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길을 잃다 2

by 마정열

다리가 아팠다. 잠시 쉬어야겠다. 위암 수술 후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 것을 실감하였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사 들고 파라솔 의자에 걸터앉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종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이지만, 이젠 저 무리 속에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허망한 인생이었다.


동수의 소식은 내가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렸다. 동수는 점점 노동계의 거물이 되어갔다. 급기야는 대학 시절, 우리가 그렇게 경멸하던 정당의 일원이 되어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수와 영주를 다시 만난 것은 십 년 전, 정화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정화는 간암으로 죽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희미해져 가는 인연을 다시 이어주었다.

나와 동수와 정화는 모두 동아리 친구였다. 동수와 정화는 국문학과였다. 동아리에서 같은 학년은 죽은 동수를 포함하여 모두 네 명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나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살아있는 정화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그가 죽기 육 개월 전이었다. 그때 그는 시인이었고, 살아있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도봉산 중턱에서 그는 시를 읊조렸다.

얼마를 더 가야 쉴 수 있나.

느릿느릿 산을 오르던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것은 내게 묻는 말이 아니었다. 그를 바라보니 그의 눈길을 명확한 초점이 없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산을 오르자고 제안을 한 것은 정화였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그를 나는 주택 매매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만났다.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그는 도봉산을 가자고 말했다. 어차피 손님도 없으니 산이나 가자는 것이었다.

느닷없는 그의 제안에 나는 어리둥절하였지만, 그는 벌써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슈퍼에서 소주와 과자 몇 개를 사 들고 우리는 산길을 올랐다.

굳이 정상에 오르려는 마음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산 중턱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울고 있었다.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그가 말했다.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 수 있을까?

어디서 본 듯한 문장이지만, 나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세상의 바람과 놀 자신이 없는데 그냥 깨끗한 잠적이 좋지 않을까?

그가 빈 잔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받어.

나는 어디에서 읽었는지 끝내 생각이 나지 않아 타박하듯 한마디 던지고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하늘을 물들이고 해가 지고 있었다.

새벽의 어둠을 찢고 전화벨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전화기 저쪽에서 동아리 후배인 우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화 형이 죽었어요.

잠이 덜 깬 몽롱한 의식 속으로 비수와 같은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은 채 여섯 달 전, 도봉산에서의 대화를 생각했다.

나도 풍장이나 할까, 멋지지 않냐?

황동규 시인의 시였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이 났다.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풀린 듯하여 내가 한마디 던졌다.

멋진 죽음이 있을까?

삶이 멋지지 않았으니 죽음이라도 멋져야 되지 않겠어? 어떤 죽음이 멋진 죽음인지 오늘부터 한 번 탐구해 봐야겠네. 하긴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는데 개 같은 삶을 살고서 멋진 죽음을 탐하다니, 터무니없는 욕심이지.

정화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술을 털어 넣었다. 그때 정화는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간암이라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 듯하였다.

정화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던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거운 겨울비였다. 날은 칙칙했고, 봄기운은 느낄 수 없는 이월이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었지만 장례식장의 공기는 무거웠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향을 피어도 그의 영혼이 올 것 같지 않고, 영정을 향해 절을 해도 그가 감응할 것 같지 않았다.

조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접객실의 한구석에 대학 동창들이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분향소를 나온 나는 거기로 가 열없는 악수를 주고받고 그들 틈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멀건 육개장 휘저으며 황천강을 건너는 정화 생각보다는 내일 처리할 업무를 먼저 떠올렸다. 저녁을 굶었지만 장례식장의 음식은 식욕을 불러일으킬 음식은 아니었다. 식사를 미리 마친 동창들은 간혹 정화의 이야기를 끼어 넣으며 세상사에 관해 다양한 견해를 주고받았다. 동창들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나는 음식을 깨작거리며 뒤적였다. 그럭저럭 밥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웠을 무렵 동수와 영주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그들이 접객실로 넘어왔다. 우리는 동수와 악수를 나누었고, 영주는 가벼운 목례로 우리와 인사했다. 정화의 아내가 우리의 자리로 찾아왔다. 정화의 아내는 수척했다. 검은 상복이 그녀를 더욱 파리하게 보이게 했다. 고맙다고 그녀가 말했다.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녀가 물었다. 우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영주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끄떡였다. 동수와 영주의 몫으로 상이 차려졌다. 정화의 아내가 시장할 텐데 많이 드시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동수는 밥을 먹지 않고 술을 마셨다. 영주는 동수를 만류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동수는 대리운전을 할 테니 걱정 말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동수는 말이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그랬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여러 주제를 섭렵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에게 동수의 이야기는 어떠한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백색 소음에 불과했다. 나는 곁눈으로 영주를 보았다. 영주는 아무 말 없이, 희로애락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음식만 뒤적이고 있었다.

동수가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되었다는 소식은 육 개월 전, 정화에게서 들었다. 동수가 소속된 당은 동수가 증오해 마지않던 당이었다. 그 당은 우리 민족사의 수치이고, 온갖 민족사의 모순을 만들어 낸 당이라는 말을 동수는 노상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당에 동수가 들어갔다. 어떤 마음으로 그가 그 당에 입당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한 번만이라도 그를 만나서 그의 변을 듣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변절을 따지기에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거든. 먹고살 길을 찾아 신념을 버린 것은 내가 먼저였어.

정화가 말했다. 술기운인지, 노을에 물들었는지 정화의 얼굴은 붉었다.

그런데 며칠 전 동수를 만났어. 부동산 업계 정책 토론회로 국회를 갔는데 거기서 만났어.

정화가 말을 멈추더니 잠시 후에 오래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동수에게 노동자 단체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이야기하던 날이 생각났다. 식당에서 동수와 술잔을 나누었지.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해. 그러나 믿음을 포기한 것은 아니야. 그렇게 말했던 거 같아. 행동이 없는 믿음은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구구절절 변명의 말은 지난날을 더럽힐 뿐이다. 너의 언어로 인해 나의 삶, 나의 신념까지 더럽힐 수는 없다. 동수의 말은 날카로웠고 그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어. 나는 동수를 이해했다. 타인으로 인해 자신이 흔들리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을 거야. 함께 하지 못한 내가 도리어 미안했지.

졸업 후, 동수와 정화는 같은 단체에서 일했다. 그 단체에는 정화가 먼저 들어갔고, 현장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하던 동수가 나중에 합류했다. 나는 정화가 노동자 단체를 그만둔 사연을 알고 있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동수가 열렬한 투사형이라면 정화는 사색적 비판가형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고 철저히 현실타협적인 나는 동아리 내에서 정화와 좀 더 친밀했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우리는 종종 만났다.

정화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운영하던 식당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단시간 내에 정리도 어려웠다. 정화가 일손을 보태야 했다. 정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몇 달의 고생 끝에 정화가 어머니 대신 완전히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럭저럭 운영되던 식당은 이년 후에 문을 닫고 말았다. 식당 운영의 경험이 전무했던 그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에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폐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화를 만났다.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게 어떠니?

이제는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믿음은 변함이 없지만, 실천은 자신이 없어. 실천이 없는 믿음은 자기기만일 뿐이야.

입가에 번진 소주를 손등으로 훔치며 정화가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촉수 낮은 백열등에 비친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슬픔을 감추려는 웃음은 공허할 뿐이었다.

정화는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했고, 그리고 거뜬히 시험에 통과했다. 그는 서울의 변두리인 도봉 쪽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었다. 우리는 그의 개업식에 참석했다. 개업을 축하하는 화분이 사무실 앞에 즐비했다. 사무실 안은 북적거렸고, 정화는 여러 손님을 접대했는지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그는 진정으로 기쁜 표정이었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도 그를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동수가 이렇게 말하더라, 자기가 그 당의 노동정책을 한번 바꿔 보겠다고, 자기가 모시고 있는 의원은 자신의 노동정책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동수는 여전히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었어.

바람에 날리는 정화의 목소리는 쓸쓸했다.

그게 동수잖아.

내가 말했다. 냉소에 찬 목소리라고 내 자신이 느꼈다. 그리고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욕이라도 한번 해 주고 돌아서지 그랬어.

내가 어떻게 동수를 비난할 수 있겠니? 단지 슬펐어. 그리고 우리 시대의 꿈이 실패로 끝났다는 생각에 지난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지.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다. 여전히 누군가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잖아. 미안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투쟁에 무임승차하고 있지만.

무임승차? 그렇구나. 전적으로 무임승차.

도봉산에서의 대화는 그쯤에서 끝났던 것 같다.


동창들은 간혹 한두 마디 추임새를 넣을 뿐 대화는 동수가 주도했다. 동수의 말투에서 나는 성공한 자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 말투는 역겨웠고, 동시에 나의 초라함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만한 용기도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영주를 보았다. 불빛에 영주의 얼굴이 파리해 보였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주의 표정을 보며 삼척에서의 영주를 떠올렸다. 삼척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영주가 말했다.

복수하고 싶어.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자가 군림하는 세상, 그 속에서 그 권력을 인정하고 타협하고 살고 싶지는 않아. 누군가가 용서와 화합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또 숨죽이고 살라는 소리로 들려. 나는 복수를 꿈꿔.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때 상황으로 보아 재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들을 향한 분노였던 것 같다. 개인이 복수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고 광범위한 대상이었다. 그리고 영주는 복수의 방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영주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을 뿐 어떠한 말도 첨가하지 않았다. 그 당시 영주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했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재호의 죽음에 억울함과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복수를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영주가 복수를 하였는지, 아니면 여전히 복수를 꿈꾸고 있는지 궁금했다. 영주의 무표정한, 어찌 보면 불편해하는 그 모습으로 보아 아직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 듯하였다.

동수와 영주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접객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대부분은 귀가했고, 남은 친구 몇은 내일 발인식에 참석하겠다고 구석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잠을 청했다. 나도 정화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에 미처 휴가를 내지 못한 것이 신경 쓰였다. 어찌할까를 고민하다가 남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늦은 시간 나는 접객실에서 나왔다. 빈소 입구에 조화가 도열해 있었다. 노동조합과 사회복지재단에서 보낸 조화가 꽤 여럿 있었다. 조문객 중에서도 작업복 차림의 청년들이 많이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 접객실을 둘러보며 사람이 많네, 하며 주절거렸다. 앞에 앉은 우식이 말했다.

정화 형이 최근에까지 여러 노동조합에 도움을 많이 주고 있어나 봐요. 사회단체에도 관계하고.

짜식, 오지랖은 넓어 가지고, 병든 지 몸 관리나 잘하지.

같은 과 동기인 해수의 목소리는 술이 조금 된 듯 우울했다. 나는 밥그릇의 밥알을 젓가락으로 세며, 내일 처리할 업무를 생각한 나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밥알은 마치 모래인 듯 입안에서 거칠게 맴돌았다.

장례식장을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나는 인적이 끊긴 거리를 걸었다. 비에 젖은 전단지들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한 취객이 골목길 담벼락에 붙어 지난밤의 기억을 토했다. 그의 기억은 육신을 빠져나와 길바닥에 흩어지고, 다음날 그는 기억이 사라진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할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섰다. 한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막차가 떠난 지 한참을 지났음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버스를 기다렸다.

겨울이 남은 안간힘을 쓰는 듯, 비가 그친 뒤 이월의 밤은 차다는 말로는 부족하여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날카로웠다. 봄을 맞이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대학 시절부터 봄을 기다렸지만 진정 봄을 맞이한 기억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져 왔다.

밤을 새우고 있으니 새벽은 언젠가는 오겠지.

재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동성당에 가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부서지듯 변했는데, 우리가 밤을 새우던 돌계단은 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비에 젖은 성당의 돌계단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나는 돌계단에 주저앉았다. 냉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었다. 어둠 속에서 서성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눈가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번졌다. 비로소 막차를 타고 떠난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났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봄이 곧 올 줄 알았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우리가 기다리던 봄은 나의 생의 시간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점점 계절에 대한 감각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간절한 기다림은 시간의 구애받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버팀목이었다.

새벽을, 젊은 시절 명동성당에서 기다렸던 새벽을 보고 싶었다. 성당의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첫차는 길모퉁이를 돌아 달려올 것이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배회하던 나는 벅찬 마음으로 차에 오르고, 어둠을 이긴 벗들이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하였으면 좋겠다. 차는 봄날의 성당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함께 봄빛 푸른 성당의 돌계단을 뛰어오를 것이다.

이월이었다. 그리고 한밤중이었다.


나는 그때 어떤 세상을 기다렸을까?

막연하게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 선이 악을 이기는 세상, 염치가 파렴치를 이기는 세상.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세상.

수많은 단어들로 내가 원하는 세상을 정의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세상이냐고 물으면 답이 옹색해진다. 막연한 바람이었고 구체적인 실체를 몰랐기에 그냥저냥 살았나 보다. 직장인으로, 월급쟁이로. 결혼도 했다. 성실한 사회인이었지만 행복한 사회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실한 가장이 되고자 하였지만,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아내와 아이를 호주로 떠나보내고 기러기 아빠 노릇을 십 년 넘게 했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의 이혼 통보였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허덕거리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동수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언론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 나는 명예퇴직을 했다. 회사에서 승진에 목매는 자신을 보며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했다. 어렵게 어렵게 승진하였고, 그 끝이 명예퇴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로 밤을 새웠다.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다. 입원해 있을 때 여동생이 병간호를 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서러운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서럽고, 억울해하면서 남은 세월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나를 붙잡아 준 것이 있다면 보잘것없는 글쓰기였다.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털어버리자는 심사로 문화센터의 글쓰기 강좌에 등록하였다. 매주 과제로 내주는 글쓰기가 버거웠지만 한 줄 한 줄 메꿔나가 꼬박꼬박 제출했다. 그동안 글쓰기 솜씨가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좋은 점이 있다면 글을 쓰면서 과거를 돌아보며 성찰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참 못난 삶이었지만, 나름 수고스러운 삶이었다. 늘그막에 무슨 복인지 잡지사에서 주관하는 생활 수필에 응모하여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십 년 만에 영주와의 통화도 이 덕분이었다.


축하해요. 나도 그 잡지 즐겨 읽는데 형 기사 봤어요.

삼십 년이 지나도 영주에게 나는 아직도 형이었다. 영주의 목소리는 십 년 전 장례식장보다 훨씬 밝았다. 그게 너무 좋았다.

동수 잘 있지?

나 이혼했어요. 한참 됐어요.

이혼의 사유에 대해 묻기는 어려웠다. 나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어, 하고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딸 하나 있는데 딸이랑 잘 살고 있죠. 그리고 나 지금 노무사 사무실에 다니고 있어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바빠요.

바쁘다니 다행이었다. 아니 아직도 복수를 꿈꾸고 있는 영주가 부러웠다.


인파 속에서 걸어오는 영주가 보였다. 최루탄 연기가 가득 찬 종로의 거리에서 길을 잃은 때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길이 바른길인지 생각하지 않고 밥을 구하는 길만을 걸어왔다. 첩경이 아니라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파 속으로 몸을 감추고 서둘러 그 카페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