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봄의 전령은 단연 노란색이다. 진달래의 꽃분홍이나 수양버드나무의 연초록도 앞을 다투며 봄을 전하지만 내 마음을 흔들지는 못한다.
공중을 떠돌던 따뜻한 바람 한 자락이 한껏 물이 오른 나뭇가지에 내려앉으면 오래 기다렸던 꿈을 터트리는 듯 일시에 피어나는 산수유는 제일 먼저 봄을 연다. 또한 성미 급한 부리 하나가 세상의 한쪽 귀퉁이를 쪼면 기다렸다는 듯이 일시에 수천수만 개의 부리로 피어나는 개나리도 봄을 전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7번 국도를 끼고 있는 우리 동네엔 산수유, 개나리가 피기도 전에 다른 노란 전령이 먼저 온다. 도로변 가에서 팔고 있는 참외가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참외가 등장하면 나는 훌쩍 삼십 년 전으로 나들이를 간다.
지금은 특별히 즐기는 과일이 없지만 학창시절에 나는 참외를 좋아했다. 친구네 집에 가면 친구 어머니는 우리를 시장에 데리고 가시곤 했다. 장을 보아야 할 돈을 쪼개어 우리에게 참외를 사주셨다. 가빠 위에 쌓아놓고 팔고 있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참외를 그 자리에서 대여섯 개를 깎아먹었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인 그 친구를 십여 년 만에 만났다. 친구가 물었다.
“너, 요즘도 참외 좋아하니?”
나도 잊고 있었던 것을 친구는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는 이래서 좋다. 영화보기를 즐겨도 중국 영화는 안 보고, 커피 마니아라도 캔 커피, 냉커피는 안 마신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저녁 어스름이 내려오는 갤러리에서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고 스파게티를 먹었다.
소곤소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보고 옆 자리의 사람이 아주 친한 사이 같다며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고 물었다. 십여 년 만에 만났다고 했더니 의아해 했다. 원래 자주 만나야 할 이야기도 많은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난 사이처럼 서먹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끊어지지 않았다. 아마 오랜 시간동안 추억의 한 자락을 공유해온 탓이리라.
인생의 강물은 그냥 고요히 흐르는 게 아닌가 보다. 친구는 결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남편과 사별했다. 오랫동안 딸을 키우며 혼자 지내다가 얼마 전 재혼을 했다. 국문학을 전공했기에 작가가 되려니 했는데 뜻밖에 화가가 되어있었다. 나도 내가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우리 어머니도, 친구의 어머니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에 우리가 있다. 그 시절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언제 만나자는 말도 없이 헤어졌다. 세월이 흘러 한 조각 추억이 눈물 나게 그리운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를 할 것이다. 어느 길 가의 모퉁이에서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다시 만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