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할 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터미널 커피집에 앉아 내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긴 여정의 처음을 시작한다. 버스표 예매가 안되어서 아들이 직접 터미널로 갔더니 코로나 여파로 버스노선이 중단됐단다. 우리나라가 대단히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도 아니고 내가 사는 곳이 자그마한 소읍도 아니구만 어찌 이런 일이? 일단 대구로 가는 표를 예매해 왔다. 표도 종이가 아니고 모바일로 바코드를 찍고 타야한다. 종이 차표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 이제 추억으로 던져놓고 편리하고도 불편한 시스템에 이젠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
대구에 내려서 기계 앞에서 집으로 가는 표를 샀다. 기계와 싸우면 지는 경우가 잦다. 기계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미리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배워가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래도 창구에 얼굴을 드리 밀고 행선지를 말하고 돈을 내고 표를 사는 풍경이 훨씬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가. 공룡 뱃속같이 커다란 터미널에 도착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다시 다음 행선지로 가는 그림은 SF영화에나 나옴직 하지 않은가?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영화에 있는 내용이다. 모든 것을 기계로 하는 세상이니 사람이 존재했다는 걸 증명할 길이 없다. 기계 속의 모든 데이터를 삭제해버리고 나면.
버스를 갈아타는 것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 예전에는 대부분 이렇게 살지 않았나. 오늘 중으로 집에 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길에 서면 모든 것을 즐기는 편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으니 창밖으로 아직 어려 보이는 커플이 아쉬운 작별을 하고 있다. 둘 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어서 심장소리가 전해지려나 싶지만 마지 못해 포옹을 풀고 여자아이는 버스에 오르고 남자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더니 사진을 찍는다. 본인들은 아름다운 시절에 발을 딛고 있는 줄 모르겠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하겠지. 그리고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 하겠지. 슬쩍, 저 시절에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나 빠른 배속으로 되돌려본다. 그러다가 드디어 도착한 내 집, 내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