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돌

by 김제숙


내 책상 위에는 조그마한 돌들이 놓여 있다. 공깃돌이다. 자주 만져서 반질반질 윤이 난다. 책상 앞에 앉으면 습관처럼 그 돌들을 쥐어본다. 그저 작은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나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준 소중한 것들이다.


몇 해 전, 내적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즈음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 있었다. 거취문제가 불거졌다. 일하는 곳을 옮겨야할지 그냥 눌러앉아 있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했다. 자주 부딪치는 문제 때문에 그냥 있기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갈등을 하고 있는 사이 내 안에 있는 기운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버린 듯 했다. 마치 허깨비가 둥둥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조바심이 났다. 겨우 한 움큼 남아있는 내 몸의 생기가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도리를 해야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저런 문제들을 가지고 내게 온다. 좋은 일보다는 근심거리들을 한보따리씩 안고 온다. 그래서 늘어놓는 말도 원망이나 불평이나 변명이 많이 섞인 말들이다. 그 말들을 들어주고 상한 마음을 만져주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을 회복시켜 보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도 모르게 그만 우울의 바다에 빠질 때가 잦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주 나 자신을 점검하고 단속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볕 바른 날이면 마음을 높이 올려두고 거풍을 시킨다. 잘 마른 보송보송한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어야 문제 해결이 무난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마음을 매만질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은 온갖 잡다한 것에 물들어 눅눅해지고 만다. 의욕이 떨어져서 자꾸만 눕고 싶거나 혼자 멀리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진다. 사람들의 얼굴을 대하기가 싫을 때면 내 인내력에 한계가 온 것이다. 어디 말이 없는 세상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갇히게 된다.


그러던 차에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묵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청을 했다. 유배를 가듯 자동차로 네댓 시간을 달려갔다. 될 수 있는 대로 집과 일터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은 두 명이 한 방을 썼는데 나는 다행히 혼자 쓸 수 있게 되었다. 오전에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오후에 이십 분간 상담을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전부였다. 나머지 시간은 산책을 하거나 들은 강의에 대한 묵상을 하거나 쉬면되었다. 옆 사람에게 아는 척도, 인사도 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 그곳의 규칙이었다. 사람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서먹하고 이상했지만 차차 익숙해졌다.

식사는 주최 측에서 준비해 주었지만 설거지는 우리들이 해야 했다. 벽에 붙어있는 당번 표를 보고 자기 차례가 되면 하면 되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이삼 일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많은 말들에서 놓여날 수 있었고, 식사 준비의 부담도 없고, 잠 오면 자고, 산책하고, 묵상하고……. 꿈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늘 시간에 쫓겨서 동동거리며 살았다. 그렇게 바쁘게 산 것은 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뱉어 버린 수 없는 말을 책임지느라 동분서주한 삶이었다. 그동안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흘 째 되던 날부터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묵상을 하면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작정을 했으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얇은 산문집 한 권을 가지고 갔었다.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방에서 책을 읽었다. 그래도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창으로 숙소 뒤쪽을 내다보니 자갈들이 깔려있는 정원이 있었다. 나가서 작은 돌 다섯 개를 주워왔다. 혼자서 공기놀이를 했다. 돌 하나에 일 점으로 백 점을 먼저 나면 이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기놀이를 잘했다. 누구보다도 먼저 점수를 냈다.


혼자서 일인이역을 하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나도 모르게 "어머, 오래 쉬었더니 잘 안되네.", "네 차례야. 어서 해.", "얘, 좀 더 높이 올려야지 그게 뭐니?", "아까 점수가 삼십육 점 아니었니?"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깃돌을 밀쳐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도망하듯 피하여 온 것은 바로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이었다. 가족을 위해 끼니를 준비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 무엇보다도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무겁게 지고 있어야 하는 짐이 아니라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하는 작은 징검다리였다.


새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살다보면 다시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마음을 끓일 때가 잦다. 그럴 때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작은 돌멩이 다섯 개를 가만히 잡아본다. 그것은 어쩌면 돌멩이가 아니라 부글거리며 떠오르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닻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봄의 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