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2

by 마정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은 포구였다.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에 시간마저 늦어 포구는 인적이 끊기고 불빛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장 씨는 옷깃을 여미고 우산을 펼쳐 들었다. 바람조차 불어 비가 휘날려 우산을 받친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 장 씨는 비와 바람을 함께 안으며 어둠의 거리를 걸어 알선책이 알려준 장소로 갔다. 식당이었다.

식당은 어두웠다. 테이블이 5개 정도의 작은 음식점이었다. 구석진 테이블에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장 씨가 식당문을 밀치고 들어서도 식당 주인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마른 체구의 한 사내가 우산을 털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어, 아직 한 명 안 왔네.”

사내가 식당 안을 한번 휘돌아보고 말했다.

“이리들 와 보슈.”

사내가 말하자 구석 자리의 여자가 사내가 앉은 테이블의 앞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 씨도 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 식당문이 열리는 기척이 들렸다.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출입문을 향했다.

키가 작달막한 사내였다. 남자는 옷깃을 툭툭 털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모충구 씨요?”

사내가 물었다.

“아, 네.”

“이리 와 앉으슈.”

모씨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늦지는 않았죠?”

“안 늦었습니다.”

장 씨가 말했다.

“다 모였으니 잘 들어요. 아, 우선 내 소개를 해야겠군. 나는 댁들이 공해상 타고 갈 배의 선장이오.”

사내가 말했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모씨가 냅다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왔다. 선장은 여자를 한번 흘낏 보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여자는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에게 눈길을 한번 주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일 저녁 9시에 부두 끝에 있는 천양호라고 쓰여 있는 배 앞으로 모이시오. 그 배로 공해까지 갈 거요. 그리고 거기서 큰 배로 갈아타야 하오. 시간이 중요하오. 시간을 잘 지켜 나오시오. 아무 걱정 마오. 별일 아니오.”

사내는 별일이 아니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럼요. 저희들은 선장님만 믿습니다.”

모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식사는 여기서 하시오.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이니 편히 와서 식사하시오.”

조금 전에 주방으로 들어갔던 여자가 선장의 아내인 듯했다.

“숙소는 옆에 있는 여관에 마련되어 있으니 그리로 가면 되오. 그럼 식사들은 안 했을 테니 밥 먹고 편히 쉬시오.”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식당을 나갔다.

식당에 남은 셋은 잠시 멀뚱히 허공을 응시하다 모씨가 먼저 장 씨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나 모충구라고 하오. 잘 지내봅시다.”

“아, 네. 장일만입니다.”

장 씨가 모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모씨는 여자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장 씨도 여자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런데 여기 세 명만 갑니까?”

장 씨가 물었다.

“그럴 리가요. 중국에서 작은 배로 몇 명씩 모여 공해상에서 큰 배로 갈아타 한꺼번에 한국으로 들어갈 거요.”

모씨가 말했다. 그때 마침 선장의 아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들고 나왔다. 여자가 일어나 음식을 받아 들고 테이블에 놓았다. 장 씨도 도왔다.

모두 시장기가 있었던지 음식이 차려지기가 바쁘게 젓가락질이 분주했다. 선장의 아내가 술도 한 병 가져다주었다.

술잔이 채워지기가 무섭게 모씨가 술을 털어 마셨다.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몸매였다.

“걱정 말아요. 아무것도 아니오.”

소리가 나게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모씨가 호기롭게 말하였다. 그는 한국 밀항의 경험자였다.

모씨의 말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장 씨는 모씨의 말에 아무 반응이 없이 음식만 축내고 있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모씨는 음식보다는 술에 더 애착이 있는 듯했다. 음식은 술 마시는 중간중간에 술맛을 더하는 안줏거리에 불과했다.

술은 말을 불러왔다. 모씨는 한국에서의 돈벌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짜 좋았지. 나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하고 걱정했는데 한국땅에 발을 디디고 일을 시작하니 돈이 모이더라구.”

모씨는 어느새 말을 놓고 있었다.

“한국에 올 때 들어간 돈을 서너 달 만에 다 갚았다니까. 한 5년 있었지. 불법체류자로 걸리지만 않았어도 한 삼사 년은 더 있는 건데. 아,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붙잡혀도 걱정할 거 없어. 서울과 여수의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다가 한 두 달만 고생하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고 중국 정부에 100여만 원의 벌금만 내면 징역형은 면할 수 있어.”

모씨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일으켜 세웠고, 그리고 이번에도 한몫 잡기 위해 다시 밀항을 한다고 했다.

돈을 벌었으니 이제 편히 지내시지 왜 또 힘든 길을 나섰냐, 고 장 씨가 물었다.

“그럴 일이 있어.”

모씨가 잠시 뜸을 들었다.

“휴, 그놈의 돈이 뭔지. 돈이 있으니까 엉뚱한데 자꾸 눈이 간단 말야. 가게를 열었는데 주변의 상인들과 재미 삼아 시작한 놀음이 전문가들이 끼면서 판이 커져 버렸어. 한번 새기 시작한 돈은 깨진 항아리에 물 새듯 했단 말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안은 풍비박산 난 상태였지. 에휴, 내가 미친놈이지.”

모씨는 술잔 가득 술을 부여 단숨에 들이켜더니 입가 주변을 손등으로 한번 쓱 문질렀다.

“사람일이 다 그렇죠. 일이 망가진 후에 정신이 돌아온다니까요.”

조용히 들고 있던 여자가 한마디 보탰다.

“이번에 가서 돈 벌어 빚을 다 갚을 거야. 그리고 진짜 정신 차리고 잘 살 거야.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자식들한테도 너무 부끄러워.”

술기운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말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잘 될 거예요.”

장 씨가 위로도 되지 않는 위로의 말을 했다.

“자네는 왜 가나?”

“저야 돈 벌러 가죠.”

장 씨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 다 돈 벌러 가는 곳인데.”

모씨도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나이도 한창땐 거 같은데 가면 일자리 많을 걸세.”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럴 걸세.”

모씨가 장 씨의 술잔에 술을 부어 주었다. 장 씨도 모씨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두 술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쪽은 얼마나 한국에 있을 작정이오?”

술잔을 내려놓은 모씨가 물기가 마른안주를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여자에게 물었다.

“나는 안 올 거예요. 한국에서 살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이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어떻게?”

“몰라요. 그렇지만 여기는 다시 오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쪽은 젊으니까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을 거야. 나야 식구가 다 여기 있는데 다시 와야지. 자네는 어떤가?”

“저도 와야죠. 식구들이 다 저만 보고 있는데...”

장 씨가 대답하고 곁눈으로 여자를 흘낏 훔쳐봤다. 사정 이야기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따뜻한 차를 담은 잔을 감싸 쥐고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그러나 여자에게 젊음의 화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움푹 팬 눈매는 환희를 잃어버린, 비 오는 부두의 음산한 저녁 같았다. 여자는 먼지가 내려앉은 식당의 유리창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찻잔을 쥐고 있는 손마디는 가늘었고, 그 손가락 사이로 젊은 날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듯 메말랐다.

“한국서 남자를 잘 만나...”

“남자라면 관심 없어요.”

여자가 모씨의 말허리를 잘랐다.

“한국에 정착하려면 한국 남자랑 살아야 되지 않아?”

“몰라요. 그냥 남자는 관심 없어요.”

장 씨는 여자의 남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남자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아프다는 말로 들렸다.

“참,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잘 될 거요.”

모씨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다시 술잔을 비웠다. 잠시 적막이 흘렸다. 적막의 공간을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채웠다. 셋은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 말이 없었다. 과거를 떠올리는지 아니면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는지 망연한 눈길로 창 너머 어둠을 주시하고 있었다.

식당 여주인이 테이블로 왔다. 여주인은 세 명에게 방 열쇠 하나씩을 쥐어 주며 말했다.

“식당 바로 옆에 있는 여관이에요. 열쇠에 쓰여 있는 방으로 가면 돼요. 아침 식사는 일곱 시부터이니 그 이후 아무 때나 와서 잡수세요.”

여주인은 그 말은 남기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셋은 각자의 소지품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식당 문을 나서도 여주인은 내다보지 않았다.

“편히 쉬세요.”

“좋은 꿈 꾸세요.”

“네, 선생님도요.”

여관의 복도에서 셋은 인사를 하고 각자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열쇠를 따고 들어간 객실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났다.

장 씨는 비에 젖어 갑옷처럼 무거운 옷가지를 벗고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내리붓는 물줄기를 정수리로 받아 들었다. 하루 종일 털털거리는 버스에 시달린 몸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얼굴의 정면으로 물이 쏟아졌다. 눈을 감았다.

온몸으로 비를 안으며 걸어가는 사내가 보였다.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노파가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만삭의 아내는 차마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들어가세요.”

사내가 소리쳤다. 아마 그 소리는 빗소리에 파묻혀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는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가슴팍으로 밀고 들어왔다. 가슴으로 흘리는 눈물이라 생각했다.

장 씨는 한참을 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집을 떠나올 때 배웅하던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이 여정에 세 식구, 아니 뱃속의 아이까지 네 식구의 목숨이 걸려 있다. 장 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책무를 감당하겠다고 다짐했다.

샤워를 마친 장 씨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침대의 이불은 비 오는 날의 습기 탓인지 눅눅했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질 여유가 없었다. 내일을 위해 자야 한다. 장 씨는 전등불을 껐다. 거센 파도에 출렁이는 배가 보였다. 배는 위태롭고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멀리 큰 배가 보였다. 작은 배에 있던 사람들이 큰 배로 옮겨 탔다. 창고인 듯한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안한 얼굴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배는 육지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육지에 발을 디디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장 씨는 한국으로 가는 길을 상상해 보았다. 파도에 출렁이는 배 위로 만주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차가 겹쳐 보였다. 백여 년 전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한국을 떠나 만주로 이주해 오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장 씨는 선조들이 만주에 정착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증조할아버지의 생애는 잘 모른다. 할아버지의 생애도 잘 모른다. 장 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해 별말씀이 없으셨다. 자랑거리가 없어서였을까? 그럴 것이라고 장 씨는 생각했다.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 전라도 나주 근방 어디라는 것은 대충 들었다. 아마 소작농이었을 것이다.

‘왜 만주로 왔을까?’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독립운동을 했다면 빛나는 조상의 행적을 알리지도 않고 그냥 뭉갰을 리가 없다.

남도의 땅을 떠나 식구를 이끌고 만주로 왔다. 살기가 힘들어 그곳에 가면 조금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만주도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작인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주가 한인이나 만주족으로 바뀐 것밖에 없었다. 다를 바가 없는 살림이었다. 가난은 노력 만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에게 물려받았던 가난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거부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하였다. 결국 육십이 넘은 나이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추락사한 것이 삼 년 전이었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왔던 길을 되짚어 한국으로 간다. 이 여정만큼은 이전과 다른 삶의 길로 인도하여 주기를 장 씨는 간절히 바랐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지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뿌연 빛이 새어 들었다. 바깥 날씨가 궁금했다. 커튼을 젖혔다. 비는 개었고 부시도록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창에 그려져 있었다. 흰 구름이 하늘 끝에 줄줄이 이어져 마치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하는 조각배 같았다.

저 배를 타고 세상으로 나가자.

장 씨는 창마저 활짝 열어젖히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

시원한 아침 공기가 호흡을 타고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오늘 밤의 항해가 몹시 기다려졌다.

<여수일보> 2001년 11월 25일 전라남도 여수경찰서는 xx호 선장 이모 씨(55)를 긴급 체포했다. 이모 선장은 여 모 씨(54)에게 밀입국자를 태워달라는 제의를 받고 11월 5일 제주도 서남방 110마일에서 중국 배와 접선하여 20명의 사람들이 옮겨 태워 여수로 항해하던 중 해경의 단속에 걸릴 것에 대비하여 밀입국자들을 물탱크 숨겼으나, 물탱크가 통풍이 안 되어 20명 전원이 질식사하였고, 시신을 모두 바다에 버렸다. 이 사실을 선원 중 한 명이 경찰에 고발하여 이모 선장을 긴급 체포하여 현재 조사 중에 있다.(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