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팡의 유혹

by 김제숙


애니팡의 유혹


조금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애니팡 열풍이다. 자투리 시간이 나면 휴대전화기에 얼굴을 묻고 검지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오래 연락이 없던 친구들로부터도 애니팡에 초대한다는 문자가 심심찮게 날아온다.

빵을 좋아하는 나는 처음에 ‘애니팡’이 새로 나온 빵 이름인 줄 알았다.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때는 그동안 연락도 없다가 무슨 초대인가 싶어서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애니팡을 하는 친구로부터 예의를 따지며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다스렸다.

애니팡에는 곰과 쥐, 토끼, 돼지,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들의 얼굴을 귀엽고 순진한 캐릭터로 그려서 휴대전화기 화면에 가득 깔아두고 같은 동물을 한데 모으면 ‘팡’하면서 동물들이 사라진다. 그러면 점수를 얻는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한 번에 한 칸씩 이동, 똑같은 그림 세 개를 맞추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묘한 중독성이 있다.

게임이라면 오래 전, 휴대전화기가 처음 나왔을 때 벽돌 깨기, 물고기 잡기가 고작이었다. 화면 가득했던 벽돌을 깨부수어 빈 화면으로 만드는 것이, 물고기가 다른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어서 점점 커지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하지만 게임에 발을 조금 들여놓았다가는 미련을 두지 않고 금방 뺐다. 마음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릴 적, 밤이면 할아버지 방에서 놀았다. 그 방에는 늘 먹을 것이 있었다. 겨울이면 연탄불 구멍을 넉넉히 열어두어서 언제나 따뜻했다. 할아버지는 저녁을 드시고 나면 할머니와 마주 앉아 화투를 치며 긴 겨울밤을 보내셨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그 옆에서 기웃거리며 화투짝을 맞춰드리곤 했다. 그게 내 호기심을 당기지 못했다면 큰방의 어머니 옆에서 연속극을 들었을 텐데 나는 화투 구경이 재미가 있었다.

그것도 유전이 되는지 할아버지가 즐기셨던 화투를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셨다. 문제는 그저 집에서 심심파적이셨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아버지는 집 밖에서 일삼아 하셨다. 그래서 자주 돈 문제를 일으켜 어머니의 근심이 되었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주택사업을 주도하기 전, 아버지는 집을 지어 파는 일을 하셨다. 정보에 빠르고 수완이 좋으셔서 집을 짓고 나면 관공서가 들어서거나 큰 길이 나서 집값이 몇 배로 뛰었다. 어떨 때는 두세 채의 집을 동시에 지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화투에 손을 대고부터는 집을 다 짓기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 있기가 일쑤였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앞세워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아버지를 찾아가면서 왜 오빠를 두고 여자인 나를 데리고 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한참 흘렀을 때에야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장남인 오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잃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의 배려였다.

어머니가 미리 알아둔 집에 도착을 하면 마루 아래 신발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어서 방안의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었다. 방문을 열면 매캐한 담배연기 사이로 아버지가 어렴풋이 보였다. 내 생애 가장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맞은 어느 해 추석날이었다. 친정에 갔더니 친척들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모처럼 친정에 온 나를 보더니 반가운 마음에서였는지 옆에 앉으라고 했다. 내 앞에도 패를 돌리기에 칠 줄 모른다고 했더니 기본적인 것을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즉석에서 규칙을 배운 나는 두어 판이 돌아가자 엉거주춤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얼마가 지났을 때 판돈이 모두 내 앞에 몰려 있었다. 온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쳤다.

“칠 줄 모른다는 말이 거짓말이었지? 이래도 되는 거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 자신도 속으로 ‘이게 무슨 일이야?’ 소리를 쳤다.

그 때부터 나는 화투는 물론 간단한 게임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런 잡기를 통하여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아예 포기하고 산다. 내 속에 나도 모르는, 내 의지로 제어하지 못하는 도박 본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유일한 게임. 고스톱 앱이라도 깔아볼까 유혹을 느끼지만 아직은 나도 나를 못 믿어서 참는다.
며느리가 하고 있는 게임. 기구도 샀단다. 나보고 함께 하자고 했지만 게임의 고수는 함부러 칼을 빼지 않는 법


애니팡에 빠져있는 친구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나오기까지 잠깐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본다.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물으니 세상 근심걱정을 다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이 시간만큼은 남의 흉도 보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니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하트를 보내 줄테니 고이집을 짓고 한 번 해보라고 권한다.

기억력이나 순발력이 점점 쇠퇴해가고 있는 중년의 아줌마라서 그런지 옆에서 구경하는 나도 맞출 수 있는 모양을 신속하게 찾지 못하고 친구는 검지를 움찔움찔 거리며 헤매고 있다. 지금 해도 내가 더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어이 참지 못하고 “여깃네, 빨리빨리!” 하며 훈수를 둔다. 그러면 친구는 여전히 시선을 그림에 고정한 채 “모르는 소리 말아. 그리 간단하고 쉬운 게 아냐.” 하며 한소리 한다.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인생살이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남의 삶은 쉬워 보이고, 같은 일을 내가 하면 더 잘할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다 제 몫의 무게를 갖고 제 몫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무리 후하게 쳐준다고 해도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서고 보니 생각도 많이 변했다. 그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춤바람이나 도박으로 인해 경찰에 의해 굴비 엮이듯 줄줄이 경찰서로 연행되어 가는 주부들을 볼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젊음과 열정이 사라진 지금, 내 속에 그런 유전인자가 있다고 해도 이제는 도박으로 인한 패가망신을 할 확률도 줄어들어서 평생 도박에 관한 결벽증을 가졌던 나의 의지도 많이 허물어졌다.

아직은 내 발로, 내 자동차로 세상을 돌아다니지만 나이 들어 밖을 운신한 기력조차 사그라들었을 때 우리 부부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마주 앉아서 민화투라도 칠 수 있으면 좋겠다. 흰머리 맞대고 앉아서 홍단이니, 청단이니 티격태격 거리며 세월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다.

내가 여기까지 생각을 느슨하게 물리고 있었더니 그 사이를 틈타서 보석팡이니, 캔디팡을 하자는 초대 메시지가 끊임없이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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