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이 낯익은 이웃처럼 슬며시 다가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혼자 오지 않고 우울이나 의욕상실 같은 반갑지 않은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 방심하다 얼떨결에 문을 열어주면 얼마가지 않아서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되고 만다.
그러기 전에 간편한 복장을 하고 오일장으로 향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영천장이다. 영천은 나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나는 아직도 오십여 년 전, 다섯 살 어린 계집아이가 십 리 길을 아버지의 손을 잡고 타박타박 걸어서 시장에 가곤 하던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
어릴 적, 부모님과 떨어져 영천 할아버지 댁에 몇 달간 있은 적이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자 나를 잠시 친가에 맡기신 것이었다. 가끔 아버지가 나를 만나러 오셨다. 아버지가 언제 오시나 동구 밖에 나가서면 쭉 뻗은 신작로 길 양편으로 미루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적 드문 한여름 날 오후, 햇살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눈이 부시게 빛나던 미루나무들, 쉬지 않고 울어대던 매미 소리만이 한낮의 정적을 깨우던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 되어 있어서 지금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는 나를 보러 오시면 하룻밤을 주무시고 가셨다. 다음 날에는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어린 딸이 안쓰러웠는지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시곤 했다. 고기가 잔뜩 든 국밥을 사주셨는데 나는 국밥 맛만큼이나 밥을 다 먹고 나면 구경하게 될 난전에 마음이 가 있었다. 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만물상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항상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사람이 애타게 그리울 때가 잦다. 마치 홍수가 나면 사방에 물이 지천이지만 정작 마실 물은 더 귀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일로써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을 때마다 그 옛날을 생각하며 마트가 아닌 장場에 간다. 마트는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사람과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아도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안성맞춤인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편리와 효율, 속도가 최고의 선 인양 치부되는 세상에 자주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하나 들고 장 구경을 나선다.
가을로 접어들면오일장은 대목을 맞는다. 여름내 농사지은 포도, 복숭아, 고추, 마늘, 양파 등이 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한 달 남짓 있으면 추석이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각종 과일과 양념을 준비해야 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그것들을 팔아서 새 옷도 한 벌 사고 도시에 나가있던 자녀를 맞이하기 위해선 새 살림살이들도 몇몇 가지 마련해야 한다.
천변에 자동차를 세우면 바로 옆 고수부지에 자연스레 조성된 농산물시장이 있다. 커다란 자루에 든 잘 마른 고추가 고혹적인 색으로 유혹을 한다.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빨간색이다. 작황이 좋지 못하여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옆에서 가만히 들으니 흥정하는 말투가 정겹다. 모르는 사람들은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시끄럽고 거칠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접미사 ‘~예’로 끝나는 말은 애교가 철철 넘치는 말이다. ‘아니오’ 라는 의미로 쓰이는 ‘~언지예’ ‘~아이라예’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고추를 사려는 사람이 좀 과하게 값을 깎았나 보다. “텍도 없는(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이소.”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온다. 무 자르듯이 ‘안 됩니다’ 라는 말보다 얼마나 정감 있는 말인가. 그 옆을 지나치다가 소리 없이 웃었다.
한나절을 장 구경할 요량으로 온통 비워두었으니 바쁠 것 없는 걸음새로 사람들에게 치이면 치이는 대로 밀리면 밀리는 대로 흘러 다녔다. 그러다가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던 뒷사람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이 양반이 팔도 유람 댕기나. 빨리 빨리 좀 가소.”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이다. 잠시 비켜서면 될 터, 그것도 싫지가 않았다. 이곳 장에 오면 모두가 고향의 아재, 아지매가 되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영동교에서 영천역에 이르는 큰 길은 가전제품 대리점이나 약국, 은행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다 한약재 가게가 들어서 있다. 전국적인 유명세를 실감한다. 재래시장이라 하지만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었다. 나는 처음에는 본래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서 아쉬웠지만 상인들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도 간판들을 새 단장하느라 분주하였다.
두어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시장기가 몰려왔다. 내가 시장에 오면 늘 가는 집이 있다. 영천시장의 대표음식인 소머리 곰탕집이다. 주인 할머니는 열아홉 살 때부터 국밥집을 했단다. 올해가 오십삼 년째라고 했다. 그 때는 허허벌판에 긴 나무의자 몇 개 놓고 솥단지 걸어 아궁이에 불을 때며 소머리를 삶아 국밥을 팔았단다.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저 먼 시간 너머에서 벌써 우리는 이십 대 초반의 새댁과 다섯 살 난 계집아이로 만난 사이였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사연을 이야기 했더니 할머니는 오래된 단골인 양 나를 살갑게 대했다. 따끈한 쌀밥에 오래 끓여 뽀얀 소머리 곰탕은 별미이다. 집에서 작은 찜솥에 조금씩 끓이는 곰탕에 댈 바가 아니다. 시장하던 차에 맛있는 곰탕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다.
건어물 가게를 지나 생선가게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 유명한 돔배기가 가게마다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손님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 어디쯤에 아버지가 시장에 오실 때마다 들리던 오촌 당숙의 가게가 있었을 터이다. 머리에 서리가 앉기 시작한 세월로 건너온 어린 계집아이는 그 곳을 가늠할 길이 없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아 무안해진 나는 눈에 티가 들어간 것처럼 딴전을 피운다.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포를 떠서 소금에 절였다가 적당히 건조시켜 간이 잘 배면 산적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고기이다. 어릴 적, 제사를 지내고 나면 어머니가 음복 접시에 조금씩 올려주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던 귀한 것이다.
활기찬 생선가게를 지나 큰길로 나섰다. 버스 정류소에는 장을 보고 돌아가시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었다. 저분들은 오 일이 지나면 딱히 물건을 사고팔 일이 없어도 사람구경을 하려고 다시 장에 나올 것이다. 그것이 삶의 재미이고 소일거리라고 했다.
몇 시간의 나들이로 나는 오십 년 세월을 건너갔다 왔다. 평소에는 군것질도 잘 하지 않는데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선 장에서는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사 주시던 옛날 과자도 삼천 원어치 사고 고추튀김도 이천 원어치 샀다. 한 개 오백 원하는 호떡도 하나 사먹었다.
자동차가 있는 둔치로 돌아가려는데 전봇대 곁에 정물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호박잎 한 움큼, 고구마 줄기 두어 움큼, 작은 그릇에는 마늘 몇 쪽을 놓고 앉아계셨다. 비닐포대에는 서너 움큼이나 될까 싶은 호박잎이 들어 있었다. 다 팔아도 몇 푼 되지 않을 듯싶었다. 다 사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했더니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셨다.
“못생겨서 사진이나 잘 나오겠나?”
좀 일찍 떨이를 하셨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여유 있을 듯하다.
오일장 나들이를 하면서 나는 이렇듯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 사람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사람으로 치유한다. 내 삶의 고단함을 힘겨워 했지만 역시 같은 어려움을 안고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장터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남편이 은퇴를 하면 아버지의 고향 동네로 돌아올 것이다. 조그마한 땅을 마련해 등을 누일 오두막 하나를 짓고 텃밭을 가꿀 생각이다. 고추와 오이, 가지, 상추를 심어 가끔 내 거처를 방문하는 아들과 딸, 손주들, 친구들을 위해 소박한 밥상을 준비할 것이다. 우리 부부가 꿈꾸고 있는 황혼의 모습이다.
오늘 저녁상에는 맛있게 끓인 된장찌개와 호박잎 쌈, 고구마 줄기 볶음을 올릴 참이다. 집으로 가려는 데 마음이 먼저 알고 앞장을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