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깽이와 거북이

by 김제숙

퇴깽이와 거북이



‘퇴깽이 40분 거북이 1시간 20분’ 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등산길에서였다. 산을 절반 넘게 탔을 때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마침 조금 쉬어가려고 걸음을 멈춘 지점이었다. 철수와 영희 부부는 그것을 보고 참 귀여운 표현이라 생각하며 잠시 웃었다.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지친 등산객들에게 이제 반 넘어 왔으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언이고, 잠시 숨을 고르며 어떻게 갈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배려인 듯이 보였다.


그들 집에도 퇴깽이와 거북이가 산다. 철수는 퇴깽이, 영희는 거북이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희는 사실 거북이는 아니다. ‘수퍼’ 퇴깽이와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거북이의 신세가 된 것이다.

퇴깽이는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나와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니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나가야 했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해 주는 형편이 아니어서 늘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었다. 자취라는 것이 살림을 살아가면서 공부도 해야 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그 자부심이 퇴깽이로의 삶을 살게 했을 것이다.

거북이는 대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딸이 귀한 집이었고 살림살이에 여유가 있었으므로 별로 답답하거나 급할 것이 없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딸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 칭찬을 들으며 자랐다. 세상을 왜곡해서 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 두 남녀에게 콩깍지가 씌었다. 콩깍지에는 약이 없다. 상대에게 스스로 실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천생배필이라 여겨 결혼을 하고보니 좋아하는 음식이나 잠자는 시간, 취미 등 어느 하나 비슷한 것이 없었다. 오랜 연애기간 동안 한 콩깍지가 다른 콩깍지에게 일방적으로 맞추어온 것뿐이었다.

결혼하여 살다보니 서서히 본심이 드러났다. 영화를 좋아하는 영희에게 철수는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큰소리를 치더니 알고 보니 장면이 바뀌어서 배우들이 옷만 바꿔 입고 나와도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줄거리를 따라가지 못하니 영화보기가 재미있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콩깍지가 하나하나 벗겨져 갔다.


요즈음도 저녁 무렵이면 사이좋게 산책을 나선다. 퇴깽이는 얼마의 시간 동안 어디까지 갔다 온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옆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북이는 이름도 모르는 들꽃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가지고 사진을 찍으며 걸으니 퇴깽이와는 금방 간격이 벌어지고 만다. 그러니 항상 퇴깽이 40분, 거북이 1시간 20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앞서가던 퇴깽이는 가끔씩 뒤돌아보다가 간격이 제법 벌어지면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어이 듣기 싫은 소리들을 주고받는다.

퇴깽이는 낮 시간 동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저녁밥을 먹고 나면 조금 쉬다가 잠자리에 든다. 거북이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그때부터 눈이 반짝거리며 생기가 돈다. 이제부터 혼자만의 시간이니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틈틈이 메모해 두었던 문장들을 엮어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 서로 마음이 맞아서 화기애애하게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경우가 드물다.

거북이는 퇴깽이에게 왜 그렇게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거리느냐고, 왜 잠시라도 진중히 앉아서 차 한 잔 마시지도 못하느냐고, 매사에 그렇게 팔딱거리며 사니 될 일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퇴깽이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며 사진 찍을 것 다 찍고, 마실 것 다 마시고, 놀 것 다 놀고 살면 일은 언제할 거냐고 맞받아친다. 그동안 그들 부부의 무대는 말하자면 난타공연장이었다.

퇴깽이에게는 퇴깽이의 속도가 있고, 거북이에게는 거북이의 속도가 있다. 스타일도 다르다. 학창시절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퇴깽이는 ‘깡충깡충’이고 거북이는 ‘엉금엉금’이라 배우지 않았는가. 서로 배운 대로 살면 편할 거란 생각을 해 보지만 그건 그저 생각에서 그치고 만다. 퇴깽이는 퇴깽이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살면 될 터인데 그럴 수 없는 것이 부부란 한 무대에서 함께 연기를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개별의 삶은 주장할 수는 없는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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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동물의 세계에서 서로의 거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침입자가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가 일정거리 이내로 들어서면 공격을 하는데 이를 ‘싸움 거리’라고 한다. 철수와 영희는 아무래도 이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그 다음으로 포식자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도망가지 않는데 이 거리는 ‘도주 거리’이다. 또 ‘임계 거리’라고 있는데 이것은 서로 잘 지내면서 공격 행동을 하지 않는 거리라고 한다. 그들 부부도 이제 이 거리를 터득해 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퇴깽이는 모든 일을 혼자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며 살아오느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만큼 앞서 달리고 있었다. 그것이 철수를 수퍼 퇴깽이로 살게 했으리라.

그래서 무대 위의 퇴깽이와 거북이는 마음을 맞춰가며 공연하는 것이 힘이 들었다. 서로의 동작이 틀릴까봐, 불협화음을 관객들에게 들킬까봐, 도저히 참지 못해서 중간에 어느 하나가 튀어나가 버릴까봐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했었다.

세월은 무심한 것 같아도 그들 부부의 마음결을 수없이 매만지며 흐르는가 보다. 서로 융화가 될 것 같지 않던 퇴깽이와 거북이에게 조금씩이나마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무대에 등장해서 오랜 세월 동안 공연을 하다 보니 이제는 함께 호흡하며 서로의 역할을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제는 퇴깽이는 20분을 뒤로 물리고 거북이는 20분을 앞당겨서 같은 보조로 걸어가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할 때 퇴깽이 철수와 거북이 영희는 함께 만세를 부르는 해피엔드로 이야기의 결말을 내고 싶다. 물론 한날한시에 퇴장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그것은 연출자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누구든 혼자 남아서 연기를 하더라도 일인이역을 감당하며 나머지 공연을 제대로 마무리 하고 막을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철수도 영희도 자주 한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터이다. 옛말 그른 것이 없다. 나이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