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나만의 아뜰리에를 꾸려온지 만 5개월째. 이따금 내 안의 어떤 내면을 꺼내어 조각으로 다듬고, 스케치하며 색을 입혀야 할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소재 고갈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세상의 모험을 이어나가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초보에게도 이런 전문가스러운 진단이 내려질 때도 있는 가보다.
플랫폼이란 건 정류장 밖에 없는 줄 알았던 내가, 인터넷 플랫폼들에서 무료 산문 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가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오랜 마음을 이긴 덕이었다. 인터넷 세상은 한없이 드넓어서 가족과 친구로만 이루어진 좁디좁은 내 세상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인터넷에 기고되는 글은 짧은 감성글뿐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다룬 글만이 아름다울 것이다, 인터넷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일 것이다.' 내 좁은 세상을 굳건히 지키던 이런 편견들은 가판대를 운영하며 허물어지고 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오래 전부터 쓰던 아이디를 가지고, 묵묵히 가판대에 글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는데.
가판대에 준비하는 글은 행인들이 겪는 길거리의 색보단 밝은 경향이 있다. 전쟁시기에 의도적으로 밝은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인생을 나는 존경하기에...
그들의 명작에 필적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는 생각은 감히 못하지만, 나만의 아뜰리에에서 만든 의도적으로 밝고 따뜻한 문체로 사람들의 현실에 따스함을 입히고 싶다. 작위적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현실에 지친 손들이 이곳에서 따뜻하게 쬐다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내 글을 자꾸만 밝은 방향으로이끈다.
가판대에 올려놓은 글에 누군가가 따뜻함을 느끼고 걸을 힘을 얻는다고 말할 때면 행복하면서도 실감이 잘 안 난다. 글 덕에 힘내서 걷고 있다는 말이, 힘내서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소재 고갈이란 분수에도 맞지 않는 상황을 겪기도 하는 초보 작가에게도.
글과 길. 사람과 사랑...
단어가 닮은 만큼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하고, 글은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내 작은 세상에서 여태껏 받은 사랑들과, 새로운 세상에서 받고 있는 감사한 말들 덕분에 내 활자의 화살표는 긍정적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종이 위로 스며드는 인연들이 다음 글의 길을 제시해준다. 내 글이 어쩌면 굶주린 누군가에게 길을 걷는 힘을 주었듯이.
삶에 안주하여 여태 글을 못 썼다고 했지만, 아둔한 내가 미처 못 느낀 모든 순간이 나의 글감이다. 글이 잘 안 떠오른다고 투정을 하다 읽어주는 이 덕에 힘을 낸다는 말을 하는 오늘의 흐름까지도... 이젤의 종이 위에 고민한 일련의 생각들이 가랑비처럼 촉촉이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