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째 냉전이다. 남편은 밥을 차려주면 먹고 나갔다가 저녁이면 들어와 잠을 잤다. 나도 내 일을 말없이 했다. 그전 같으면 그냥 두었을 살림살이들을 꺼내 씻고, 잘 갈무리해 두었던 철 지난 옷도 다시 끄집어내어 세탁기에 넣었다. 장롱 깊숙이 잠을 자던 이불도 꺼내 거풍을 시켰다.
우리 집안 분위기를 알 리 없는 햇살이 찰랑찰랑 다가와 흰 광목 이불에다 대고 재재거렸다. 갑자기 불려나온 이불은 내 눈치를 보느라 머뭇댔다. 괜히 방해하기 싫어서 못 본 척 눈을 감았다. 내 몸 속에 내가 모르는, 순간 이동하는 길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가슴이 젖는가 싶더니 이내 눈에서 찔끔 물기가 묻어났다.
한참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남편이 일을 일찍 끝내고 점심 무렵에 집에 들어왔다. 무심한 듯 물었다.
“바람 쐬러 갈까?”
나는 대답 대신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백설기를 꺼내고 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과일 몇 개로 바구니를 꾸렸다. 마지못해 한다는 품새를 보이려고 평소와는 달리 일부러 굼뜨게 행동을 했다.
집을 나서면서 군위군(郡)에 있는 한밤마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을 하기는 싫었다. 지금껏 남의 삶을 치보며 살지 않았다. 재물이나 명예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아서 그런 일로 인해 부딪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것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물과 같았다. 카멜레온처럼 색깔도 자주 변했다. 어쩌다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몸짓 하나로 인해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어디에 쟁여져 있었던지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와 쌓이고 만다.
“대율리 가볼까?”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심상하니 대답을 했다.
“그러든지.”
고택이 있고 돌담길이 아름답다는 한밤마을을 보고 싶었다. 언젠가 한 말을 남편이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두어 시간 자동차를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제법 높다란 담 위로 흰 불두화가 만개해 있었다. 붉은 장미도 한창이었다. 돌담 사이사이에 낀 초록의 이끼가 ‘나도 여기 있어요.’ 하는 듯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식물들은 저렇게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은 그만도 못한 것이 자못 부끄러워졌다. 사람이라고는 옆에서 나란히 걷는 남편 밖에 없지만 그 마음을 들킬세라 일부러 목을 길게 빼고 담 안을 기웃거리는 시늉을 했다.
제법 너른 골목길을 올라 왼쪽으로 꺾어지니 바로 유명한 남천고택이다. 빈번한 방문객 때문인지 안으로 잠겨 있다. 그 앞에 서자 나는 고택보다 옆에 있는 대청에 마음을 빼앗겼다. 답답했던 속이 훤히 뚫리는 기분이다.
대청 중앙에는 세로로 두 자씩 쓴 대율동중서당이라는 현판이 높이 걸렸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금은 사면이 개방된 구조이지만 중건할 당시는 중간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둔 형태였으리라 한다. 이 대청을 중심으로 한밤마을의 길이 방사선 모양으로 갈라져 있고 그 길 따라 전통가옥들이 숨바꼭질하듯 드문드문 숨어 있다.
일설에 따르면 한밤마을 전 지역이 사찰 터였고 이 대청은 대종각 자리였다고 한다. 타종을 하면 그 여운이 마을 멀리까지 퍼져나갔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 종소리를 듣던지 구심점은 이곳이니 지금처럼 대청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복잡한 마음을 대청에 내려놓았다. 따스한 햇살이 눅눅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무심히 지나갔던 바람도 되돌아와 뭉쳐있는 마음을 헤집어 길을 내었다.
남편은 인생의 가을을 다소 힘들게 건너고 있는 중이다. 처진 어깨를 보니 마음 한쪽이 기우뚱거렸다. 나라도 중심을 잡자고 다짐을 해도 그건 잠깐이고 다시 발밑이 꺼져들었다.
평생을 모범답안처럼 살아왔지만 세상일이 어디 내 마음처럼 움직여지는 것이던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구설에 말릴 때마다 남편은 좌절했다가 다시 추스르곤 했다. 그러나 몸이 늙어가는 만큼 마음도 탄력을 잃어가는 모양이었다. 요즈음은 그전처럼 쉬 마음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 무게가 만만치 않을 거란 것을 알면서도
“어깨 좀 펴고 다녀요.”
보다 못해 짜증스럽게 내뱉은 말이 이번 냉전의 시작이었다.
대청은 만남의 장소가 아닌가. 서로 소통하고 화해를 이루는 곳이다. 남편과 내가 자동차를 타고 오는 사이 멀뚱히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두 마음이 아마 이런 대청에서 만났나 보다. 그래서 같은 목적지를 염두에 두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 부부의 잦은 다툼은 어쩌면 소통으로 가는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른 표현이지만 같은 뜻인 남편이 대율리, 내가 한밤마을이라 칭하는 것처럼.
갑자기 요란한 참새소리가 들렸다. 돌담길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입구에 관광버스 세 대가 서 있더니 수학여행을 왔나 보다. 백여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너른 대청을 점령해 버렸다. 휴대전화기로 전화를 하는 아이, 작은 책자를 들여다보는 아이, 사진을 찍는 아이, 간식을 먹는 아이, 옆의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아이, 무언가를 쓰는 아이……. 하고 있는 일만큼이나 자세도 다 달랐다. 대청 끝에 걸터앉고, 엎드리고, 기둥에 기대고, 양반 다리로 앉아있고, 벌렁 눕기도 했다. 대청은 아낌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참새들이 사라지고 나자 사위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대청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팔공산 자락의 풍경이 각각의 액자처럼 걸려있다. 대청은 모두 열다섯 개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로 기둥을 세웠다. 대청의 바닥은 땅에서 아이의 허리높이 만큼 올라와 있었다. 위아래로 막힘이 없다. 이렇게 바람 길을 두었으니 기우뚱거릴 리 없을 터이다.
신산스런 마음을 대청에 그대로 두고 좁은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마을 초입에서 대청까지 올라오는 길의 담은 제법 높고 육중했다. 대청에서 다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돌담은 낮고 아담했다. 집들도 소박하다. 이끼 낀 돌담을 들여다보니 켜켜이 쌓아 견고해 보였지만 그 사이사이에 바람 길이 있었다. 그 때문에 돌담이 무너지지 않을 성 싶다.
낮은 돌담 안쪽에는 흰 보석들로 한껏 치장을 한 감나무가 다소곳이 서 있다. 껑충 키가 큰 호두나무는 엄지손톱만 한 열매를 수없이 매달고 뽐내듯 그 옆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청춘의 두 나무는 서로에게 풍요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듯 했다.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어때, 괜찮은 한 쌍이지?’ 하는 듯했다. 복잡한 마음을 대청에 두고 와서 그런지 이런 상상력이 더해졌다. 나도 모르게 남편과 내가 부부의 인연을 맺을 때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철없던 단발머리 소녀였을 때 까까머리 남자애를 처음 보았다. 인연으로 묶여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야 할 운명이었는지 이십대 중반에 몸이 아파 휴학을 하고 있는 터벅머리 청년인 그를 다시 만났다. 눈에 보이는 결혼의 조건을 아무 것도 갖추지 못했지만 순수한 마음과 성실함과 책임감이 그가 갖고 있는 재산이라 믿고 모험을 했다. 긴 인생의 여정에 잠시 동안의 주춤거림이 무엇이 문제가 되랴 싶었다. 더디 가는 만큼 한 생애의 이야깃거리는 더욱 풍성해지리라 생각했다. 주어진 날들을 순리대로 살면 시간의 끝자락에 섰을 때, 그래도 괜찮은 부부였다고 서로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내게 될 줄 알았다.
우리의 삶이 벽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거칠 것 없이 훤히 트인 대청에 머무를 때도 있어야 함을 간과했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잠시 멈추어 서서 비우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노폐물이 쌓여 동맥경화를 일으키곤 했다.
아! 이제부터는 남편의 마음 한 귀퉁이, 내 마음 한 귀퉁이를 비워 우물마루를 깔고 열다섯 개의 원주 기둥을 세워볼까? 기둥 하나하나에 우리 부부가 그동안 써내려온 삶의 이력을 새겨 넣으면 제 자리를 잃고 자주 기우뚱거리는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 속에 잠시 휴지(休止)가 필요할 때면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책이나 사람도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앞선 삶을 살다간 이들의 흔적들 위에 현재를 건너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얹을 수 있다면 좀 더 깊고 융숭한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걸음을 돌려 다시 대청으로 왔다. 햇빛도 만지고 바람도 쓰다듬고 지나간 마음은 한결 말랑말랑해졌다. 사느라 다시 때가 끼고 거칠어지면 이 훤히 트인 대청을 생각할 것이다. 마음을 제 자리에 담았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올 때의 그 걸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