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렸다. 삐거덕거리는 버스의 와이퍼 소리가 들렸다. 와이퍼는 비의 저항에 힘겨운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젓고 있었다. 장 씨는 손바닥으로 김이 서린 차창을 문질렀다. 사선으로 내리긋는 빗줄기 사이로 추수가 끝난 들판이 보였다. 가을비에 젖은 빈 들판은 황량함을 넘어 처연한 느낌마저 자아냈다.
장 씨는 고개를 차창에 기대었다. 장시간 버스를 타서 그런지 머리가 아팠다. 이마를 차창에 대니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어 머리의 통증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시계를 보았다. 도착하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가야 했다.
장 씨는 잠시 눈을 붙어야겠다는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서 있는 자신이 보였다. 들판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장 씨는 바람 속에서 갈 길을 잃은 듯 황망한 눈빛으로 먼 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농사만으로 살기가 힘들었다. 매년 추수가 끝난 농한기가 되면 장 씨는 도회지로 나갔다. 거기라고 장 씨가 오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곳은 아니었다. 여러 인력 소개소를 전전하다 겨우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공사장의 잡부일 정도였다.
가족과 떨어져 사, 오 개월 밤낮없이 일을 해도 막상 손에 쥐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마저 없으면 진짜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진다.
공사장에는 장 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조선족도 있고 한족도 있었다. 민족을 떠나 한결같이 어려운 처지였다.
조선족 일꾼들은 그들끼리 뭉쳐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객지에서의 고단함을 한 잔 술로 푸는 자리에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가 한국에서의 돈벌이였다. 한국에서 몇 년 일하고 평생 먹고살 만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그 말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일꾼들은 현실의 탈출구로 한국을 꿈꾸였다.
작년이었다. 그날의 술자리에서도 한국에서의 돈벌이가 술판 위에 던져졌다. 사람들은 주변의 사례나 주워들은 이야기를 토해냈다. 장 씨는 그 말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지난여름의 일이 떠올랐다.
땡볕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바짝 말라 들어가는 농작물을 보며 만삭의 아내가 말했다.
“어떡하죠?”
“어떡하긴. 물을 끌어다 대야지.”
장 씨가 말했다. 양수기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을 찔끔찔끔 토해냈다. 하도 끌어써 지하수도 고갈된 모양이었다.
때마침 고향집을 찾은 이 씨가 지나가다 이 광경을 목격하였다. 장 씨의 이웃에 사는 이 씨는 마을에서 거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입에 풀칠을 할까 말까 한 살림살이였던 이 씨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도회지에서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이, 동생! 올 농사는 어떤가?”
뻔한 질문을 하는 이 씨가 얄미웠으나 자신보다 한참 연배인 그에게 싫은 소리는 하지 못했다.
“죽을 지경이에요. 형님.”
장 씨는 먼지가 풀풀 나는 밭두렁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아휴, 이 썩을 놈의 날씨마저 지랄이네. 고생하게 동생.”
이 씨는 위로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한마디를 툭 던지고 갈 길을 갔다. 장 씨와 아내는 멀어져 가는 이 씨를 망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도 한국 갈까?”
장 씨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한국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데 그렇게 큰돈이 어디 있어요?”
아내가 장 씨의 말에 한숨을 쉬며 반응했다. 장 씨는 가난의 현실에 주눅 든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하였다.
“왜 나라고 못 갈건 뭐야. 돈이야 마련하면 되지.”
장 씨가 호기롭게 내질렀다. 한국행은 아내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자네도 생각 있담서?”
생각에 잠겨 있던 장 씨의 무릎을 탁 치며 마 씨가 물었다.
“네?”
“아, 이 사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당가? 한국행 말이여, 한국행.”
마 씨 아저씨와는 같은 조로 일을 하고 있어 작업 사이사이에 여기서 이렇게 고생할 바에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마 씨가 장 씨에게 물은 것이었다.
“생각 있으면 저기 익호에게 말해봐. 익호 저게 그쪽에 대해 빠삭이여, 빠삭이.”
장 씨는 한창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익호를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에 처진 눈매의 익호는 잘 아는 형님이 한국 밀항의 알선책이니 한국 가고 싶으면 자신에게 이야기하라고 좌중을 둘러보며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늙어 가봤자 일자리도 없을 거고, 자네야 한창 나이니 돈도 금방 벌걸세.”
마 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술자리가 파했다. 장 씨는 익호의 손을 끌고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알선책을 한다는 형님의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올해 농사가 끝나고 장 씨는 도회지의 공사판에 가는 대신 익호가 알려준 밀항의 알선책을 만났다.
알선책은 밀항에 소요되는 돈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에 가려면 이것저것 합쳐서 5만 위안 정도가 필요하오. 5만 위안? 여기서는 큰돈이지만 한국에서 1년 정도만 일하면 들어간 돈은 벌 수 있소. 먼저 착수금조로 1만 위안을 필요하오. 그리고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면 나머지 돈을 내가 알려준 한국의 알선책에게 건네면 되오.”
꽤 큰 액수였다. 5만 위안은 여기서는 평범한 직장인이 오, 육 년은 벌어야 하는 돈이었다.
장 씨는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행을 결심한 작년부터 장 씨는 아는 사람들에게 연줄을 놓아 돈을 모았다. 온갖 비굴한 언행으로 그들의 환심을 사고, 꼬박꼬박 차용증서를 써 주고 모은 돈이었다. 아내도 돈을 모으는데 힘을 보탰다. 친정 식구들의 도움으로 적지 않은 돈을 융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