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안내음

음악 시리즈 3

by 지구 사는 까만별


낡은 라디오에서 방송이 서투른 DJ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투르지만, 서투르기에 진심만 담겨있는 DJ 목소리에 라디오는 오래도록 고요한 어느 집의 소리를 맡아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한히 길게 반짝이는 별빛을, 인생이라는 몇십 년 동안만 겨우 볼 수 있는 하루살이들을 위한 1일 DJ, 까만별입니다.

오늘은 하루살이인 제가 하루 같은 삶을 살아오며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해온 추억의 음악들을 소개해드리고자 쑥스러운 목소리를 내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공간에서 들려오는 제 목소리는, 후에 들려올 음악은 어떤 형태로 여러분들의 마음에 닿을지 궁금한 마음이 큽니다.

제가 이제부터 소개할 음악들은 저의 심장소리이기도, 과거 위에 내리는 비이고, 쓰린 마음 위에 닿아오는 바람이기도 했지요. 이 음악들은 저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자, 지금부터 저를 걸어주세요.


우선, 함께 봄밤의 끝자락을 경험하고 있는 이 밤 Carla Bruni의 'Spring Waltz'는 어떨까요?

"Dance with me, life is a dream,

We can take the reigns ...

나와 춤춰요

인생은 하나의 꿈이에요

우리가 이끌 수 있어요.. "


카를라 브루니의 몽환적인 목소리에 가장 좋았던 날들이 나른하게 이어집니다. 벚꽃이 흐드러지던 우리의 봄날이, 우리가 자연스레 봄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과거의 봄은 아름답게 있었노라고 카를라 브루니는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봄이 끝나면 비가 이어지겠지요. 보통은 맑은 날을 선호하지만, 저는 하늘에 물방울이 내려오는 날 세상이 해갈하는 모습을 가장 좋아합니다. 'Kiss the rain' 은 제게 빗소리 같은 곡입니다. 폭폭한 제 마음은 피아노 선율에 추적추적 제 영혼에 스며들어갑니다. 그 스며든 선율 위로 마음의 꽃이 피어나길 바랄게요.


마음이 저만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날이면, Fletcher의 'a love idea'가 문을 두드리네요.

누구나 인생에서 막막한 구간에 있기에, 제게도 진공 속에 갇혀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럴 때 이 곡은 귀도 눈도 멀어버린 저를 위해 제 손을 잡고 저를 토닥토닥 두드려줍니다. 마치 같은 슬픔을 안고 있는 나는 네 마음을 안단다, 저를 쓰다듬어주는 것만 같아요.


우리는 지구를 여행하는 하루살이지만, 매일 같은 집에서 같은 차를 타고 살아가면 이 사실을 까먹을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제가 하루살이임을 잊지 않기 위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 날에는, 셀린디온의 'The prayer'가 신비로운 그 찰나를 더욱 빛내주었지요. '기도하는 자'의 경건한 묵상을 듣다 보면, 이 지구 상에 잠시라도 나그네로 스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와 같은 차를 타는 삶도 여행처럼 아름답게 여길 수 있기를 셀렌디온처럼 진심을 다해 기도해봅니다.


그 기도가 어쩌면 닿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 가이드가 수신기로 귓가에 흘려주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들리면, 차창 너머의 풍경은 새롭게 채색됩니다. 지루하게 역을 지나는 흑백의 사람들을 위해 기타 소리가 도시 위에서 우리가 아름다운 지구의 여행자임을 작게나마 외쳐주더군요.


그리고 저는 책상이라는 저의 가장 작은 지구 위에서 앙드레가뇽(Andre Gagnon)의 ' Les jours tranquilles'을 듣고 있어요. 이 곡은 달빛 노니는 창가 아래서 한 명의 청자에게라도 닿기 위해 대본을 쓸 때 듣는 곡이기 때문이죠. 앙드레 가뇽이 연주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제 머릿속의 과거들을 만나게 해 주네요. 그의 연주 위에서 추억은 다시 제 손을 잡고, 저와 어떤 청자를 위해 다시금 살아납니다.


어느새 오늘의 마지막 곡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려드리고 싶은 곡은 Scorpions의 'always somewhere'입니다. 혼자 운전하면서 볼륨 키워서 들으면 저 가슴 밑바닥에서 기쁨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거든요.


저 역시 그대들과 '언제 어디서나' 낯선 지구 위를 여행하고 싶어요. 달빛이 비치는 작은 우주 위에, 라디오를 가진 다른 우주들에게 주파수가 닿기 위해 하루살이는 오늘도 살아온 하루들을 음악 위에서 추억해 봅니다.


하루살이들을 위한 오늘의 라디오.

내일 하루도 음악 위에서 멋지게 여행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까만별 이었습니다.