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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규 JELMANO Feb 26. 2018

2018 패션 트렌드- 후줄근 아빠옷과 아줌마 힙쌕

2018년 3월 옐마노 패션칼럼(16) - 미리 눈도장 찍어 두면 데자뷰

지난 글에 이어, 올해의 트렌드 아빠신발, 아빠옷 트렌드 대해 몇 마디 더 쓰겠습니다.  


요새 한국은 비 온 뒤 죽순 같은 움직임으로 #Me_too 운동이 번지고 있습니다. 이로서 적폐청산의 물고가 적폐의 온상, 정치권은 물론 그 너머의 시민의 일상으로 넘실넘실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이 성적(性的) 개화의 물결은 문학계, 연극계, 영화계까지 구석구석 봄기운 같은 신선한 들숨을 한국사회에 불어넣고 있습니다. 일단 이 자리를 빌어, 억압받고 고통받아 왔던 여성들의 신체적, 정신적 권익이 어서 제 자리를 찾게 되기를 바라고, 멀리 이탈리아에서도 응원하고 있다는 속 메아리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다만 패션시장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성의 파워가 오래전부터 남성의 그것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패션시장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하면,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잡화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체로 패션 시장의 절반은 여성복입니다. 그리고 약 30%가 남성복, 나머지 20% 를 아동복과 잡화가 10%씩 나누어 갖는 구조입니다. 물론 남성복의 비중이 과거보다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만, 중년 이후의 남성의 옷을 대부분 사모님이 구매하는 것을 보면 패션상품의 구매에서 여성 파워의 우위는 숫자보다 여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성복 중에서도 ‘안습’ 소외계층이었던 ‘아빠옷’ 의 대변신 


조금 지난 보도이긴 합니다만, ‘불황 때 아빠옷은 더 안산다.’ 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숫자를 보기 위해 다시 들여다 봤습니다. L 대형마트를 기준으로 한 이 기사에서, 불황으로 줄어든 매출을 품목 성별로 비교해 보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성복은 2% 감소한 반면, 남성복은 18% 줄었다고 합니다. 란제리의 경우 3% 감소했을 때, 남성 속옷은 21% 감소했습니다. 화장품, 구두, 지갑, 벨트 역시 예외없이 비슷하게 나타났지요. 심지어, 염색약의 경우는 남성들이 주로 쓰는 새치용염색약은 26% 감소한 반면, 여성들이 주로 쓰는 컬러용 염색약은 같은 기간 오히려 4배가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안구가 습해지는 결정타. 남성복 매출이 유일하게 여성용을 앞선 품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양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마트에서는 당시 양말을 3족, 5족으로 묶어파는 떨이판매를 통해 20% 매출상승을 기록했다는 웃픈 이야기로 이 기사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파리의 럭셔리 하우스 발렌시아가의 무서운 신예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패션시장의 최빈곤층, 구겨진 셔츠 차림의 소외계층이었던, ‘현실에 찌든 아빠’의 모습에서 오히려 응축된 일상의 에너지를 발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목 카라(Collar)가 후줄근하게 퇴색된 아빠 셔츠, 목이 굴렁쇠처럼 늘어나 있는 아빠 면 티, 배까지 올라와 있는 아빠 배 바지에서 놈코어(NORM-CORE)가 분출될 통풍구를 발견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반듯하게 다려진 소재만을, 공작새와 같이 미려한 컬러를, 계절보다도 한 발 앞서 쫓기에 여념이 없던 기존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가까이 가지 않았던 구겨진 불모지에서 그는 새로운 기회를 본 것입니다. 바잘리아의 ‘아빠옷’은 제다이의 귀환처럼, 지난 2017년 6월, 2018 봄 여름 패션위크 기간에 파리 볼로뉴 숲에서 가족소풍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이 쇼의 주제는 바로 대디코어(DADDY-CORE) 였습니다. 




<Balenciaga, 18SS Collection 중 일부> 

(자세히 보시면 아이들은 모두 지난 시즌 메가 히트 슈즈인 스피드 트레이너를 신겼습니다.)



물론 파리의 한적한 공원에서 벌어진 일상 안의 후줄근한 ‘아빠옷’ 은 매우 정교하게 연출된 디자이너의 상상이라는 점에서, 예전에 짐 캐리가 주연한 투루먼 쇼와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일상같이 평범하지만, 관성처럼 지속되어온 무기력한 평범은 아닌 일상. 촌스럽지만 예전같이 부끄럽게 촌스럽지는 않은 아빠. 이러한 일상의 역설을 만들며 뎀나 바잘리아는 매출과 스타일, 이슈를 선점하는 브랜드로 발렌시아가를 새로이 자리매김 시키는 중입니다.



  

슈즈 디자이너로서 제가 뎀나 바잘리아의 역발상적 과단성을 단번에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이 있어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신발의 경우, 의류과 같이 그것의 사이즈를 신발 어딘가에는 표시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지극히 기능적인 요소인지라,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그 사이즈 표기를 최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 요염하게 감추어 두려고 합니다. (물론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보색의 동그란 숫자스티커를 붙여두는 매스 상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잘리아는 신발의 사이즈를 트리플 S 의 콧등에 심어 두는 파격을 보여주었습니다. 신발의 코에 붙은 숫자를 보고 저는 이것을 상상하고 실행에 옮긴 뎀나 바잘리아의 고민이 떠올라 공감을 했고, 그 결과에 속으로 찬사를 보냈음을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해 둡니다.      


<콧등에 사이즈 숫자가 과감하게 올라간 Balenciaga, Triple S>




그럼 이 글의 결론. 올해는 서슴없이 유행에 지났다고 옷장에 파 묻어두신 예전 옷들을 재 발굴해서 자신 있게 믹스매치 또는 레이어드(layered)로 겹쳐서 입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못 입어도 발렌시아가 모델처럼 못 입기도 쉽지 않으실테니, 촌스러울 걱정 같은 건 우주로 날려 버리시고요. 마침 올해는 촌스러운 게 유행이라니까요. 참, 우리 아빠같은 후줄근한 태도, 꼭 잊지 마시고요.

 




아, 제가 두 달간 지나치게 아빠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달에는 올해 트렌드 중 제가 유망하게 보고 있는 아줌마 힙쌕 또는 슬링백 (또는 전대 - -;) 이라고 불리었던 Fanny Pack 에 대해 다루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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