그는 서울로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의 백수 시절에도 포천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성화셨다. 괜한 집을 두고 할 일도 없으면서 왜 서울에 있냐고. 취직을 하면 다시 올라가더라도 지금은 포천으로 내려와 같이 살자고. 그는 취업을 하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성화를 견디어 냈다.
권정수는 그렇게 싫어했던 포천에 다시 왔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끝에 운명이니 지금부터라도 포천을 사랑해야겠다고 말했다. 눈동자 속으로 휘날리던 벚꽃이 쏟아져 들어오던 날, 그와 함께 교정을 걸으며 나는 그 말을 들었다.
권정수와는 교무부에서 함께 근무하다 보니 친해졌다. 같이 점심을 먹고, 퇴근 후 카페에서 사소한 일상사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권정수는 나보다 한살이 적었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사들 사이에서 우리들의 관계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친구일까, 애인 사이일까? 우리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기간제 때의 사건으로 한동안 나는 이성에 대해 굳게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남자는 그렇고 그런 존재라고 나는 생각했다. 시간은 울타리를 조금씩 허물고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냈다. B여고 때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교사가 있었으나 나는 선뜻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권정수는 유쾌했다. 무심코 건네는 말도 미소로 화답해 주었고, 사소한 세상사도 그의 입을 통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변했다. 말 많은 남자의 수다에 나는 빗장을 풀었다. 나의 자장 안으로 그가 들어왔다. 남자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푼 것은 아니지만 남자를 하나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생각은 버렸다.
결혼?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했다. 연애의 끝이 결혼은 아니라는 생각은 나나 그나 확고했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하루하루 즐거운 삶을 살고자 했다.
남자는 친하다는 것에 어떤 단계를 두고자 하는 것 같다.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그와의 첫 관계는 겨울방학, 평창의 스키장에서였다.
그의 몸은 여름 바다 같았다. 잔잔하던 물결이 점차 뜨거운 파도가 되어 내 몸을 덮쳤다. 나는 그 파도 아래에서 숨이 막혔다. 간신히 몰아 쉰 호흡을 타고 해변의 햇살과 같이 뜨거운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온몸이 열기에 데워진 여름 해변 백사장 위를 뒹구는 듯했다. 창밖에는 백설의 스키장을 삼킬 듯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교사 생활은 임용 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거칠어 갔고, 교실은 점점 황폐해졌다. 그는 선생 노릇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종종 하소연을 했고, 그것은 나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권정수에게 사고가 터졌다. 그는 교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운 것이 교사로서 잘못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잘못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몇 번의 호명에도 학생은 꼼짝을 안 했다.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힌 그는 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강제로 학생을 일으켜 세웠으며, 그의 입에서는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딱 거기까지였다. 학생은 수업 시간 동안 교실 뒤에 서 있었고, 더 이상의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튿날 학생의 부모가 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이내 교육청에서 파견한 감사관이 학교로 들이닥쳤다. 학생의 목 뒷덜미에 그의 손톱으로 인한 작은 상처가 났고, 그것을 본 학생의 부모가 교육청에 진정을 했던 것이다.
학교는 웅성거렸다. 그는 더하겠지만 나 역시 이 사태가 당황스러웠다. 조사를 끝낸 감사관이 전 교직원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하였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력은 안 된다고 감사관은 강조했다.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권정수는 무척 불안해했다. 나도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없을까 방법을 찾아보았다. 이런저런 루트를 알아보던 차에 마침 교육청에서 교원 징계를 담당하는 장학사가 전에 양주의 B여고에서 함께 근무한 교사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학과 민성배는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막 교사 생활을 시작한 풋내기였고, 그는 연구부장직을 수행하던 중견 교사였다. 그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성격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간단하게 용납하지 않는 관계를 조심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나의 주위만 맴돌았다. 나 역시 그때는 남자에 대한 적대감,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때인지라 그의 관심을 모른 척하고 지냈다.
2년간 같이 근무하다가 민성배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고, 다음 해 그가 장학사가 되었다는 것을 정기인사 공문을 통해 알았다. 간혹 교육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갔고, 그는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해 잠시 짬을 내어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민성배 장학사에게 전화를 했다.
“장학사님, 저 이신영이에요. 잘 지내시죠?”
“어, 이선생. 웬일이야? 나야 잘 지내지. 이선생은 어때?”
“저도 잘 지내요.”
사소한 일상의 안부가 지나갔다.
“근데 저...”
나는 어렵게 입을 열어 그의 이야기를 했다. 민성배도 그 건을 알고 있었다. 민성배는 잘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밥 한번 먹자, 고 빈말을 남기고 통화를 종료했다.
권정수가 학생의 부모를 찾아가 백배사죄한 덕분인지, 민성배가 선처를 해서인지는 몰라도 권정수는 서면 경고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끝이 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던 것 같다. 권정수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그는 교직에 대한 회의와 자신의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는 한 학기를 휴직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주기를 진정 바랐다.
나는 민성배 장학사와 몇 번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마음으로 저녁 식사 자리를 내가 마련했다. 이후에도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예전의 소극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나에게 관심이 조금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조금은 눈치를 챘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보건소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아직 아이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이었다.
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그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노력했지만 내 눈에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대화 중간중간에 끼어든 그의 침묵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그 시간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권정수와의 관계가 지루하다고 느낀 것은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권정수가 돌아왔어도 나는 민성배와 만남을 계속했다. 만남은 주로 민성배 쪽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민성배는 활기차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와 자리를 같이하고 있으면 권정수의 침묵이 생각이 났다. 민성배와의 만남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나이기에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큰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 학년이 되자 권정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권정수는 학교의 분위기에 노상 신경을 썼고, 그 스트레스가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고 권정수가 말했다. 나도 그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포천 시내의 다른 학교로 적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