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와 한수
영희는 중학교에 다니는 형제를 두고 있는 소설가이다. 소설은 이제 잊혀져가는 문학장르라고 비관적인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영희의 생각은 달랐다. 살아가는 일이 다 소설인데 그것이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몇 백 년 전에 쓰여진 고전은 아직까지도 줄기차게 읽히지 않는가.
영희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연이어 낳은 두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글을 써서 등단을 했다. 물론 학교에 다닐 때나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도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는 날은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 에너지가 든다. 혼자 육아를 하면서 자주 우울했다. 그나마 그 늪에 깊이 발을 빠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영희는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둘을 양쪽에 재워놓고 잠시 쉴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에도 영희는 우선 책을 읽고 나서야 집안일을 했다.
철수는 실적 때문에 그야말로 하루에도 몇 번씩 희비쌍곡선이 엇갈리는 보험회사의 소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보험회사에는 여자사원들이 많다. 철수의 친구들은 꽃밭에서 산다고 부러워들 하지만, 정작 철수는 여자에 대한 신비감이 없어진대나 뭐래나…….
아무튼 철수는 다소 다혈질이어서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는 눈썹을 팔자로 그리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이면 곧잘 입에 거품을 물론 하지만 지극히 착실한 사회인이고, 좋은 아버지이고, 괜찮은 남편이다.
그런 철수도 이젠 나이가 들어가는지 가끔 어깃장을 놓으며 날벼락이 칠 때도 있다. 꼭 일주일 전이었다. 그날이 바로 영희의 세 번째 소설집이 우편으로 온 날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었다.
소설가가 되는 것은 영희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일찍 결혼을 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느라, 사실은 그것보다 자고 일어나면 활자로 찍혀 나오는 많은 출판물들을 보면서 지레 겁을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일종의 공해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오면서 접어두었던 이야기거리가 영희의 마음속에서 날마다 아우성을 쳤다. ‘그래, 갈등하지 말고 시작해 보는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래서 시작을 했다. 이사를 다니면서 문청시절 써놓은 습작뭉치를 버리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읽어온 책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들은 영희의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우선 영희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소설의 틀로 옮겼다. 영희가 사는 곳은 아파트라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제 각자의 삶의 무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의 휘장을 살짝 들치고 보면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물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들도 있긴 하지만.
단숨에 장편 하나, 단편 세 편을 썼다. 그 중에 하나가 신춘문예를 통과하여 영희는 소설가로 등단을 했다.
철수도 영희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사실은 영희가 글을 쓰고 부터는 철수가 다소 늦게 귀가를 해도 잔소리를 심하게 하지 않아서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열렬한 독자가 되어주었다. 이왕 시작한 것 잘해보라며 컴퓨터까지 바꿔주었다.
사건이 시작된 바로 그 날도 퇴근한 철수는 반색을 하며 “당신 책 왔어?” 하더니 저녁 식탁에서 영희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이삼 분이나 지났을까 철수는 왼손에 든 책과 오른손에 든 숟가락을 거의 동시에 탕 내려놓았다. 그것도 영희가 보란 듯이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벌써 일주일째 한랭전선이 계속되었다. 그제께 저녁에는 영희에게 망신까지 주었다.
철수의 동창부부 모임날이었다. 늘 하던 대로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한 잔씩 하고는 우르르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사실 영희는 노래는 별로였다. 대부분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몰려가서 집단 패닉에 빠진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러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쪽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혼자서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중간에 도망가지 않은 것은 일단 모임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고 남편 철수를 믿은 때문이다. 영희의 차례가 오면 으레 철수가 일어나서 “내 마누라 노래는 나 혼자 들어야 돼. 카나리아거든!” 눙치며 영희의 민망함을 모면시켜 주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다른 도시에 살다가 이사를 와서 처음 나온 동창의 부인이 신고식을 치렀는데, ‘봉선화 연정’을 현철이 왔다가 울고 갈 정도로 기가 막히게 부른 것이다. “손대면 토옥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어쩌구 저쩌구 …봉선화아 여언저엉…” 애교스런 몸짓에다 콧소리까지 넣어가며 정말 아이들 말로 뿅 가게 불렀다.
누군가가 그녀의 남편에게 “네 녀석 수준에 어떻게 저런 카나리아 같은 마누라냐?” 며 침을 튀기며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철수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젠장, 우리 카나리아랑 수준이 다른데?”
영희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생각을 하니 참 별일이다 싶었다. 무대에 나가서 뛰는 가수가 아닌 다음에야 노래가 밥 먹여 주나, 뭐 저렇게 법석을 떠나 싶었다.
바로 그때 영희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일어났다. 영희의 옆에 앉아있던 철수가 영희를 돌아보더니 영희의 귀에다 대고 목소리를 한 옥타브 낮춰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벼엉신!”
순간 영희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얼른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모두들 ‘봉선화 아줌마’ 한테 정신이 팔려 있어서 철수의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영희는 약이 올라서 어제 하루 종일 현철의 그 봉선환지, 수선환지를 들으며 연습을 했다. 음치이긴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말이다.
철수의 심술은 영희가 노래를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어제가 영희와 철수의 결혼기념일이었는데, 냉전 중이니 핑크빛 무드 같은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기념일이나 생일 따위엔 무심한 사람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영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서, 열두 시가 다된 시간에 술이 한껏 위한 철수가 돌아왔다. 왼손에는, 어디에 얼마나 처박아 두었던지 처참하게 구겨진 장미 다발을 들고서 말이다. 그리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내가 한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
영희가 소설을 쓰자 철수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 자기 이름도 한 번 써달라고 했다. 영희는 “내가 지금 국어책 쓰고 있어? 철수란 이름을 어떻게 써먹어?”, 하며 거절을 했다. 그러면서 황순원의 소설 <신들의 주사위>에 나오는 ‘한수’란 이름을 썼다. 가끔 이름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철수와 한수는 어떻게 그렇게 이미지가 다를까?, 다음 소설 주인공은 한수로 할 거야, 웃으며 철수를 놀려먹었다. 그래도 그렇지, 철수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영희는 철수의 입을 막으며 집안으로 들였다. 구두를 벗기고 안방으로 부축해 들어가자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철수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며칠 뒤에 알았다. 이웃에 사는 아이들 고모가 놀러왔길래 며칠 전의 이야기를 했더니 시누이가 그랬다.
“오빠가 화날 만 했네!”
한수는 초등학교 시절의 절친이었는데 어느 순간 라이벌이 되었단다. 서로 한 여자애를 놓고 좋아했는데 그 여자애가 철수를 버리고 한수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고모도 참, 그래도 그렇지, 삼십 년 전의 일 갖고 그게 이럴 일이에요?”
“언니는…뭐가 그래도에요. 둘이 결혼해서 딸 아들 하나씩 낳고 이 근처에서 알콩달콩 사는데. 그리고 언닌 오빠가 딸 낳고 싶어했던 거 모르죠? 얼마 전에도 나 한수 오빠 봤어요. 아마 오빠도 마주친 적 있을 걸요!”
영희로서는 대략난감이었다. 아무래도 그게 그렇게 화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철수의 이 소심한 반항을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했다. 다음 소설엔 악당의 이름에 한수를 붙여서 철수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