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된 천재의 가정

이상의 <날개>와 <가정>을 표절하다

by 마정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어깨를 부딪치고 경복궁 옆길을 걸었다. 조금은 한가해진 거리, 서촌을 느릿느릿 걷다가 초라하다면 초라한 작은 기와집이 눈에 띄었다.


‘이상의 집’.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상의 집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본명 김해경 1910~1937)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였던 곳으로, 철거될 위기에 있던 이곳을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매입하여 보전·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이상의 큰아버지 댁의 일부로 본채, 행랑채, 사랑채까지 있던 300평 규모의 넓은 집이었지만 10개의 필지로 나눠져서 한옥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중 집터의 일부를 매입한 것이다.

실내에는 이상의 흉상과 초상화가 있고 그의 작품을 연대별로 보관한 아카이브가 한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어 이상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실내의 왼편으로 콘크리트 사각 문틀이 육중하게 설치되어 있고 검은색으로 도색된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빛이 없는 어두운 공간 속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높지 않은 계단 끝에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면 환한 빛이 실내로 밀려 들어온다. 어두운 시대상과 그가 처한 현실 상황에 한 줄기 자유를 갈망하는 감정을 공간으로 잘 표현했다고 극찬받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참조 :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


전화: 070-8837-8374 02-752-7525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 통인동 154-10

운영시간: 화~토요일 10시~18시 (점심시간 12~13시 휴무)

휴무일: 매주 일, 월요일 / 설, 추석연휴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http://isang.or.kr


KakaoTalk_20250203_134823427_08.jpg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의 고뇌를 생각하며 여유롭게 돌아보았다.

문득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의 고단한 삶을 이상의 문체를 본떠 쓴 글이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 색 바랜 노트에 처박혀 있던 글을 꺼내 읽어 보았다. 당시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지금은 징그러울 정도로 다 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은 다 그리운 것일까?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나는 천재가 아니다. 더군다나 박제처럼 무의미하게 하루하루의 시간을 메꾸어가는 그런 존재는 아니다. 단언컨대.


나의 노동시간은 평균의 한국인보다 훨씬 길다. 그러나 삶의 질은 평균의 한국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삶은 유쾌하지 못하다. 간혹 일상에서 벗어나 유쾌한 연애를 꿈꾸어 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 흐느적거리는 육신으로 아파트 입구 계단에 주저앉아 담배를 뽑아 문다. 니코틴이 축축한 솜이불 같은 육신 속으로 흘러들면 머릿속에 백지가 준비된다. 그 위에다 로또 복권 번호와 당첨금이 가져올 미래를 그려 넣는다. 상식적 한국인의 의식이다.


화정 달빛마을 000동 xxx호.

나는 이 아파트가 좋다. 누구는 아파트는 삭막한 공간이니, 땅을 밟지 않는 비인간적인 공간이니 하며 게거품을 품어도 'x 같은 놈들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하며 나는 그들의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언사를 비난한다.


작은 공간이나마 가족하고 등을 맡댈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악동 두 명이, 아니 두 명의 악동과 한 명의 악녀가 나를 기다린다.

하지만 두 명의 악동은 나하고 잘 놀지 않는다. 내가 집에 들어가면 고것들은 에미와 엉켜 잠들어 있고, 내가 눈을 뜨면 부스스한 머리의 악녀만이 부엌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아마 내가 제일 늦게, 아니 제일 먼저 잠드는 것 같다. 불이 다 꺼진 아파트의 창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혼자 깨어있는 듯한 느낌. 나름대로 감상적인 면은 있으나, 그 시간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있고, 무료 영화나 뒤적일 뿐이다.


간혹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아내가 집을 비울 때가 있다.

녹색 어머니회니, 급식당번이니 해서.

그럴 때면 나는 할 일 없이 방안을 거닐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야한 사진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마저 곧 시들해져 버리면 사진첩을 뒤진다.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비록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혼자서는 못 살 것 같다.


아파트는 문에 호수만 쓰여 있지 사람의 이름이 적힌 문패가 없다. 이것이 불만이다. 이 세상에 내 소유도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데...


‘소유는 집착이니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라.’


법정 스님이야 세속을 떠난 불가의 사람이니 별로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니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고상한 말을 하고 싶고 고상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의 삶에 동승한 한 여인과 두 사내를 위해.


유년 시절 우리 집에는 문패가 없었다. 홍제동 산비탈의 무허가집이기는 하지만 그 집은 분명 아버지 소유였지만 아버지는 문패를 달지 않았다. 문패가 성가셨나?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이곳에 있다고 선언하기가 두려웠나?


나는 문패를 달고 싶다. 내 소유물임을 선언하기보다는 이 집에 사는 아이의 웃음이 나를 지탱시켜 준다는 것을 아침저녁으로 일깨워주는 온 가족의 문패를 달고 싶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아내는 지저분한 것을 싫어한다.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것 같다. 아내는 끊임없이 나에게 쫑알거린다. 나는 잔소리가 싫다. 하루하루가 전투다.


삶은 전투다. 이 전투에서 번번이 나는 진다. 아이들도 엄마 편을 든다. 나는 집안의 이방인이다.

전투가 있었던 날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상쾌하지 못하다.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를 되묻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음속에 걸어둔 문패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 <이상>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 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