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에요
철수와 영희는 결국 헤어지기로 합의를 보았다.
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돌아눕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의 이혼 결정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져서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소문의 진상에 대해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그들 둘은 개성이 강해서 사흘이 멀다 하고 티격태격할 지경이었지만 장장 구 년 동안의 연애기간이라던가 철수가 와병 중이었고, 대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주위의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용감무쌍하게 결혼을 한 그들이고 보면 쉽사리 헤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혹시 그것 때문이 아닐까. 잠자리 말이야. 흐흐흐, 철수란 놈은 몸에 좋다는 약이라면 입에 달고 사는 놈인데 영희는 바야흐로 삼십대니 한창 완숙할 나이 아냐? 영희가 작년부터 테니스라든지 수영에 열을 올리는 걸 보면 남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흐흐흐
학창시절에 유난히 함께 몰려다닌 탓에 이제 모두 결혼을 하여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형이 되었어도 친구들은 여전히 철수 놈이었고 영희 걔였다.
그들 부부는 이혼 절차를 밟을 동안 별거에 들어갔다. 철수의 직업이 노상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인지 별거래야 영희는 그냥 안방을 쓰고 철수가 영희의 화장대 서랍에 넣어두었던 면도기 나부랭이를 챙겨 이부자리와 함께 서재방으로 옮긴 것이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한 지붕 아래에서 남남으로 돌아섰다. 영희는 더 이상 철수를 위해 새벽밥을 짓지 않았다. 그것 하나로도 영희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연애시절의 남자들이 대부분 그럴 터이지만 철수도 영희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다. 영화를 좋아한 영희가 개봉관을 빠지지 않고 순례를 하여도 군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군소리가 다 뭔가, 한 술 더 떠서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한 그 날부터 철수의 태도는 돌변했다. 영화감상이 취미는커녕 공연한 시간낭비라고 펄쩍 뛰었다.
영희는 철수와 헤어지기로 결정을 하고 나자 이상하게 마음이 낮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을 한 채 살아왔던가. 한평생을 남편의 영양식이나 만들고 건강이나 체크하며 살 순 없지 않은가. 아름답고 향기롭게 한 생애를 살고 싶었거늘. 예감도 없이 눈물이 났다.
홀가분한 것은 철수도 마찬가지였다. 죽어서 저승까지 따라올 것 같은 마누라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어 양말을 한 번쯤 더 신어도, 밥을 먹기 전에 손을 닦지 않아도, 하루쯤 저녁 양치질을 걸러도 누가 무어라 할 사람이 없었다.
또 지금까지 참을 수 없는 것은 철수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데에 반해 영희는 새벽녘까지 불을 켜놓기 일쑤였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여자가 영화평론이라도 쓰려는지 영화라면 장르를 막론하고 빠뜨리지 않고 보면서 또 읽는 책이라고는 시사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소설책만 탐독하는 것이었다.
떠도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집을 장만하고 철수가 우겨서 들여놓았다던 고가의 더블침대를 처분했다는 소문을 듣던 날 친구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걔들 정말 일 내는 거 아냐?
소문이 돌고나서 처음으로 친구들은 말을 아꼈다.
친구들이 한 무더기로 몰려온 것은 철수가 그들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었다.
오밤중에 쳐들어온 친구들을 보며 철수와 영희는 속으로 ‘아이구, 저 웬수들’ 했다.
비록 중간에서 어긋나 검은 머리 파뿌리 가 되도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에서 본 것처럼 포도주라도 한 잔씩 마시며 근사한 이별을 하고 싶었는데 불청객들이 산통을 다 깨어놓고 있었다.
영희는 그들에게 드러내놓고 눈을 흘겼다.
친구들이 반갑지 않은 것은 철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밤을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괜찮은 마누라였는데. 그까짓 영화 좀 즐기면 어떠랴. 국회에 가서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시사에 좀 둔감하면 또 어떠랴. 초저녁부터 참에 취해 있는 것보다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소설책이라도 읽는 편이 옆에서 보기에 낫지 않았을까.
철수는 술상 건너편에서 친구들의 술시중을 들고 있는 영희를 찬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영희도 친구들 속에 섞여 그들의 잡담을 들으며 잠깐씩 생각에 잠겼다. 다소 이기적이고,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에 집안일이라면 벽에 못 하나도 건사할 줄 모르고, 경제적인 문제나 아이들 일 등 신경 써야 할 일은 모조리 영희에게 미뤄버리긴 해도 성실하고 반듯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잖아. 왜곡된 사회현실이나 구조적인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피하지 않고 ‘양심적인 소수’가 되고자 하지 않았던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한 집 건너 한 쌍식 이혼을 하는 세상이 되었더라도 그들의 ‘1호 부부’를 그냥 일 내게 버려둘 수는 없었다.
참으로 치기어린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 약혼식이다. 결혼식이다, 아이 백일이다, 돌이다 하며 줄기차게 구실을 만들어 몰려가서는 그들 가난한 부부의 한 달 생활비를 온통 들어먹곤 했었다.
이제 사회의 한 분야에서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바쁘게 뛰어야 하는 세월 위에 서고 보니 그 시절이 그리웠다.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그들 부부와 친구들이 은밀한 비밀처럼 가슴에 묻어두고 공유하고 있는 그 한 조각 향수 때문에 철수 부부는 여느 부부와는 다른 의미가 되어 있었다.
이런데 이혼이라니.
철수의 짐인 듯 고실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이제는 그들 부부의 이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몇 개의 상자와 두 개의 여행용 가방을 보며 그들은 자꾸만 술을 들이켰다. 왠지 빈 가슴 위로 마구 바람이 쓸며 지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철수와 영희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신 은사님이 아파트의 벨을 누를 것은 새벽 세 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친구들 중 누가 연락을 드린 모양이었다. 시골에 사셔서 좀처럼 멀리 나들이를 안 하시는 분인데 철수와 영희의 소식을 듣고 급히 오신 듯 했다.
거실로 올라서자마자 왕년의 주례선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군, 이군, 자네들 정말 이혼할 셈인가?
제 삼자의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말에 철수도, 영희도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천만에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