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치는 자그마한 동네 모임
겨울철 따뜻한 공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고양이에게도 중요하다. 때문에 보금자리를 찾아볼 때, 단열재가 들어가 있는 제품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그걸로 부족할까봐 추가로 스티로폼을 구매하여 겉면에 부착했다.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땅을 파서 그 위에 비닐과 스티로폼을 깔고 아이들이 드나드는 입구에 pvc 소재 발을 설치하여 웃풍과 외풍을 다 막아주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이미 들어온 한기를 몰아내기 위한 핫팩을 보들보들 극세사 소재의 핫팩 주머니를 넣어 따뜻한 기운을 만듦과 동시에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저온화상을 방지하도록 신경을 썼다. 핫팩은 아주머니와 내가 하루에 한 번씩, 9시와 21시에 교체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많이 소비할 핫팩이었기에 아주머니와 내가 돈을 모아 싸고 질 좋은 군용 핫팩을 600개가량 샀고, 그걸 각 교체 시간마다 두 개씩 넣어주기로 하였다. 기왕 넉넉하게 산 핫팩이기에 우리 아이들 주위 다른 고양이 보금자리에도 한 개씩 넣어주기로 했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주고 핫팩을 교체하려고 봤더니 핫팩 주머니에 담긴 채 식은 핫팩이 2개, 핫팩 주머니에 담기지 않은 따뜻한 핫팩이 2개 하여 총 4개가 보금자리에 있었다. 그날은 날이 추워 아주머니께서 추가로 넣었겠거니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핫팩을 갈아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또 그다음 날에도 핫팩 주머니에 쌓여있지 않은 핫팩이 몇 개가 있었다. 이번에 들어가 있던 핫팩은 아주머니와 내가 산 핫팩이 아닌 다른 모양의 핫팩이어서 다른 사람이 넣어준 것이 분명해졌다. 또한 아이들 밥그릇에 척 보기에도 처음 보는 건사료와 꽤나 질 좋은 습식사료가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었다. 아주머니는 깨지지 않는 유리그릇을 매번 설거지하여 사용하시고, 나는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하므로 분명 다른 사람이 놓고 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 주 토요일에 아주머니와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처음 보는 핫팩과 사료를 아주머니께서도 보셨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여 따뜻한 날 정오에 아이들 밥을 주고 느긋하게 기다려보니 누군가 와서 아이들 사료도 채워주고 핫팩도 넣어주는 것을 보셨다고 하셨다.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핫팩을 넣어주는 걸로 봐서는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다른 어른 고양이가 이곳을 빼앗으러 다시 올 수도 있으니 이야기를 나눠볼 겸 조금 대화를 나눠보니 그냥 동네에 사시는 분이었고, 고양이 보금자리가 있는 곳 여기저기에 가서 사료와 핫팩을 챙겨주신다고 하셨다. 최근에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퍼지면서 아이들 보금자리에 오셔서 핫팩과 사료를 주신다고 하셨다. 기왕 이렇게 인연이 맺어졌으니 일요일 점심 즈음에 같이 대화나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기에 조금 고민했지만 역시 아이들을 챙겨주시는 감사의 인사라도 전하자는 생각에 수락하게 되었다.
다음날, 모임 장소인 카페에 가보니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아주머니를 찾아 둘러보니 사람들이 한 6명 있는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약속 시간까지는 20분 정도 남았기에 동네 지인을 만나시는 줄 알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날 발견하시고 이리로 오라고 불렀다. 설마 싶었지만 가보니 역시나였다. 아주머니께서 만나신 분은 한 명이지만 동네에 고양이를 챙겨주시는 분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었고 거기서 활동하시는 분들 중, 일요일에 시간 되는 분들이 모여계신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나왔겠지만 기왕 나왔으니 인사를 하고 둘러보니 모두 나보다 연배가 있는 여성분들이었다.
이후로는 아찔한 경험이었다. 가족, 학교, 직장, 여자 친구 유무 등의 호구조사부터 시작하여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길러본 적이 있거나 혹은 지금 기르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어느 정도 궁금증이 충족되셨는지 다시 서로서로 담소를 나누시기 시작하였다. 두 시간쯤 지나니 대화는 귀에 안 들어오고 졸리고 부산스러워 앉아있기 힘들어질 때쯤 한 분이 주의를 모았다. 모두 집중하여 조용해졌을 때, 금월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하셨다. 돌아다니시는 곳과 그곳에 있는 고양이의 상태, 고양이 실종 유무, 새로운 고양이의 유입, 주변 동네 고양이 돌봄 모임에서 발생한 사고 등의 정보를 말씀하시며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어 차례로 각자 비슷한 포맷으로 발표를 하셨고 마지막으로 오늘 처음 참가한 아주머니와 나도 본인들과 함께 활동하기를 권하셨다. 나는 동네 사람이 아니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께서 나는 동네도 다르고 매번 이렇게 오기 수고로울 테니 본인이 활동에 참가하여 전달해주시겠다는 고마운 말씀을 해주셨다. 다들 아쉬워하셨지만 타당한 이유였기에 큰 불만은 없는 듯했다. 이후 다시 폭풍 담소 타임이 시작되어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먼저 일어나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일어났다.
집에 가기 전에 아이들을 잠깐 보고 가려고 갔다. 도착하니, 시루와 마루가 자기들과 비슷한 몸집의 작은 고양이와 놀고 있었다. 서로 우다다 뛰어다니고 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흐뭇해졌을 때, 문득 나는 사람들끼리 잘 어울리지 못하는데 고양이는 서로 참 잘 어울려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를 보며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제 집에 가야 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시루와 마루가 놀다 말고 내게로 와서 몸을 비벼줬다. 아마 평소에 가는 시간이라 잘 가라는 인사였겠지만 그날따라 나도 모르게 이 녀석들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