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행 위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당신에게

에스겔 26-28장

by 연휘

살다 보면 누군가의 무너진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겉으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탁' 하고 계산기가 두드려지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저 사람이 무너졌으니 이제 나에게 기회가 오겠지"


"나는 저 사람처럼 어리석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


2,600년 전, 예루살렘의 성문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아하! 이제 내가 부자가 되겠구나"라고 외쳤던 두로의 모습은, 사실 타인의 불행을 나의 풍요로 치환하려는 우리 안의 잔인한 기회주의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물을 보며 슬퍼하기보다, 그 눈물이 마른 자리에 세워질 나의 이득을 먼저 계산하곤 한다. 이 '차가운 계산'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진실을 전하는 자가 아닌 그저 기회를 엿보는 포식자로 전락한다.


이 비극적인 전락의 이면에는 치명적인 '망각'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은 두로 왕을 향해 ‘정교하게 만든 인장(도장)’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인장은 스스로 주인이 아니다. 오직 주인의 권위를 대신 행사하고, 주인의 이름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완벽한 대리인일 뿐이다. 인장의 가치는 그 도장이 얼마나 화려하냐가 아니라, 그 도장에 새겨진 ‘주인의 이름’에 있다.


하지만 ‘완전한 인장’이었던 두로는 자신의 지혜와 지위가 주인에게서 온 것임을 잊었다. 주인의 이름을 새겨야 할 자리에 자신의 욕망을 새기기 시작하면서, 그는 대리자가 아닌 스스로 신(神)이 되려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내게 주어진 작은 영민함은 하나님의 진실을 세상에 찍어내는 ‘인장’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것을 주인의 이름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닌, 나 자신을 드높이는 화려한 '깃발’로 흔들곤 한다. 글을 쓸 때조차 내 관심이 ‘진실’이 아니라, 얼마나 비판적이고 깨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나를 포장하느냐에 쏠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주인의 도장이 주인의 이름을 지우고 제 이름을 새기려 애쓰는 이 지독한 모순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 지적인 포장이 정교해질수록, 나는 그것을 허락하신 주인을 잊고 내가 세상의 중심인 양 교만해진다. 대단한 필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예리한 척, 더 많이 아는 척하며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는 그 '똑똑한 페르소나' 뒤에 숨어 우월감을 즐길 뿐이다. 주인의 이름을 증명해야 할 인장이, 어느새 나를 숭배하게 만드는 화려한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 '정교한 가면'이 주인을 잊고 '나의 유능함'에만 몰두할 때 발생한다. 번창할수록 그 내부에 강포가 가득해졌고, 결국 그 지혜조차 더러워졌다는 성경의 기록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유능해 보이고 싶은 욕망은 우리를 너무 바쁘게 만든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정직보다는 효율을, 공감보다는 이윤을 선택하게 한다. 성공의 가도를 달릴수록 우리의 시야는 흐려지고, 내가 만든 '근사한 이미지'가 나의 신(神)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공감 능력'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감은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라는 수평적인 연민에 머물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 즉 '창조주의 시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분이 사랑하시는 그대로 그 영혼을 바라보는 일. 그가 무너졌을 때 아버지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시는지를 내 심장으로 같이 느끼는 것. 주께서 아파하실 때 함께 울고, 기뻐하실 때 비로소 함께 웃을 수 있는 '신성한 공명'이야말로 공감의 본질이다.


그분의 마음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모든 위로는 결국 자기만족이거나 또 다른 계산일 뿐이다. 타인의 고난을 인과응보의 잣대로 분석하며 나만의 의로움을 쌓는 것은 사명이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타인의 무너진 성문 곁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 나의 정교함이 주인을 기억하는 '완전한 인장'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를 지으신 그분의 시선으로 타인의 생명을 다시 읽어내는 정직한 사랑뿐이다.


우리가 자랑하던 그 '똑똑한 가면'이 아무 쓸모 없는 돌무더기가 되기 전에, 다시 주인의 손등 위로 돌아가야 한다. "너는 절대 신이 아니다"라는 준엄한 음성을 겸손히 마음의 식탁에 놓을 때, 비로소 우리의 지혜는 다시 맑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야. 너는 지금 모습 그대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단다. 그러니 더 높아지려, 더 대단해 보이려 애쓰느라 너무 바빠지지 말아라. 네가 스스로를 포장하고 높아지기에 바빠서,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나의 시선을 놓치고 있는 너를 볼 때 내 마음이 참 아팠단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나를 위해 기꺼이 낮아진 자는 내가 높여준다는 나의 말을 기억하렴. 네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너를 통해 나의 사랑이 막힘없이 흘러간단다. 네가 누군가를 살리는 진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순간이지. 네가 가진 모든 재능과 지혜, 네가 누리는 그 모든 성취는 네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잠시 맡겨준 선물임을 잊지 말아라. 그것이 네 것이라 착각하는 순간, 너는 사명자가 아닌 포식자가 되고 만단다. 언제나 겸손히 낮은 자리에 머물며, 나의 마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주렴. 네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낮은 곳에서 건넨 그 모든 진심을 내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단다. 그 낮은 자리가 네가 가장 안전하고 빛나는 자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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