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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13. 2020

내가 파업 카드를 커내고 싶을 때

2020.8.13.목


폭염주의. 뜨겁지만 푸른 하늘이 반갑다. 당분간은 폭염을 견뎌야 할 듯. 폭염을 잘 견디려고 땀을 흠뻑 쏟으며 삼계탕을 끓였다.

나는 안먹고 안하는 주의지만 집에 시간 맞춘 삼시세끼를 기다리는 사람 있다.



얼마 전 브런치 글 중에 잠시 결혼생활을 쉬고 있다는 글이 있었다. 잠깐  읽어서 사연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 사실 당사자들도 서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 불가능일 경우가 많다 -  원인 중 한 가지는 다른 식습관 때문인듯 보였다. 남편은 제때 제대로 먹자는 것이고 아내는 먹고 싶을 때 편하게 먹으면 좋겠다는 쪽이었다.


우리 집이랑 같은 스타일이다(그렇다고 그 작가의 결정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남편은 삼시세끼 그것도 정확한 시간이어야 하고  나는 두 끼에 시간도 자유롭다. 그것 때문에 여러 번의 전쟁도 불사했다 .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세끼 밥을 차리는 것 때문이 아니다. 나는 요리에 관한 한 응용력과 순발력이 있는 편이다. 영양을 감안하더라도 뚝딱 차려낼 수 있다.

그러나 한 끼 밥을 차리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품과 시간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장을 봐서 집에까지 들고 야하고 재료 손질에 갈무리, 쓰레기 처리 등등.

 한상 밥은  그때그때 주방에서 들인 시간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수고 위에 차려지는 것이다.

그러려니 넘어가다가도 가끔 그 지점에서 충돌하곤 한다. 때마다 '수고했어' '맛있다''고맙다'의 립 서비스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주부의 가사노동의 무거움을 우습게 볼 땐 정말 화가 난다.

햇빛이 좋아서 냉장고를 뒤져 대추를 꺼냈다. 바람을 한번 쐬주고 상한 건 골라내고 냉동실에 넣어둘 참이다. 이 대추도 지난 가을 따서 건조기에 말려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뒀던 것이다.

고추도 너무 약이 오르기 전에 땄다. 이것 역시 씻어서 썰어서 냉동실로 가야한다.

제대로 열심히 하려면 하루 종일 먹거리만 만져야 한다.

잘 넘어가다가도 한 번씩 소리를 지르는 것은 내방으로 퇴근하고 싶은데 이런 일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다.


더구나 두 식군데 할 게 뭐 있어?, 하면 파업 카드를 언제 꺼낼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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