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당아씨와 머슴 이야기
“남편을 싸게 팝니다. 45세의 건장한 남자. 사업 잘함. 취미 골프. 성수기에는 장기외출도 함. 세일 또는 교환도 가능”
영희는 오래 전, 해외토픽 난에서 읽은 기사가 생각났다. 요즘이야 이것보다도 더 큰 이슈들이 많으니 이런 이야기는 기사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캐나다 벤쿠버는 골프 천국이라고 한다. 남편이 골프에 몰두한 어느 부인이 화가 나서 이런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사람 사는 모습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영희는 차라리 골프 과부나 낚시 과부가 부러운 사람이다.
그동안의 세월을 돌아보면 그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영회와 철수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만났으니 그들의 역사는 삼십 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들은 무슨 연유에선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철수가 원숭이 띠, 영희가 개 띠여서 그런가?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하여튼 그들은 만날 때 마다 싸웠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만났다가도 헤어질 무렵이면 어떤 문제든 서로 다른 의견으로 언성을 높였다. 아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이들에게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짝을 찾을 나이가 되자 고민에 빠졌다.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나 임자가 있는 몸이 되면 지금까지 싸우면서 결론 내지 못한 수많은 주장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공들인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의기투합하여 결혼을 했다면 믿겠는가?
그래도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들었는지 결혼할 당시 참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을 했다. 친구처럼 늙어갈 수 있으리라고 꿈을 꾸었다. 둘 다 반듯한 사고를 가졌으니 불의한 일로 마음 쓸 일이 없을 터이고, 책읽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하니 다른 취미 때문에 생이별을 반복할 일도 없다 싶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만날 때마다 다투곤 하던 일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거라고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얼마 전 영희의 친구가 새로 산 차를 몰고 놀러왔다. 차를 새로 샀다기에 영희는 색깔 좋다. 언제 샀니? 하고 있는데 철수는 옆에 서서 대뜸 한다는 말이, 창문이 왜 온통 검은 색이지요? 왜 이렇게 선팅을 짙게 했느냐. 차안에서 무슨 나쁜 짓 하려고? 완전히 이런 투였다. 영희가 열 받는 건 왜 그런 것부터 눈에 보이느냐는 것이다.
영희가 잠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몇 시에 오느냐고 묻는 건 기본이고 빨리 오라는 소리를 서너 번은 한다. 그나마 점심으로 라면 정도는 끓여 먹으니 다행이다. 외출하면서 라면 두 개와 김치 한 접시, 빈 그릇, 숟가락, 젓가락을 얌전히 식탁 위에 차려놓고 상보를 덮어놓았다. 그날따라 중간 냄비를 내어놓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라면은 두 개를 끓여먹은 것 같은데 냄비는 가스레인지 위에 있던 제일 작은 냄비를 썼다. 어떻게 끓여 먹었어?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로. 그 냄비로는 한 개 밖에 못 끓일 텐데. 하나 끓여먹으면서 다시 하나를 끓였지. 아이구 내 팔자야, 왜 싱크대 밑 냄비 넣어두는 곳을 한 번 열어볼 생각도 못했어?
영희와 철수 가족은 얼마 전에 시골로 이사를 했다. 건강이 나빠진 철수를 위해서였다. 두 아이들도 다 기숙사 학교에 다니는 터에 거칠 것이 없어서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저런 수당이 빠지고 나니 봉급이 반 가까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터라 돈 들어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여느 봉급생활자가 다 그럴 터이지만 봉급 날 전쯤에는 보릿고개가 아닌가. 그런대도 철수는 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게 투망을 사겠다는 거였다. 영희는 차마 생활비가 떨어졌다는 소리를 하기가 어려워서 며칠만 있다가 사라고 그랬더니 평소에는 눈치가 무딘 철수가 그때는 재빠르게 감을 잡더니 집에 돈 없어? 그럼 은행에 가서 좀 찾아와. 큰 소리 치는 것이었다.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은 은행잔고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인데도 말이다. 현실감이 없어서 외출을 할 때도 돈이 있냐고 물으면 있다는 거다. 지갑을 열어보면 만 원짜리 한 장 달랑 들어있을 때가 잦다. 그런데도 카드는 쓰는 것은 반대했다. 돈 같지가 않다는 거였다. 그러니 영희가 머리를 싸매며 가계부를 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나 있으면 밉지나 않을 텐데 그런 영희를 보고 또 이렇게 한말씀 하곤 한다. 이 사람아, 없는 살림에 가계부씩이나 쓸 일이 무에 있나? 영희는 또 이렇게 응전을 한다. 여보, 웃음이 건강에 좋다지만 비웃음은 별로 도움이 안 된대.
영희의 친정어머니는 남자는 그저 아침 밥 먹고 나가서 저녁 때 들어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영희의 친정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다. 가끔 밖에서 언짢은 일이 있어도 절대 내색을 않으시고 과자나 과일을 사들고 오시곤 했다. 당신은 드시지도 않고 어린 자식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시곤 하셨다. 혼자 어려움을 삭이시느라고 병이 나서 일찍 돌아가셨나 싶어서 지금도 영희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잠시라도 영희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곤 하지요. 여보, 어딨어? 그것도 이삼십 분 간격으로 말이다. 의처증인가 싶어 영희도 처음에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일 때문에 삼사 일씩 집을 비울 때는 전화 한 통 없다.
영희는 어릴 적부터 방을 따로 써서 그런지 지금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혼자 책 읽고, 글을 쓰고, 음악 듣고, 영화 보기를 즐긴다. 누가 옆에서 얼쩡거리면 답답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철수는 부부란 항상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모임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올 때가 많다. 누가 이마에 손 얹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벌써 모임이 끝났어? 물으면, 빨리 집에 오고 싶어서 밥 안 먹고 왔어. 밥 줘! 누가 철수 좀 말려봐요.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그들 부부를 보고 전생을 믿는 영희의 친구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전생에 너는 별당아씨, 네 남편은 머슴이었나보다. 머슴인 주제에 언감생심 별당아씨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있었겠냐? 그래서 이생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어 그 원을 풀고 있는 것이겠지. 전생에 머슴이랑 사고를 쳤으면 액땜을 했을 텐데 네가 요조숙녀 짓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걸. 그러니 어쩌겠냐? 네가 참고 살아야지.”
그 자리에 있던 영희의 친구들도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다.
그 말을 영희에게서 전해들은 철수는 정말 가관이었다. 여느 집의 남편들이었으면 화를 벌컥 내며 뭐라, 내가 머슴이었다고? 열을 낸 터인데 철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거리면서 맞아, 그랬을 거야. 그러고 보니 옛날 문헌에서 내 이름과 똑같은 머슴의 이름을 본 것도 같아. 한 술 더 떴다.
맨 처음 영희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소개한 캐나다의 그 남편도 신문에 난 그 광고를 보고는 집에 와서 자기 부인한테 이랬다는 거다. 여보, 아직 안 팔렸어?
정신과 의사인 영희의 친구는 너희 부분 절대 이혼할 일 없는 건강한 부부라고 영희를 다독였다. 전생에 머슴이었다고 하는 데 화를 내는 남편이나 신문에 광고를 낸 부인을 나무라는 남편과는 절대 끝까지 가지 못한단다. 정말 그런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영희는 사는 것이 갑갑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너희들이 내 맘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