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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30. 2022

여행지에서는 깃발을


매일 새로 주어지는 익숙한 듯 낯선 일상. 내 인생에도 노련한 안내자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여행하면서 해본 적 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가이드에 따라 여행의 온도가 달라지듯이, 인생에서 만나는 가이드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질 테니.


한 분의 가이드가, 언행으로써 장소에 빛을 밝히는 걸 본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한 번은 마주쳤을 듯한 인상의 차분한 분이셨는데, 오로지 지식으로 풍경의 역사를 깊게 만들어 주었다. 버스에서 수시로 사람들이 잠들었는지 뒤돌아 체크하면서 유수한 역사이야기를 엮어나가던 것도 유럽의 풍경 중 하나로 남았다. 여행이라는 누군가의 인생  하이라이트를 위해서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이 어떤 관광지처럼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길거리에서 봤을 듯한 과묵한 사람으로 만나, 길에서 우연히 만난 버스킹 같은 분으로 헤어졌다.


여행 내내 특별하고, 고요하지만 선명하게 안내해준 그 가이드분처럼, 인생에서 나의 가이드를 자처해준 이들도 많았을 것이고 내가 누군가를 안내한 적도 있을 것이다.


우린 인생이 스스로 방향 짓는 것이라 말하곤 하지만, 사실 태어나면서 우린 수많은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부모님의 가이드를 시작으로, 입학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 학교를 졸업해서는 사회에서 만나온 다양한 군상들까지. 매뉴얼만 알려주고 휙 떠나는 일반 가이드부터, 개별 가이드처럼 진심으로 나를 위해 조언과 도움을 줬던 수많은 사람들이 합쳐져 오늘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얘기해주던 선생님, 가족, 친구 지인들 덕에 브런치에 어떤 걸 올릴고민도 하며 내일을 위해 글도 쓰고 있다.


결혼하고 한 아이의 가이드로서 살아온 나날 동안 나도  그 가이드분처럼 아이에게 좋은 안내를 해준 적이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오히려 아이가 내 인생을 넓혀주는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고정관념으로 지어진 나의 성벽을 함께 부숴준 덕분에 새로운 음악과 책을 접할 수 있었고, 익숙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행위도 아이와 함께라면 새로운 길을 걷듯 즐거우니까. 마치 행복을 향해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처럼...


아이는 걸음마다 행복을 주는 훌륭한 안내자이지만, 나는 그럴 그릇은 못 된다. 이따금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돌이켜보다 보고 싶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유구한 역사를 안내하던 가이드보다 부족한 사람이어도, 나를 제 인생의 진한 풍경으로 기억해주는 아이... 

어느새 자라 나보다 더 큰 깃발을 들고 서있다. 근래 내 마음의 가장 광활하고도 경이로운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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