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귀걸이

by 김제숙

태양 귀걸이



장신구를 좋아하는 나는 반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브로우치로 치장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 중에서도 귀걸이를 좋아한다. 외출을 할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상자를 연다. 몇 가지 되지 않지만 이 순간이 즐겁다.

요즘은 스페인 여행길에서 사온 부엉이 귀걸이를 자주 한다. 부엉이는 지혜와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것에 마음이 솔깃하여 애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다. 시골 오일장에서 산 것이다. 중심에 작은 원이 있고 가장자리로 가면서 소용돌이가 있는, 흡사 고대 벽화에 그려진 태양의 모습을 한 것이다. 태양 귀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귀걸이를 착용하면 어쩐지 거기에서 힘찬 에너지가 나와서 온몸으로 전이되는 듯 느껴진다.


몇 년 전 몸이 많이 아파서 조용한 시골집에 일주일 기거한 적이 있었다. 처음 이틀은 내리 잠만 잤다. 사흘째 되는 날, 몸을 추스르고 나가니 주인아주머니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숭늉 한 그릇을 내오면서 마침 근처에 오일장이 섰으니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일렀다.

오일장도 예전과 같지 않다더니 한산하였다. 우선 장 입구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가게 앞에는 커다란 솥에 기름이 둥둥 뜬 국이 끓고 있었다. 밥과 국, 깍두기 한 접시가 앞에 놓였다. 국을 두어 숟가락 떴다. 갑자기 오래전에 아버지를 따라 오일장에 와서 국밥을 사먹던 기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밥이 목에 걸려 내려가지가 않았다. 반도 더 남은 국을 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집 건너편에 장신구를 파는 좌판이 있었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손가락 하나를 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는 뜻이었다. 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열에 아홉은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래서 몰래 찍지 않으면 사진 찍기가 힘이 드는데 이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얼마든지 찍으라고 했다. 얼른 대여섯 장의 사진을 찍었다. 좌판 전체를 찍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클로즈업해서 찍고, 주인아저씨를 좌판과 함께 찍었다. 고마운 마음에 주소를 알려주면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떠돌이라 사진을 받을 수 있는 주소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혹시 시간 좀 있으세요?”

속으로 아차 했다. 사진을 찍으라고 흔쾌히 허락하더니 이게 무슨 수작인가 싶었다. 몸이 허하다 보니 마음도 나사 하나를 풀어놓았나 싶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시간은 왜요?”

사진을 찍기 위해 미소를 머금은 가면을 벗으며 다소 퉁명스레 물었다.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실소했다. 오늘 이 장에 처음 왔는데 파장 시간이 다 되가도록 개시도 못했다고 했다. 나보고 좌판을 구경하며 시간을 좀 끌어달라는 거였다. 말하자면 바람잡이가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사진 몇 장 찍고 꼼짝없이 잡혔지만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아저씨는 개시도 못한 표정이 아니라 분에 넘치게 수지타산을 맞춘 사람처럼 유쾌하게 보였다. 그런 모습에 마음이 저절로 열렸다.

나는 아프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반지를 껴보고, 귀걸이를 달아보고 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예쁜 것, 있어요?”

내가 고른 귀걸이 두 쌍을 보여주며 말했다.

“네, 예쁜 거 아주 많아요. 값도 엄청 싸요.”

처음 보는 여자들이라도 반지나 귀걸이 앞에서는 금방 친구가 되는 모양인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르기도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기웃거렸다. 나는 이왕 도와주는 김에 제대로 해야지 싶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반지 하나 사세요. 장에 나오셨다가 예 쁜 반지 하나 사가시면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실 텐데요.”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아저씨의 밝은 표정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나보고 너무 순진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 장꾼이 얼마나 많은 장을 돌아다녔겠느냐. 그때마다 판매 전략이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순진해 보여서 개시도 못했느니 어쩌니 하면서 나를 붙잡아두고 매상을 올린 걸 거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설사 나를 속였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떠돌이 장군으로 살아가노라면 얼마나 숱한 사연을 안고 있을 것인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살아가는 긍정적인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게 그 아저씨의 재산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는 나는 사람들 속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결국 건강까지 헤쳐 잠시 여행을 떠나 왔었다. 잠시 동안 본 모습이지만 항상 웃고 있는 그 아저씨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은 웃음을 잃어버려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도 나는 그 장에 두 번을 더 갔다. 혹시나 싶어서 아저씨를 찾아보았지만 볼 수 없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귀걸이를 한다. 화룡점정은 태양 귀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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