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숙 Aug 14. 2020

'버지니아 울프'의 책상

2020.8.14.금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강조했다.지금에야 그게 뭐?,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그 시대에는 여자들이 그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앞선 그녀들이 자신의 삶을 담보잡고 그렇게 치열하게 저항해준 준 덕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도 책상 운운 글을 쓸 수 있는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작가는 목수이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목수 버전으로,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 고 얘기한다.


오래 전,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박인환의 시에서만 버지니아 울프를 알았던 그 시절, 서울에 살던 나는 백화점에 가서 남편의 한 달 봉급에 버금가는 거금을 주고 큰 책상을 샀다. 지금껏 내가 한 일 중 잘한 일 중의 하나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도(사택이어서 이사 당일에야 방들을 보았다) 재빨리 스캔해서 제일 밝고 좋은 방에다 내 책상을 냉큼 들여놓았다. 아, 크기는 남편의 방이 더 크다.

자랄 때도 내 소유의 책상이 있었건만 책상에 관한 한 욕심이 좀 과한지 이사를 여러번 다녔지만 두 아이가 쓰던 책상 두 개도 아직 가지고 있다. 내 책상은 나와 띠동갑 손주에게 물려줘야지.


작가는 책상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려놓았다. '온전한 나를 대면하기 위한 필수품'.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나는 서재와 책상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되도록 크고, 넓은, 당신이 당신의 생각과 사물을 마음껏 늘어놓을 수 있는 크고 넓은 책상을 먼저 가져보라고. 세상에서 당신이 온전히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뜻밖에도 그 책상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


공감한다. 결혼한 여자에게 책상이 왜 필요할까? 의문을 품고 있지만 절대 내색은 않는 남자와 오래 투쟁할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이 크고 넓은 내 책상에서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파업 카드를 커내고 싶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