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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Oct 28. 2021

코로나 블루

우리가 사는 현실은 코로나로 움츠러들어 어수선하고도 답답하다. 마스크 벗은 얼굴이 더 생소해져 버렸고, 한창 자라는 파릇파릇한 애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 답답한 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현실을 겪는 서로가 안쓰러워지기도 하고, 현실을 겪어야 함에 답답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우리들의 마음이 가라앉아 버리기도 한다.

어제 지인과 만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오는 답답한 현실을 나눴다. 지인분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로 대학 졸업한 딸의 취업이 늦어지고 남편의 사업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딸의 취업으로 비어버린 둥지 속에서 생각해보니, 아이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은 역설적으로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던 코로나가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거기다 딸이 타지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하면서, 그동안 아빠가 지금껏 돈 벌면서도 생색 한번 내지 않은 것을 깨닫고 너무 대단하시다며 감사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물론 힘든 상황에서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만들어 준 시간은 가족 구성원들을 가정으로 다시 몰아주었고, 서로를 가족애로 뭉치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답답한 점도 많지만 이 질병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장점을 생각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코로나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족 구성원이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늘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무심했던 가족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아껴주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어쩌면 훗날 뒤돌아봤을 때 지금 누린 걸 그리워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코로나가 맥을 못 추며 잠잠해질 날까지 기다려본다. 그 시간까지 나는 코로나로 우울(blue)해만 하지 말고, 하늘처럼 청청한(blue) 빛으로 보낼까 싶다. 우울한 날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더 아껴주는, 푸르른 마음으로 있고 싶다.


나는 우울한 코로나 블루가 아닌, 청명한 코로나 블루를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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