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많이 먹으면 생기는 일

by 김제숙

밥을 많이 먹으면 생기는 일



철수는 오늘도 맥을 못추는 영희가 못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 세상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영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보, 밥 좀 많이 먹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가을입니다. 말(馬)은 아니지만 여름내 땀 흘리다가 서늘한 바람이 불자 식욕이 좋아졌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꼭 계절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먹을거리가 넘치는 걸 보니 정말 세상은 넓고 먹을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영희는 밥 한 공기로 하루 종일 낑낑대고 있는 형편입니다.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열심히 음식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냄새를 맡고 간을 보고 하느라 정작 식탁에 앉을 때쯤이면 식욕은 저만치 달아나 있지요.

그러나 철수는 자동모드입니다. 아침에 눈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어도 식탁 앞에만 앉으면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은 기본입니다.

영희는 그런 철수가 야만인처럼 보입니다. 드러내 놓고 눈을 흘기기도 합니다. ‘내가 돼지를 데리고 사나?’ 속으로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친구에게 푸념을 했더니 “야, 해다 바쳐도 안 먹는 인간은 어쩌냐? 그래도 먹는 인간이 훨씬 낫다.” 그렇기는 합니다. 안 먹으면 또 어쩔거냐구요?



여튼 철수는 영희에게 밥을 많이 먹으라고 합니다. 사람은, 더구나 한국 사람은 ‘밥씸’으로 산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철수입니다. 아내를 무지 사랑하는 남편 같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들을 우스갯소리로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좀 어폐가 있어요. 열심히 먹고 또 먹으면 결국 죽게 됩니다.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총량이라는 게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일생동안 먹어야 할 밥의 분량도 있다는 것이지요.

철수와 영희 부부는 그것을 ‘총량불변의 법칙’이라 합니다.

그러면 밥을 많이 먹으라는 건, 빨리 죽으라는 소리가 되는 거 아닌가요?

총량불변의 법칙을 감지하고 있는 영희는 발끈해서 소리쳤습니다.

“마누라 빨리 죽으란 말이지? 밥 많이 먹고?”

“……”


영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나간 것을 느낍니다. 요즘 마음이란 놈인지 년인지는 제멋대로입니다. 고운 생각은 머릿속에만 있고 입으로 나오는 말은 전쟁을 예고합니다. 철수의 말대로 밥이라도 많이 먹어봐야겠습니다. 몸이 허하니 마음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