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물론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지만 어떤 때는 경고하듯 소리를 내어 말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라는 말에는 상반된 느낌이 담겨 있다. 일을 마치며 흔쾌히 기분 좋게 말할 때도 있지만, 어떤 일을 계속하기 싫어서 빨리 끝내고자 하는 경우에 쓰기도 한다. 요즈음은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몸보다 입이 앞서나간다.
예전에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노파심에서 같은 말씀을 여러 번 하는 것을 듣기 싫어했다. 드러내 놓고 대꾸를 하지는 않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속으로 ‘아아아아!’ 소리를 지르곤 했다.
집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한 가지 일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나 남편은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하는 일이 미덥지 않다기보다는 밖에서 말을 잘 하지 않으니 집 안에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가 싶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적잖이 놀랐다.
아들이 제대를 하고 취업을 했다. 신입사원 연수중이니 곧 거처를 마련하고 중고 자동차라도 구입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전화가 올 때마다 나는 앵무새처럼 같은 소리를 되풀이 했다.
“미리 방을 알아봐라. 될 수 있으면 보증금을 많이 걸고 월세를 적게 내는 것이 좋겠다. 자 동차도 이삼 년 탄 중고를 구한다고 자동차 상사에 얘기해 둬라. 아침밥을 꼭 챙겨먹어라. 객지에 있는 데 아프면 누가 돌보아주겠니?”
전화가 올 때마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되풀이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그쯤 해 둬.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그 말에 괜히 부아가 났다.
‘부모가 돼서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이야?’
마음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눈까지 흘겼다.
내가 유독 애면글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남편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느라 우리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아이들도 전학이 잦았다.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일곱 번이나 전학을 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아예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 때 집을 떠난 아들은 지금껏 방학이나 휴가 때 며칠 집에 머물 뿐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늘 일찍 집을 내보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염려가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요 근래에 들어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글 모임을 갖는다. 글을 한두 편 써서 돌려가며 읽고 토론도 한다. 회원들이 내 글에 대해 한결같이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글을 마무리 하면 될 텐데 마지막에 꼭 한두 줄 사족을 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잔소리다. 회원들은 글을 읽고 나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 그 여지를 남겨두라고 누누이 조언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끝을 맺는 것이 미덥지 않은 나는 늘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만다.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무겁다. 그렇게도 내가 싫어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우울하다. 나는 단순하고 담백한 것을 선호한다. 요란하고 왁자지껄한 것은 별로다. 군더더기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장황하고 중구난방이고 횡설수설하게 되었으니 기가 막힌다.
다행히 나는 깨달으면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오지랖이 적당한 그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사족을 고쳐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며칠 전, 수필집 한 권을 읽었다.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있는 친구가 생각이 나서 책이름을 적어 보냈다.
‘좋은 수필집이야. 한 번 사 봐. 가슴이 서늘해지고 눈물이 난다. 글들이 정말 아름다워.’
할 말을 다 적었는데도 나는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뒤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다.
‘네 독서 모임의 교재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이 말을 적고 싶어서 한참을 망설였다.
‘교재로 사용하고 안하고는 친구가 선택할 일이잖아. 내가 강요할 일은 아니지. 책을 사서 보라고 알려준 것만으로 됐어.’
겨우 나 자신을 달래고 전송 버튼을 눌러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고맙다는 답이 왔다. 저녁 무렵, 토론 모임에 교재로 쓰면 어떠냐는 문자가 다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