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가을,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엄마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였던 그 무렵을 외로움 속에서 사셨다. 그나마 말동무라도 될 수 있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은 버스로 다섯 시간의 거리에 살고 있었으니. 외로움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쯤이면 ‘에미 보아라’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내셨다. 내용은 주로 바듯하게 꾸려가고 있는 살림살이 걱정, 사위의 건강에 대한 염려, 두 손주에 대한 그리움들이었다. 어디에도 당신의 이야기는 없었지만 글의 행간에 뿌려져 있는 수많은 눈물 위에 내 눈물도 보탰다. 그 애틋함이 커서 잠시라도 모셔 와서 함께 있고 싶었다.
하루는 고디국을 드시고 싶다 하셨다. 어릴 적에 여린 배추를 살짝 데쳐 넣고 정구지도 씀벙씀벙 썰어 넣고 밀가루를 풀어 끓인 고디국을 즐겨 먹었다. 지금처럼 찹쌀가루를 풀고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옹골찬 고디국이 아니었다. 열대여섯 식구가 먹어야 했으니 풋내 나는 멀건 국이었다. 엄마는 그 생각이 나신 듯했다. 고디를 사려고 몇 번이나 큰 시장에 갔지만 그 때마다 허탕을 쳤다. 엄마는 그 가을에 먼 길을 떠나셔서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못했다.
고디국은 내게 그리움이다.
몇 해 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친구와 황토찜질방에서 만났다. 세상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는 내가 고디국을 끓이고 머위 잎을 데쳐 된장에 무쳐서 도시락을 싸서 가면 그렇게 좋아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등 뒤에 바투 붙어있건만 친구는 연신
“얘, 너 고디국 잘 끓이는구나, 정말 맛있다.”
하며 콧등의 땀을 닦았다.
친구인들 그것을 느끼지 못했겠는가.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늘에다 대고 삿대질이라도 하며 묻고 싶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순리대로 가겠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길길이 화를 내었다.
‘죽음은 연인이 아니야. 우리 나이에 죽음이란 원수야. 원수에게 곁을 내어주지마.’
단발머리 시절, 그 친구와 나는 앞뒤 번호를 나눠가졌다. 친구가 46번, 내가 47번이었다. 집에서 잠을 잘 때 외엔 하루 종일 붙어 지냈다. 그러던 것이 서로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각자 다른 삶을 사느라 잠시 헤어졌다. 내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을 때, 친구는 우리의 남다른 인연에 즐거워했다.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병원에 갔을 때였다. 이미 말문을 닫은 친구는 나를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천국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고디국은 내게 슬픔이다.
그 후로 나는 고디국을 끓이지 않았다. 나도 엄마를 닮아 고디국을 좋아한다. 언제든 끓여야지, 싶어서 고디를 삶아 물과 함께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 냉동실 문을 열 때마다 고디가 보였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그리움이나 슬픔은 볕이 바르고 바람이 좋은 날 높이 걸어두어도 마르지가 않았다.
그런 내가 어제는 큰 솥으로 한 솥 가득 고디국을 끓였다. 우리 동네는 봄이 무르익어 농익은 향기를 퍼뜨리는 이맘때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과수원에서는 열매를 살펴 대여섯 개 중에서 튼실한 것 한두 개를 남기고 모두 따버린다. 남겨둔 엄지손톱만한 열매는 봉지를 씌운다. 또, 기계로 하기 때문에 그전처럼 그리 많은 일손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모내기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일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산딸기를 따는 일이다.
나는 산딸기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웃의 밭에 가서 잠깐씩 일손을 거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고디국 생각이 났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지쳐서 집에 돌아왔을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 그릇의 고디국을 대접하고 싶었다.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고디를 해동시키고 장에 가서 정구지 석 단과 솎음배추 한 단을 샀다. 배추를 슬쩍 데쳐서 잘게 썰어두었다. 정구지도 잘 다듬어 씻어 썰어두었다. 찹쌀가루와 들깨가루를 물을 부어 개어놓았다. 고디 삶은 물이 끓기 시작하면 배추와 정구지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그러고 나서 찹쌀가루와 들깨가루 갠 것을 넣고 간을 한다. 나는 간장과 소금 간을 반반씩 한다. 이게 시원하게 끓이는 맛의 비결인 것 같다.
동네 사랑방 부엌에 국솥을 가져다 놓고 입도 빠르고 손도 빠른 이웃 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하루 종일 과수원이나 들에서 일하시느라 저녁 반찬 준비를 못하신 분들은 한 냄비씩 떠가서 저녁에 드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