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찍히고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인은 내 이름은 정확히 말하였다.
그런데 누구시죠?
모르겠어요?
글쎄요….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목소리도 잊을 정도로. 나 영주예요. 이영주.
여, 여 영주?
그래요, 이영주.
십여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어, 영주. 어떻게 지냈어?
어떻게 지내긴요, 그냥 지냈지.
신상에 관한 사소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거기 있잖아요, 지금도 있으려나 우리가 종종 만났던 찻집. 이름이 아름드리였던가?
얼굴 한번 보자는 요청에 영주는 흔쾌히 응했고,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것이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찻집이 있다고 짐작되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이리저리 눈길을 돌렸지만, 찻집은 보이지 않았다.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가게가 있을 리 만무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무슨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고 이런 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아.
속으로 투덜거리며 골목을 뒤졌다.
추억이 있다면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종로 거리에 추억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종로에 대한 첫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원 수강을 하러 매일 저녁 수많은 인파가 넘실거리는 종로 거리를 걸었다. 그러고도 두 번이나 대학 시험에 떨어졌다. 삼수생으로 입학 동기들과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어 대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나는 수시로 종로 거리로 나와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종로는 서울의 각처에서 오기에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우리는 피맛골의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다음날은 어김없이 두통에 시달렸지만 우리는 갈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고등어구이에 막걸리를 찾아 다시 종로로 모였다. 대학을 입학한 다음 해 나는 군대로 갔고, 아무 사고 없이, 그야말로 무사고로 전역을 했다.
다시 대학에 돌아오니 대학 생활이 예전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느껴졌다. 느낌이 그랬다. 그때 영주를 만났다. 민화동아리였다. 민화에 관심이 있어 동아리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경제학과였고, 같은 과의 재호가 함께 가자고 며칠 동안 나를 들볶았다. 억지로 끌려간 동아리였지만 느낌은 좋았다. 영주는 역사학과 3학년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어렸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삼수생이고 군대까지 갔다 온 복학생이었다. 영주는 나를 형이라 불렀다. 오빠가 아니고 선배도 아니고 형이라니. 그래도 좋았다.
영주는 키가 컸다. 큰 키에 어울리게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했다. 대학교 3학년이면 화사하게 꾸미고 다니는 것이 보편적인데 영주는 그러지 않았다. 늘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나는 그게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등하교 시 차 안에서 몇 번 만났고, 중간에 종로에서 내려 차도 마셨다. 즐겨 가던 곳이 아름드리였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곳이었다. 영주는 눈을 감고 음악을 즐겼고, 나는 그런 영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게 사귀는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 당시 대학은 늘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사월부터 시작한 시위는 오월에 절정을 이루었고, 여름방학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는 여름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전면전으로 돌입했다.
재호는 학생회 일에 관여하면서 시위의 선봉에 섰고, 영주도 시위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그 당시 대학의 동아리는 소위 이념서클이라 불리는 곳이 많았는데 민화동아리도 성격이 유사했다. 동아리 선배들은 학생회 활동 및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그 영향인지, 각자의 성향인지는 몰라도 동아리 구성원들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다.
나? 나는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냥 시위의 꽁무니에서 돌 몇 개를 집어던지다 돌아서는 어찌 보면 방관자였다. 그런 나를 영주는 실망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망이고 뭐고 없었을 것이다. 설렘은 나 혼자였지, 영주는 나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영주의 관심은 오히려 재호였다. 그것은 영주에게서 직접 들었다.
나 재호 오빠 좋아해.
나는 형이었고, 재호는 오빠였다. 조금은 아팠다. 그 아픔이 가시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영주는 동아리 후배로 남았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날이었다. 사복 경찰이 나를 찾아왔다. 학과 사무실에서 사복 경찰과 마주 앉았다. 영주에 관해 물었다. 나도 며칠 동안 영주가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다.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사복 경찰이 말했다. 그는 영주에 대해 시시콜콜 물었고, 나는 대충 얼버무려 대답했다. 사복 경찰은 명함 한 장을 내게 건네고 할 말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명함을 꾸겨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며칠 후 영주가 싱글거리며 나타났다.
뭔 일이야?
뭔 일은, 다 끝났어요.
너무 앞에 나서지 마라.
말을 하고도 그 말이 너무 우스워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영주는 무표정이었다. 나에게 진짜 실망했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미안하고 부끄럽지.
민망함을 얼버무리기 위해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를 말을 했다.
형, 밥 사줘. 배 고프다.
영주의 말투는 이런 식이었다. 어떨 때는 존댓말, 어떨 때는 반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나는 그게 편했다.
영주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식당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식당에서 영주는 그간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친구가 찾아와 며칠을 함께 지냈다. 친구가 외출하고 없을 때 경찰이 들이닥쳤고 영주는 잡혀 들어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기분이 더럽다고 영주는 투덜거렸다. 다 끝나서 시원하다고 영주는 대낮부터 막걸리를 들이켰다.
끝난 게 아니었다. 엄청 위태로운 시절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았다. 시위대를 지나쳐 도서관으로 들어갈 때 영주는 시위대의 중간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화염병을 든 재호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복학 첫해가 지나갔다.
이듬해 시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대학생이 죽었고, 우리들은 거리로 나갔다. 우리들이었다. 운동권이건 아니건 상관이 없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그때의 상황에 모두 분노했다. 거리는 학생들과 경찰들의 전쟁터였다.
나도 종로로 나갔다.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고 깨진 보도블록을 들었다. 하얀 헬멧을 쓴 사복 경찰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나는 골목으로 달아났다. 영주가 내 앞에서 뛰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주인 듯한 사내가 건물의 셔터를 내렸다. 우리는 어두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밖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어느 만큼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건물을 나왔다.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나 갈게요.
영주가 말했다.
어디로 갈건대?
내가 물었다.
그냥 가다 보면 친구들 있겠죠.
그래 조심해.
영주는 최루탄 자욱한 거리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망연히 서 있었다. 멀리서 전경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골목으로 달아났다.
그날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명동성당 계단에 앉아 밤을 새웠다. 시위 도중 재호를 만났고, 그의 명동성당으로 가자는 말에 이끌려 거기에서 밤을 새우게 된 것이었다. 그 무렵 재호는 동아리방에서 밤새 격문을 써 내려갔고, 인쇄용지를 들고 형사들의 눈을 피해 충무로의 인쇄소를 누비고 다녔다. 변혁에 대한 신념이 있는 재호가 위험해 보였지만, 한편으로 그가 부럽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치열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늘 세상의 주변에서 서성거릴 따름이었다. 내 앞가림에 급급할 뿐이었다.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였다.
새날이 올까?
내가 물었다.
온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이 어둠 속 찬 바닥에 앉아 있는 거겠지.
재호가 대답했다. 그의 말은 단단했다. 멀리서 조금씩 하늘의 어둠이 물컹해져 갔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을 맞이했다.
뜨거운 여름은 지나갔다. 잠시 승리의 기쁨도 맛보았지만, 그해 겨울은 정말로 추웠다.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고, 그리고 나를, 우리를 더욱 춥게 한 것은 재호의 죽음이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더는 억울한 죽음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은밀한 죽음은 아직 사회 곳곳에 남아있었다. 우리는 일상으로 복귀를 마쳤지만 재호는 대통령 선거 이후 맞이하게 될 침묵의 봄을 깨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재호가 얼어붙은 강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이 밝힌 사인은 실족사였다.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재호의 부모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고, 나와 친구들은 울음을 삼키고 재호의 부재를 슬퍼했으며, 학생회의 임원들은 목청을 높여 현실의 부조리함에 분노하였다.
새벽, 서울 거리를 가로질러 우리는 벽제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서울은 겨울의 음산함에 짓눌려 있었다. 차의 앞 유리창에 습기가 차올랐다. 와이퍼를 작동시키니 영구차를 인도하는 앞차의 빨간 후미등이 보였다. 저세상으로 인도하는 신호등 같았다.
영구차에서 관이 꺼내어졌다. 흰 장갑을 낀 손들이 관을 지탱하는 끈을 움켜쥐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호흡을 맞추어 관을 보관소로 옮겼다.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짧은 휴식을 취한 관은 이내 화로 속으로 들어갔다.
철커덩! 화로의 문이 닫혔다. 동시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별이었다.
재호의 몸은 하얀 가루로 남아 목함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졌다. 우리는 재호가 남긴 흔적을 그의 고향으로 옮기기 위해 삼척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삼척으로 가는 강원도의 산길은 순결하도록 하얬다. 눈을 뒤집어쓴 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으스스 떨며 눈을 털어냈다. 눈이 날렸다. 몇 개가 차창에 붙었다. 영주가 입김을 불어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무슨 그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만 하트 모양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와 영주, 그리고 같은 학과와 동아리에서 몇 명이 삼척까지 동행했다. 재호는 삼척의 한 추모공원에 영면했다. 그리고 우리는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몇은 먼저 서울로 올라갔고, 몇은 술자리에 남았다.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말없이 술만 들이켜던 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술자리에 앉을 때부터 심히 걱정스러운 눈길로 영주를 지켜보던 나는 영주를 좇아 나갔다.
영주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눈 위에 발자국을 끌며 걸어갔다. 나는 영주의 뒤를 따르며 그녀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영주는 쓰러지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영주는 가로등 아래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다리 사이로 파묻은 영주를 보았다. 나는 영주가 음식을 토해내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영주의 등을 두들기자 영주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영주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영주가 토해낸 것은 음식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영주는 내내 울면서 눈길을 걸었던 것이었다.
영주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울음을 토해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한참을 운 영주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영주의 어깨를 감싸고 바람 부는 눈길을 걸었다. 눈물로 얼룩진 영주의 볼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눈앞에 여관의 불빛이 보였다. 바람을 피해 쉴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영주는 내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새벽, 나는 영주의 몸을 안았다. 영주가 품에 안겼다. 나의 몸만 실없이 뜨거웠고, 영주의 몸은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영주가 짧은 신음 소리를 냈다.
아침, 우리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간밤의 메마른 정사는 부끄러운 기억일 뿐이었다. 버스 안에서의 우리의 대화는 정사만큼이나 건조했다. 그것을 보면 영주 역시 뜨거운 정사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버스터미널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잘 가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재호의 죽음은 억울하였고, 영주와의 정사는 부끄러웠지만 나는 내 앞가림이 더 급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성실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책과 씨름했다.
대학 시절 무슨 특별한 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경제 여건이 어려운 집안 형편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현실에 발목을 잡혀 지내던 것 같다. 취업이 최우선의 목표였고 나름대로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회에 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았다. 그것은 일정 부분 성공을 했다. 졸업 후 나는 취업에 성공했고, 성실한 사회인이 되었다.
영주와의 연락은 영주의 졸업과 함께 끊어졌다. 그녀가 졸업 후 노무사 자격을 취득하여 노무사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친구들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영주는 동수와 결혼을 했다. 동수가 직접 알려 왔다. 동수 역시 같은 동아리 소속이었다. 동수는 졸업 후 노동단체에서 일을 하였고, 영주가 속한 사무실이 그 단체와 협력 관계가 있어 자주 만나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많은 하객의 축하를 받으며 그들은 웃고 있었다. 영주의 하얀 웨딩드레스가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식이 끝나기 전에 결혼식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