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의 일본을 함께 생각하며
최근 리마스터링 개봉해 명성이 자자한 『이사』(1993)를 뒷북 관람했다. 함께 영화를 관람한 사람과 날것의 감상을 나누며 다시 눈물이 나는 영화였는데, 여기 그 기억을 남겨보려 한다. 틀린 복기가 있으면 말씀 주시라.
소마이 신지 『이사』에 등장하는 두 개의 주요한 이미지가 있다. 물과 불이 그것이다.
물:『이사』는 장마철의 어느 저녁에서 시작된다. 창문을 때리고 나무를 흔드는 빗방울에, 초등학교 6학년생 렌은 장마가 정말 싫다며 물구나무를 선다. 아버지는 강가에서 렌과 작별인사를 하며 이삿짐 트럭에 올라탄다. 엄마 나즈나와 딸 렌 모두 답답할 땐 얼굴에 물을 맞으며 샤워한다. 렌이 뜻밖의 농성을 하게 된 욕실에서 도망친 곳은 또다시 화장실이다. 렌에게 가족여행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비와호수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그곳 'Royal Oak Hotel' 호텔(오크나무는 난로용 장작) 강가에서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거나, 물벼락을 맞아 쓰러지거나, 안개 낀 강가에서 잠든다.
불: 아버지는 가족사진을 불태우려 하지만 렌이 막아선다. 영화 내내 방화범 뉴스, 알코올 램프, '다이몬지' 및 비와호 축제의 불꽃 등 불의 이미지가 이어진다. (셋이 오코노미야끼를 먹고 귀가할 때 산에 '대'자나 배 모양으로 불을 지르던 장면이 다이몬지=오쿠리비 의식이다. 오봉(일본의 추석, 망자가 돌아오는 날)에 교토 지방에서 치러진다.)
『이사』에서 불은 위협이자 과거를 불태우는 소실의 힘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폭발적인 재생의 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달집 태우기' 의식에서 달집이 잘 타오르면 풍년이 오고 꺼지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이때 불은 풍요와 정화를 상징한다. 장마와 강가로 표현되는 '물' 또한 무력감과 단절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을 잠재우고 불씨를 받아들이는 힘을 지니기도 한다.
비와호 위에서 타오르는 배처럼, 물과 불의 경계는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 렌이 도리이*를 통과한 뒤 의식의 잔해가 널부러진 호숫가에서 잠드는 장면은 명확하게 어떤 '경계'를 표현한다. 아이와 어른, 현실과 환상, 어쩌면 생과 사까지도. (<괴물>(2023)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도리이는 일본 신사 입구에 세워진 경계로, 도리이를 지난다는 것은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렌은 야산을 헤매다 보름달 아래에서 늑대처럼 소리친(울부짖는)다. 그 모습은 두 가지로 읽힌다. (1) 혼자 살아가는 늑대처럼 독립된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 (2) 늑대인간처럼 보름달 아래 인간에서 늑대로 변하는 ‘탈피’의 이미지. 하지만 그렇게 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다음 장면에서는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두 손으로 모아 입에 가져다대고 먹는다. 반딧불이나 곤충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은 아닌가 했다. (주로 쓰이는 年を取る: 나이를 '잡다', 드물지만 年を食う: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도 쓰임.)
그러나 관객을 가장 당황시키는 장면은 한밤중의 등산도 강가의 노숙도 아니다. 렌이 바다 건너를 향해 여러 번 외치는 “축하해”라는 말이다. 불타 사라진 배를 향해, 물속으로 사라진 부모를 향해 몇번이고 몇번이고 손을 흔들며 외치는 "축하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인물들이 신지에게 “오메데토”를 연발하는 장면이 겹쳐 떠오르기도 한다. (이 장면은 주인공 신지가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일을 축하하고, 존재 자체를 환대하게 된 장면이라고 주로 풀이된다.) 렌의 "축하해"도 어쩌면 직전에 포옹한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떠난 추억에게 동시에 건네는 인사였을까. 어른이 된 것을 자축하는 동시에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엇이 렌을 성장하게 만들었을까? 렌은 비와호 마을을 돌아다니다 한 집 앞에서 쓰러져 그곳 할아버지와 중년의 딸에게 간호를 받게 된다. 여기서 렌은 기억과 망각이라는 삶의 속성을 배운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는 손자 옷을 기억하지 못하고, 딸과의 일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지만 그는 “그런 걸 다 기억하면 이 나이까지 못 살아있다. 한 손에 꼽을 추억 정도면 된다”고 말한다. 추억을 꼽을 손가락이 부족해 곤란한 렌에게 이 말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러나 유년기를 졸업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기억과의 작별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같은 장소에서 추억을 재현하려는 렌의 바람은 태내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만큼이나 허무하고 불가능한 것이다.
일본어로 이사(お引越し)의 한자는 끌 인引자와 넘을 월越 자를 쓴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가 직접 짐을 밀고 끌며 새로운 터전으로 넘어가는 일. 한 경계를 넘어가는 일. 그것이 이사이다. 그러므로 영화 제목 『이사』는 단순히 집을 옮기는 물리적 사건을 뜻하지 않는다. 한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성장의 은유다. 여관이 허물어지고 호텔이 들어선 풍경은 바로 그 변화를 공간적으로 형상화한다.
우루시바 가의 세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이사를 한다. 켄이치는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고 혼자가 되고 싶어서, 나즈나는 자신을 늘 서운하게 했던 남편을 떨쳐내는, 렌은 그런 두 부모 사이에서 성인기로 이행하는 이사이다. 의젓한 렌이지만, '엄마의 헌법'을 찢어버리거나 "왜 낳았냐"고 외쳐 물을 때는 아이답기도 하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치열하고 솔직한 모습이다. 렌의 정면으로 부딪치는 용기를 과연 철없게만 볼 수 있을까? 폭발은 적어도 회복의 여지를 남긴다. 그리하여 기린 인형을 놓쳐버린 부친과 달리, 나즈나는 기차 안에서 렌과 과자를 나눠 먹고 노래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는가.
엔딩 크레딧에서 렌은 교복을 입고 여러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미래로 나아간다. (마지막 장면의 경계 은유 때문에 렌이 죽었다고 오해하는 관객이 있을까봐 배려한 연출일까?) '이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을 나타냈다고 느꼈다.
영화가 개봉한 1993년의 일본은 버블 붕괴가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이 진행되던 시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 제도의 흔들림, 정치적 혼란이 개인주의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버블 시절의 풍요를 되찾고 싶다는 집단적 바람은, 렌이 예전의 집을 되찾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과 겹쳐 보인다. 성장 신화가 끝나고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던 이행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처럼 고통스러웠다. 『이사』는 렌의 성장뿐 아니라 당시 일본 사회가 겪어야 했던 상실의 경계를 짚어낸 영화였다. 그러므로 렌이 마지막에 "미래로" 간다고 명시한 엔딩크레딧은, 그런 사회를 은유함과 동시에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이기도 않을까.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은 내게 “언제 어른이 된 것 같았냐”고 물었다. 여러 순간이 떠올랐지만, 그것은 단 한 번이 아니었다. 삶은 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도약의 시기는 있어도, ‘진짜 어른’이라는 완성된 상태는 없다. 다만 영화 『이사』처럼 삶에는 늘 계기가 있고, 그 계기를 통해 우리는 또 한 번의 이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