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이 그저 음계를 얻은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드넓은 초원에서 청보리를 간질이는 바람처럼 청량한 상상을 제공하고, 피부에 닿는 감촉처럼 상쾌한 일상을 준다. 그런 음계를 얻은 바람은 마치 시원한 물처럼 내 손 닿는 곳에 틀어져있다.
바람은 계절마다 다른 온도로 불어온다.
정승환의 '눈사람'이 마음에서 다 녹을 때 즈음에, Simon and Garfunkel의 'April come she will'이 마치 그녀처럼 찾아온다. 그녀처럼 찾아온 꽃이 하얀 원피스처럼 펼쳐질 때부터 추억처럼 꽃비 만이 내릴 때까지 'cherry blossom'은 나무의 굵은 줄기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나무의 굵은 줄기에 통통해진 초록색 잎사귀가 다시 찾아올 때면,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어느 서늘한 시골 밤의 작별처럼 은은하게 분다. 노래 구간마다 와글와글 들리는 개구리 소리에서, 마당에서 먹은 찐 옥수수와 오빠가 불었던 풀피리와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소원을 빌었던 별똥별이 작별한 추억처럼 밤하늘을 밝힌다.
올해도 'One summer night'이 지나고, 초록색 잎사귀마저 줄기와의 작별을 준비할 때면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나무 곁에서 들려온다. 꽃잎을 보내고 잎사귀도 보내야 하지만 더 있고 싶다는 마음조차 욕심이 될 거라며 음악은 나무의 등을 두드린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줄기를 떠나 붉은 잎들은 바람을 타고, 땅에 박혀있어 여행을 떠나지 못한 줄기 대신 여기저기를 누빈다. 그 바람의 이름은 모짜르트가 지어줬는데, 피가로의 결혼중 편지 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였다.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에게 마음의 휴식을 줬던 바람이 붉은 잎에게도 도착한 것이다.
붉은 잎사귀는 마침내 누런 억새풀 위에 앉아 쉰다. 그래서 잎사귀는 오래도록 가을바람과 억새가 서로 부대끼며 내는 시원한 소리를 듣는다. 바람에 실어 여행을 못 떠나는 줄기에게도 이 소리를 전해주고 싶어, 잎사귀는 saddle the wind를 부른다. '황금들판 위를 달리는 바람 따라 떠나리 저먼 곳에 고향 떠난 철새처럼 그리워 못 잊어 떠나면 사랑하는 내님 날 반기리'...
잎사귀의 노래가 저 멀리 줄기에게 도착할 즈음이면,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가 오래된 가게의 낡은 라디오에서 들려온다. 줄기는 잎사귀가 떠나고 다시 눈송이를 쌓으며, 이번 겨울 동안 자신이 지켜낼 눈꽃을 꼬옥 끌어안는다. 줄기 대신 한 아이의 장갑 위에 닿은 눈은 하얀 바람이 기어 다니는 도심의 회색 숲길을 색채 없이도 따뜻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어느 연말의 전형처럼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뉴욕'이 흘러나오며, 차가운 손등 위로 평안들이 불어온다.
P.s : 이글은 문우이신 좋으니 작가님의 '노래에 담긴 사람' 글을 읽고, 영감을 받아 써보았습니다.
영감을 주신 덕분에 전 제 인생의 ost에 이어, 계절에 실려 오는 음악사연도 써봅니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